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유머 - 그리운 스승 요한 23세의 메시지
요한 23세 지음, 신기라 옮김, 최현식 감수 / 보누스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위대한 인물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언제나 위트와 유머를 잃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어떤 인물이, 그 업적이나 능력은 출중한데, 일상이나 공식 석상에서 전혀 웃음기를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악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부분의 독재자가 이런 컬러를 띠고 있으며, 그 예로는 나디르 샤, 스탈린 같은 인물을 들 수 있습니다. 유머나 농담은 고사하고, 잔잔한 웃음을 머금는 순간도 찾기 드뭅니다. 살아 온 과정에 상처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자신의 상처도 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타인을 위해 올바른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주세페 롱칼리(이 책에서는 "론칼리"란 표기를 계속 유지합니다) 신부, 나중의 주교, 나중의 추기경, 그리고 나중의 교황이 된 분은, 농민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이탈리아 농민 특유의 웃음과 소탈한 태도가 언제나 몸에 배인 모습이었습니다. 그 자신이 민중의 간난과 역경을 몸소 체험하며 자란 분이었기에, 고위직에 올라서도 언제나 그는 하층민의 수고와 애환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 책에 실린 일화들은 따라서 의도적으로 창작되거나 윤색된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인간 롱칼리를 대변하는 사연입니다. 전 독일 총리 헬무트 콜의 경우, 그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기믹의 대상이 된 것과는 많이 성격이 다르죠.

 

전지전능한 신을 섬기는 고위 성직자이지만, 아무리 명철하고 사리 분별이 바른 그도, 언제나 "신의 섭리"가 종종 빚는 부조리함, 참상, 어이없는 비극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얕은 지식과 서 푼짜리 학문으로부터 잣대를 애써 빌리기보다, 그는 겸손하고 신중한 자세를 일단 취하였습니다. 그는 종종 개인적으로도, 능숙하고 세련된 처신으로 바로 응대할 수 없는, 난관에 봉착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두 가지 경우에, 그가 선택하여 꺼내 든 답은 바로 "유머"였습니다. 이 책은 그의 유머 중, 깊은 교훈을 주거나, 의외로(그는 격의 없고 대중에게 친근한 교황으로 유명했지만, 오래 전 분이니만큼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다 알려진 건 아니었습니다. 요즘이라면 달랐겠죠) 알려지지 않았던 일화를 담고 있습니다.

 

p94에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이 책의 주인공 요한 23세의 만남을 담은 사진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세계의 상당수 인구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고, 이 사진이 잘 드러내는 것처럼 개성도 서로 많이 닮은 모습이었습니다. 다만 아이크의 경우, 언제나 보기 좋은 파안대소의 모습을 드러낸 건 아닙니다. 예컨대 1952년 공화당 전당 대회에서, 그가 젊은 리쳐드 밀하우스 닉슨(부통령 후보)과 함께 대권 도전권을 따 내었을 때, 그의 미소는 왠지 억지로 웃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반면, 롱칼리 주교, 대주교는, 남아 있는 모습이 언제나 평온하고 진정 어린 심성을 드러내는, 온화하고 착한 웃음을 만면에 머금고 있죠.

 

요한 23세 대에 들어서야, 대중은 교황을 보다 친근하게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파파 지오반니"였습니다. 그의 자연인으로서의 이름은 물론 주세페이지만, "요한"을 이탈리아식으로 부르는 이름이 "지오반니"였기 때문입니다. 보수적인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린 건 당연합니다(차라리 "파파 주세페"라고 부르는 게 조금이라도 덜 무례했을 지 모르죠). 여튼 이를 놓고, 주세페(이름) 파파(성)라는 어느 이탈리아 재력가와의 사이에 벌어진 재미있는 일화도 실려 있습니다. 역자 최현식 신부의 정확한 주석을 통해, 유익한 상식을 배울 수 있는 건 덤입니다.

p166을 보면 경호원에게 "간수 양반"이라고 부르는 재미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유머의 첫째 의미는, "백성으로부터 교황을 유리시키는 이가 간수 아니면 뭐겠냐"는 아주 가벼운 항의의 뜻이겠고, 다른 면에서 지난 시절, "아비뇽 유수"처럼 교황이 세속의 물리력에 굴해서 실제로 수인의 처지가 되었던 사실을 살짝 암시하는 의도도 있었겠습니다.

 

p207을 보면 국무성성 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빚어진 작은 소동이 소개됩니다. 보수적인 인사들은, 모 추기경을 그 직에 임명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을 그에게 던지는데, 이는 아직 롱칼리 추기경이 콘클라베에서 교황에 선출되기 전이었습니다. 그는 비록 본의야 이미 정해졌다고 해도, 차기 교황으로서 말은 신중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확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길게 모호한 답을 한 후,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분을 임명할 생각이 있다고 누가 그러던가요?(즉,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어?의 의미겠죠)" 사실 이 일화는 정치적으로 미묘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에피소드인데, 여튼 이런 다소 곤란한 상황에서도 그는 유머와 여유를 잃지 않습니다.

 

p74를 보면, 부하직원이라고 해서 그의 존엄이 무너질 만큼 호되게 야단을 쳐서는 안 된다는, 요한 23세의 너그롭고 온화한 마음이 잘 드러나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래서 고위직에는 평범한 이들의 마음을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인사가 취임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대중과 국민의 정서와는 전혀 동떨어진 모습을 노출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서, 우리는 언제쯤 이런 지도자를 갖게 될지 깊은 한숨을 내쉬게도 됩니다. 여러 면에서 이 전설적인 교황과 컬러가 비슷하다는, 현 프란체스코 교황에게도 많은 기대를 가지게 하는 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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