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집 이야기 땅콩집 이야기
강성률 지음 / 작가와비평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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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집안의 지원,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의 건실하고 피나는 노력으로 사회에서 성공을 거둔 후, 그 시절을 느긋하고 아련한 시선으로 돌아보는 것만큼 흐뭇한 일도 없습니다. 요즘은 이런 분들이, "창작 소설"의 형식을 빌려 책을 내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가벼운 회고담, 혹은 "그땐 그랬었단다." 같은 친근한 형식일 수도 있고, 그 내용 중에 "한국 전쟁 당시 미군의 오폭"이라든가, "치열한 좌우 대립 와중 소중한 인명의 살상" 같은 대단히 무거운 주제가 끼어드는 수도 있습니다. 어느 편이건 간에, 그 나이 또래의 독자에게는 잦은 공감과 진한 회한, 감회를 유발할 것이며, 그보다 어린 독자에게는 "아, 어르신들이 그런 신산한 세월을 살기도 하셨구나." 같은 깨달음을 갖게도 할 것 같습니다.

주인공 이태민은 소설의 시작부터 국민학교 5학년의 모습으로 나옵니다. 아주 재미있는 아이입니다. 우선 아주 개구장이이고, 한시도 가만 앉아 있지 못하는 활기 넘치는 소년이지만, 은근 속이 깊고 타인을 배려하고 싶어하는 성격입니다. 실제로 학급에서 반장에도 여러 번 선출되는 걸로 나오는데(이 소설의 끝은 그가 대학 입시를 치르고 진학에 성공하는 장면입니다), 애들 앞에 막 나서길 좋아하고 독선적인 모습이라기보다, 뭔가 수줍어하며 자주 양심에 (괜히) 찔리기도 하는 은근 내성적인 캐릭터입니다.

태민이가 이렇게 구김 없으면서도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성격으로 자라난 건, 그의 부모님의 영향이 아주 큽니다. 굴비로 유명한 전남 영광군 바다에 면한 칠산이라는 동네가 있는데, 가문에서 대대로 종묘와 선산을 관리하던 전주 이씨의 뼈대 있는 집안입니다. 유복한데다 학식도 제법 갖춘 집안 분위기였고, 아버지는 엄청 자상하고 능력도 있으며, 부부 간의 금슬도 중히 여기는 분이지만, 때로는 어머니와 싸움도 하는 혈기가 있습니다. 엄마가 아빠와 싸울 때마다 태민이는 엄마의 역성을 듭니다. "저런 사람하고 엄마는 뭐하러 사는겨?(참 철없는 투정입니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그런 소리 마라. 네 아버지 같은 사람도 어디 있는 줄 아냐? 인물 좋지 집안 좋지, 사람 믿음직하지..." 태민이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엄마 말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가 하는 말이고, 엄마 역시 번듯한 가문 출신이란 긍지를 몽매에도 안 잊고 사는 분이라서죠.

사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태민이는, 엄마의 눈에나 아버지가 보기로나, 혹은 무관한 제3자의 평가로나, 아버지를 쏙 빼어닮은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그걸 인정하고 싶건 아니건 말입니다. 그러나, 태민이는 이거 하나만큼은 마음 깊이 다짐합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절대 손을 대는 일은 없을 거야!" 실제로 이 소설은, 정말 다양한, 웃기고도 슬픈 여러 촌극과 실화가 소개되는 중, 주인공인 소년 태민이 "진짜 사랑"을 찾아나가는 스토리로 볼 수도 있습니다.

태민은 유쾌하지만 진지한 면도 있는 소년입니다. 이런 그도 어느덧 사춘기를 거쳐 왕성한 성적 호기심에 눈 뜨는데, ... 경숙, 은경, 점순 같은 여성이 이 소설 후반부에서 그와 잠시, 혹은 길게, 모종의 교감을 나누거나 액션이 돌입하는 이들입니다. 태민에게 큰 기대를 가졌던 담임 선생님 중에 심영진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이분은 대단히 엄격하고 추진력 강한 인사로 별명이 "호랑이"입니다. 어느 날 흥식이라는 학생이  방과 후 귀가 하지 않고, 우연히 빈 교실 밖에 있다가, 심 선생과 여교사 진 선생의 노골적인 정사를 구경하게 되고, 이를 들킨 뒤 심선생에게 아주 호되게 잡도리를 당합니다(그 반대가 아니고요). 이로 인해 흥식은 시름시름 앓게 되는데, ..... 이 소설에는 이처럼 그 작은 시골 마을에서 성(性)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갖은 해프닝이 다 소개됩니다.

성이 주는 쾌감과 일시적 육욕 만족에 휘둘리면 그러나 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탱민은 비록 진학 과정에서 우여 곡절을 겪었지만, 자신의 미래에 대해 큰 희망을 품고 사는, 기본이 바로 박힌 아이입니다. 그는 결국 해냅니다. 이로서 그의 미래는, 작은 고향 마을을 넘어, 호남 전역, 그리고 대한민국을 아우르는 데까지 시야가 넓어집니다. 소년은 주변으로부터 여러 영향을 입지만, 그의 심중에 끝까지 남은 건 긍정적이고 통합적이며 건설적인 마음가짐입니다. 소설 중간중간에 한국 현대사의 큼직한 사건들이 곧잘 스쳐가는 건 이를 암시함입니다. 이어지는 책이 과연 나올까요?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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