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꽃
장 퇼레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소설보다 더 극적이고 더 믿어지지 않는 게 바로 현실이라고도 합니다.

 

장 퇼레의 이 신작은 나폴레옹의 제 1제정부터, (묘하게도) 그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이 기만적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던 제 2 제정의 시기까지, 수 많은 사람(고용주, 고객, 이웃, 친구, 성직자, 심지어 제 부모를 포함)들 을 죽인 연쇄살인만 엘렌 제가르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아마 기록으로 남아 있는 중에는 최악, 최대의 사건으로 평가될 만합니다. 이런 실제 역사를 두고, 남아 있는 기록을 철저히 연구하여, 요즘 그로테스크한 작풍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장 퇼레가 소설로 옮겼습니다.

 

사건의 스피디한 전개나 기상천외한 반전보다는 독특한 분위기의 형성에 장기를 가진 그 답게, 어찌 보면 실화가 아닌 우화나 판타지가 아닌가 싶게, 당장이라도 해협의 짠바람 냄새가 코 끝에 확 와 닿을 것 같은 분위기 묘사가 일품입니다. 살인마가 누구인지는 우리가 다 알고 있으며, 그녀가 실제 어느 경로를 통해 움직이며 누구를 죽였는지는 우리가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읽어가며 특별한 서스펜스가 자아내지지는 않습니다. 물론, 엘렌 제가르도(스스로를 켈트 죽음의 정령 "앙쿠"라고 생각하는)의 섬찟한 대사, 독살의 사냥감으로 점 찍은 이를 두고 조롱 섞인 예고를 하는 장면(그러니, 연쇄 살인마일 뿐 아니라 예고 살인마이기도 합니다)에선 독자의 머리칼이 쭈뼛 서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대체 이 참극의 진상이 무엇이며, 어떻게 결말이 날 것인가?"를 두고 조마조마해진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어려서부터 요정으로 착각될 만큼 눈부신 미모를 지닌 엘렌은, 그 미모와 함께 받은 저주의 탓인지 가는 곳마다 사람을 죽이고 다닙니다. 그런데 이 살인 행각이, 그닥 넓지도 않은 브르타뉴 반도 안에서만(시대 상황 탓에 교통 발달이 이뤄지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이십 년 가까이 이어졌는데도, 왜 범인이 잡히지 않았을까요? 더군다나 살인의 현장마다 그녀가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우선, 불우한 처지에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처연한 감정을 자아내는 엘렌 그녀의 미모를 들 수 있습니다. 인 간이란 어쩔 수 없이 감각의 속임수에 굴복하는 동물인지, 예쁘게 생긴 여인이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라 쉬이 여겨 버립니다. 범죄자로 지목하기는커녕, 모두가 죽은 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았다며, 오히려 성녀로 떠받들기까지 합니다. 그 런가 하면, 그런 극성을 부린 지 얼마 채 되지도 않은 똑같은 군중이, 이번에는 그 "성녀"를 마녀로 간주하며 린치를 가하려고도 합니다. 물증, 심증을 새삼 찾아서가 아니라, 미모에 시샘이 났기 때문입니다. 조기에 발견되어 처단 되었어야 할 범인이, 이 토록 오랜 동안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다닐 수 있었던 건, 어찌 보면 이런 대중의 무지몽매함과 광기 때문입니다. 지각 있는 이들은, "미개한 지역민들이 애꿎은 처녀에게 마녀 사냥을 하려 든다."며 일부 옹호하는 여론까지 형성하려 듭니다.

 

뻬어난 미모로 캐릭터를 꾸리기는 했지만, 장 퇼레는 자신의 이 작품에서 마냥 엘렌을 옹호하려 들지 않습니다. 오 히려 그 반대입니다. 하녀, 하층민, 힘 없는 생물에게 아주 잔인하게 구는 악동 도련님(왠지 홈즈 단편 <너도밤나무 집의 비밀>에서 슬리퍼로 바퀴벌레를 죽이는 루캐슬의 어린 아들을 떠올리게 되더군요. 그렇다고 엘렌이 바이올렛 양과 비슷하다는 건 아니구요)을 독살하면서 "네가 꼴보기 싫은 모습이 아니었다고 해도, 착한 아이였다고 해도, 넌 어차피 죽었을 거야."라고 내뱉는 그녀에게, 우리는 일말의 동정도 가질 수 없습니다. 살의와 악의로만 무장한 괴물이지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습니다. 엘렌이 저 대사를 애써 뱉어내게 하지 않았어도, 우리 독자는 엘렌 머리 속에 그런 생각이 꽉 차 있음을 이미 짐작합니다. 혹시 엘렌에 대해 재고의 여지(악인만을 찾아 죽이는 나름 정의의 집행자)가 없을까 애써 선해하려는 독자에게, 퇼레는 쐐기를 박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 없고요, 얜 그냥 괴물입니다. 딴 생각일랑 괜히 하지 마세요."


환속하여 놀랍게도 매춘 업소를 항구에 꾸린 어느 전직 신부를 찾아가, 엘렌은 자기를 써 달라고 합니다. 딱히 엘렌이 색정에 불탄다거나 한 성향도 아닙니다. 사람을 죽일 기회가 확보된다는 동기 뿐입니다. 이 수병들은 마침 한창 제국주의적 팽창욕에 달떠 있던 프랑스의 침략 도구로 쓰이는 병력입니다. 알제리 어느 구역으로 쳐들어가, 신나게 양민을 죽이고 왔다는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늘어 놓은 군인들을, 엘렌은 15세 어린 병사까지 남김 없이 독살합니다. 생계가 어려워 입대했을 뿐인 소년병은 "어머니 저는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이렇게 죽나 봐요."란 말을 마지막으로 남깁니다. 어느덧 40을 넘겨 그런 아들을 봐도 자연스러운 나이의 엘렌은, 그러나 아무 감정이 없습니다. 뜰에 쌓인 낙엽을 치워도 아마 그 이상의 회한은 남을 것입니다.

 

소설 마지막에는 드디어, 비소라는 독극물의 존재를 명 확히 인지한 당국의 노력으로 엘렌이 검거됩니다. 엘렌 같은 무학 빈곤의 떠돌이가 그런 정제된 독극물을 갖고 있으리라곤 짐작이 어려웠고, 비소는 여러 추리물에서 흔히 나오듯(특히 크리스티 여사의 작품들, 그리고 [다소 의외지만]올더스 헉슬리의 어느 단편에도, 이 흔적을 남기지 않는 독극물은 단골 출현 손님입니다), 일개 연대 병력을 몰살시킬 가공할 만한 물질이기(아주 상투적 표현이죠, 이 소설에서는 그러나 문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때문에, 엘렌은 비로소 끈질긴 추격자들의 노력, 그리고 살찌고 시들어 버린 미모 때문에 드디어 꼬리가 밣힌 것입니다.

 

변호사는 책임 무능력을 이유로, 현란한 말솜씨를 더해 엘렌을 감쌉니다. 하지만 정신 이상 항변은 예나 지금이나 먹히지 잘 먹히지 않습니다(이 시대라면 아직 책임무능력 이론이 정립되기 전이므로, 약간 아나크로니즘이긴 합니다). 엘렌은 기이하게도, 판결 확정 후 사형 집행 며칠 전에야, "나는 내 부모가 주입시킨(그리고 아마 브르타뉴의 미신적 환경이 가르쳐 준)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공포를 잊기 위해, 내 자신이 공포가 되었다."고 털어 놓습니다. 주위에선 "왜 그 얘기를 법정에서 하지 않았어요?'라고 하지만, 특별히 정상 참작이 될 사유는 못 됩니다. 정말로 처형 직전 밤, 그녀는 잠자리에 오줌을 쌉니다. 그녀는 악령 앙쿠에 사로잡혀 삼십 년을 보냈고, 이제 쓸모를 다해 마수에서 풀려 나는 순간, 비로소 어린 10대 소녀의 마음이 아주 잠깐 돌아온 것입니다. 하지만 죽음 직전까지 그녀는, 이미 스스로 선택한 결과라는 듯 "앙쿠의 정체성"을 계속 유지하려 합니다. "기요틴에 잘려 나간 내 머리를 볼 수 있게 거울 하나를 비치해 주세요."

 

유럽 전역에 가장 먼저 고유의 문화와 습속을 형성하며 정착한 켈트인이지만, 로마인, 게르만인, 앵글로 색슨인에 의해 거의 전 지역에서 정복되고, 정복자의 풍속과 사고, 종교를 강요 받고, 서글픈 한을 뼈 속 깊이 간직한 게 켈트인입니다. 브르타뉴 반도는 프랑스에 의해 완전히 중앙집권화 되기 전, 영국 왕실의 영지, 재산으로 남았던 곳입니다. 소설에서 잘 드러나듯, 켈트인들은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이중으로 침탈되고, 멸시와 경계를 받던 가난한 민중이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밀려 사멸해 가는 개성 강한 영 혼의 몸부림에 대해, 그러나 퇼레는 그저 연민과 동정만을 보내지 않습니다. 그들은 미개하고, 광기에 사로잡혀 있으며, 때로는 허황된 자존감으로 자기 기만에 빠져 있습니다(엘렌은 아버지 장을 향해 "아빠는 남의 도움으로 먹고 살면서 어떻게 그 빌어먹을 왕당파에 동조할 수 있죠?"라고 비웃습니다. 사실 장은 스스로 귀족의 후예라 믿고 있기도 합니다. 브르타뉴 반도는 본디 이민족 도래 귀족이 토착민을 지배하던 곳이니, 자신은 최하층민이면서 정반대의 환상에 사로잡힌 셈이죠). 그들은 그들대로 멸종의 운명을 맞이할 이유가 있지만,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그 오기도 우리에게는 인상적입니다(특히 선돌로 빚은 성수대에 칼을 갈며 행운을 기원한다든가, 성수에 구토를 하며 죽어가는 장면 등은 그로테스크 상징의 극치를 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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