불륜
파울로 코엘료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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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은 지하 50m 암반에서 뽑아 낸 천연 광천수처럼 톡 쏘고 알싸한 맛이지만, 사람에 따라 일생에 단 한 번으로만 찾아 오는 찰나의 축복입니다. 첫날밤을 치르고 난 처녀가 더 이상 처녀가 아니듯, 첫사랑이 아무리 좋다 한들 세상 누구라도 두 번은 맛볼 수 없습니다.

비록 육체와 정신의 활력과 선도가 퇴색해 가는 나이에 접어든 이들이라지만, 뇌리에 새겨진 그 옛날의 짜릿한 추억을 시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첫사랑의 대용품 그 무엇인가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에 자주 나오는 말처럼, "아무리 서로 깊이 사랑하던 부부 사이라도, 길어야 5년이면 이후엔 섹스에 아무 감흥이 없"어서이겠습니다. 그러나 그 대용품은 도저히 "정품"을 대신할 수 없는 "짝퉁", 게다가 죄책감까지 부산물로 딸려 오는, 내 눈에 마뜩지 않은 구리고 조악한 모조품입니다. 이를 두고 우리는 "불륜"이라 부릅니다.

신혼 시절에 가졌던 기대와 설렘은, 현실의 난관과 지루함 속에 원 모습을 찾아볼 길 없을 만큼 퇴색하고 시들었습니다. 여인의 입장에서, 꼭 남편이 경제적으로 무능하다거나 정신적으로 불성실해서 이런 환멸이 오는 게 아닙니다. 최소한 파울로 코엘료가 이 작품 속에서 빚어낸 진실,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배우자와의 영속적 결속을 장담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 같습니다. 닥쳐 오는 시련을 성공적으로 꼭 이겨 내지 못해서도 아닙니다. 아무 외적인 문제 없이, 비슷한 환경, 조건의 성실하고 유능하며 아직은 외적인 매력조차 넉넉히 뿜어 내고 있는  배우자와도, 어느 순간 작은 균열이 발생하고, 그 틈은 파경의 상태로 언제든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인공 린다는 아름답고, 영민하고, 돈 잘 버는 착하고 잘생긴 남편과, 귀여운 아이들까지 곁에 두고 있는 여성입니다. 본인도 수습 기간을 거쳐 초보 기자의 딱지를 벌써 떼고, 이제 간부직 승진을 넉넉히 바라볼 수 있는 커리어 우먼이니, (그 나이 또래 주부들에게 곧잘 오곤 하는)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는 권태감이나 성취에 대한 갈증의 싹이 돋을 틈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세상에 부러울 게 아무것도 없는, 여자로서 모든 걸 갖춘 축복 받은 인생입니다.

이런 그녀지만, 승진에 대한 부담도 적지만은 않고,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결혼 생활에 대해서까지 서서히 회의가 싹틉니다. 독자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녀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의 불안감 사이에서 정신을 좀먹는 방황을 체험합니다. 1) 이 모든 행복이 일순간에 소멸하면 어떻게 하지? 2) 이 모든 행복한 상황이, 내가 죽을 때까지 전혀 변하지 않고 지겹게 지속되면 어떻게 하지?

나른할 만큼 튼튼히, 건실히 지속되는 행복은, 한편으로 권태를 유발하고, 다른 한편으로 그 상실에 대한 공포를 작은 맹아로나마 배태합니다. 자신에 대한 긍지와 확신으로 뭉친 그녀로선, 이런 작은 교란이나마 묵인할 수 없습니다. "남편과의 정사 도중 내가 가장하는 오르가즘은, 나를 조금씩이마나 서서히 죽어가게 만든다." 스스로 행복할 자격이 있다고 믿는 도도하고 새침한 영혼은, 이 상태를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야 한다고 결심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린다에게 남편에 대한 불만은 조금도 없습니다. 린다가 이 상태에까지 치달은 건, 너무 완벽했던 남편에게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할 정도랄까요.

린다가 현상 타개의 수단으로 삼은 이는, 신인 정치인으로서 꽤나 유망한 전도를 보이고 있던, 학창 시절의 친구 야코프 쾨니히입니다. 헨리 키신저가 인용했던 유명한 말처럼, "권력은 최고 효능의 최음제"여서인지, 직업상의 좋은 핑계를 두고 그녀는 옛 친구(어린 시절 한때 자신의 가슴을 만지기도 했던)를 찾아 나섭니다. 적지 않게 나이도 든 모습인데다, 출세, 정략 결혼, 그리고 사람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정치 활동이 남긴 나쁜 영향 탓에, 그는 옛 친구를 만나는 자리에서도 두세 개의 가면을 번갈아 쓰며 사람을 대하는 속물 이상의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상관 없습니다. 린다는 이 옛 친구와의 만남, 그리고 접촉을 통해, 무엇인가 위안을 찾아야 합니다. 다행히도(?) 이 정치인은 육욕만은 왕성하게 발동하고 있는 상태라, 린다의 대담한 선제 공격을 아무 거부감 없이 환영합니다. 욕구에 비해 정력은 그닥 강하지 못했는지 오랜 시간 지속된 접촉(intercourse)은 아니었으나, 린다는 일단 만족하고 자리를 뜹니다. 잠시의 죄책감만 잘 달래고 나니(게다가 노련한 야코프의 충고도 있었습니다 - 귀가 후 바로 화장실로 가라는), 남편과의 관계도 더 만족스러워진 것 같습니다. 섬세한 그녀는 갑작스러운 태도의 변화에서 영리한 남편이 뭔가 낌새를 챌 것을 우려하고, 쾌감을 최대한 자제하며 표현하기까지 합니다.

그녀의 계획은 그러나 순조로이 풀리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계획이라 할 만한 것이 없었던 이유가 큽니다. 그녀는 자신이 스스로 명명한 "중독"이라는 심적 상태를 타개하려 이 속물을 계속 만나지만, 사실 그녀는 야코프 같은 저열한 속물에 중독될 만큼  격 떨어지는 여성도 아니었고, 색정증 환자도 아니었으며, 그 대상이 약물이건 뭐건 처음부터 어떤 것을 두고 중독에 빠질 만한 허약한 정신의 소유자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문제가 정확히 뭔지 몰랐으니, 임시방편으로 찾은 해결책 역시 결코 그녀의 갈증을 해소시킬 수 없었죠.

대재벌가 출신에다 개인적 능력도 빼어나 확고한 사회적 평판까지 다진 쾨니히 부인  마리안은, 그러나 이 린다에게 불필요한 적대감을 가집니다. 심적으로 약한 상태에 빠진 린다는, 이 마리안을 실제 가치에 비해 과대평가하는 오류에 빠집니다. "우월한" 마리안이 자신의 작은 활로 모색 노력을 가로막았다고 판단한 후, 그녀는 교수 마리안이 근무하는 대학 연구실에 찾아가 마약 소지 혐의로 무고할 생각을 품고, 행동으로 옮깁니다.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비열한 책략이었을 뿐 아니라, 평소의 린다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저능하고 품격 떨어지는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워낙 현명한 린다이니만치, 파국으로 치닫는 선택을 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고전 소설들    에서의 여주인공이, 상황적 불운과 성격상의 사소한 결함 때문에 비극적 운명에 종종 빠지기도 합니다만, 파울로 코엘료가 창조한 세계에서 그런 결말이 나기란 좀 어렵다는 걸 우리 독자들은 알고 있습니다. 린다가 최악의 선택을 피한 데에는, 너무 완벽해서 인간적인 냄새가 좀 덜 나기까지 하는 남편의 조력도 크게 한몫 했습니다.

린다와 남편, 그리고 쾨니히 부부는 저녁을 함께한 자리에서, 마리안의 무례한 태도 때문에 대단히 어색한 분위기에 빠집니다(린다는 이 정찬 자리의 마련부터가 마리안의 음모라고 여기는데, 사실 이 역시 린다가 지나치게 예민해 있던 탓에 내린 오판에 가까웠습니다). 마침내 린다는 마리안에게 정면으로 맞선 후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에 빠집니다. 자신과 남편의 사회적 경력에 얼마간의 위험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였으나,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처음부터 상황의 심각성을 다소 과대평가했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린다와 그 남편이 서로의 힐링을 도모하는 장면, 사실 전 이 대목까지 읽으면서 다소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만, 코엘료는 언제나 그랬듯 결코 무리하지 않습니다. 린다는 행복해질 자격이 있는 여성이었고, 그런 그녀답게 적절한 과정을 통해, 완벽한 치유를 하고 작은 의식을 마무리짓습니다. 이 장면이 성적(性的) 체험의 은유일 수도 있고,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새길 수도 있지만, 린다의 동작과 내면 심리가 묘하게 어우러지며 상호 참조를 행하게 하는 시도는, 코엘료의 기법과 내적 성찰의 기교가 일정 경지에 도달했다고 평가하기에 충분했어요.

"자궁"에서 다시 태어난 린다는, 이제 다시 완벽한 아내, 어머니, 그리고 독립된 여성으로서 건강과 자아를 회복합니다. 작가 코엘료가 이처럼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잡아낼 수 있었던 게, 이야기꾼으로서의 천재성, 실제로 사회적 체험(사업적 성공, 여성 편력 등)을 충분히 한 작가로서의 자산, 그 어느 쪽의 기여가 더 컸는지는 판단이 힘듭니다. 뷸륜 같은 진부하고 간혹 위험하기까지 한 소재를 두고, 이처럼 건강하고 희망어린 결론을 이끌어 낸 그의 낙관적 세계관에 대해서는, 그러나 아무 의심과 주저 없이 존경과 찬의를 보낼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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