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 행복과 불행은 어디서, 어떻게 교차하는가
문지현 지음 / 작은씨앗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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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400페이지에 달하는, 대단히 두꺼운 책입니다. 요즘 이른바 힐링을 해 준다는 책도 많이 나와 있고, 현대인 사이에서 나날이 증가하는 정신병에 대한 증상 소개, 처방 제시를 하는 책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책들 중에는, 저자가 마치 우월자의 입장에서 그런 환자들을 내려다 보는 시선으로 쓰여진 책도 있고, 힐링을 한다면서 현실에서 잘 통하지 않는 덕담, 공론만 잔뜩 늘어놓는 책도 있었습니다.

이 책의 특징은, 첫째 사례가 많고 그에 따른 진단과 처방 제시도 따라서 많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저자의 어투가 대단히 친절하고 공감 지향적입니다. 마지막으로, 논의가 성의있게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어떤 책은 사례를 많이 제시해 놓고도 결말을 무책임하게 지어버리기도 합니다(빈약하게 얼버무리거나). 이 책은, 사례를 자세히 적어 놓고, 챕터를 일단 거기에서 끊습니다. 이러면 독자는 그 환자에 대해,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하고, 결함 가득한 성격을 지니게 되었을까? 그 해법은 무엇일까? 잠시라도 이런 간격을 가지면, 그 다음 챕터에 이어지는 저자의 진단이 보다 머리에 잘 들어오고, 이미 (대략이나마) 형성된 자신의 생각 틀을 통해 저자의 사고를 보다 적극적으로(혹은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습니다.

첫째 장에서는 "죄책감"을 다룹니다. 요즘 흔히 거론되는 "사이코패스" 타입이 집중 소개됩니다. 안와전두엽의 손상은, 뇌에서 금기와 통제를 관장하는 부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결과를 낳는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른바 "가성 사이코패스" 환자로서, "진성 사이코패스" 유형과 거의 같은 행동 유형을 보입니다. 보통 어렸을 때 사랑을 받지 못해 전두엽 부분이 잘 발달하지 못한 자가 이런 불행한 운명을 맞는 일이 잦다고 합니다. 몇 년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고종석 사건 역시, 성장 과정에서는 물론 성인이 된 후에도 범인을 지속적으로 따돌리고 학대에 가까운 차별을 가한 그 주변의 행태가 지적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어떤 사회적 보완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기야 집단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일에는 전혀 죄책감을 안 느끼는 이들도 있으니, 인격의 반사회성을 굳이 전두엽 손상이라는 외적 팩터에만 돌릴 것도 없습니다. 언제나 "가성"보다는 "진성"이 더 위험한 법이니까요.

중요한 건, 죄책감이 지나쳐도 망상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사이코패스 등은 범죄로 의율하면 되지만(이게 바람직한 형사정책인지는 논외로 하구요), 죄책감이 지나쳐서 대인 관계에 지장을 받는 건 평범한 이들 사이에서도 비교적 흔하게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온 희진씨(이름은 물론 다 가명입니다)처럼, 잘못이 없거나 경미한 쪽에서 오히려 더 죄책감을 가지는 일이 흔합니다. 천성이 뻔뻔스럽고 어려서부터 사랑을 못 받거나, 사회가 제 기대대로 자신에게 사랑을 더 많이 베풀어야 한다는 발달장애를 가진 인간은,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도 오히려 남이 자신에게 죄책감을 갖길 기대합니다.

"연주씨"의 사례는, 어찌 보면 간단한 심적 자세의 전환과 마음가짐이, 이런 마음의 장애를 처리하는 데에는 대단한 지혜가 될 수 있다는 걸 말해 줍니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마음을 잘 다루는 사람입니다. 이 챕터 뿐 아니라, 이 책의 모든 장은 결국 "어떻게 하면 마음을 잘 다스려서, 공연한 정력 소모로부터 나를 해방시키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책의 저자가 이처럼 환자들에게 다 가명을 붙여 신상을 보호함(그건 저자로서 당연하죠)과 동시에, 일일이 "~씨"를 붙여가면서 최대한의 공감과 배려, 애정을 표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이 책에는 연주씨, 희진씨 처럼 슬기롭게 "병" 혹은 감정 장애를 극복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고 불행의 나락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이들에 대해서도, 마치 죄인이 응보를 받았다거나 나보다 못한 열등분자를 내려다 보는 (비뚤어진)쾌감을 깔면서 대하지 않고,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분노"를 서술한 두 번째 챕터도 곱새길 내용이 많았습니다. 심리학 개론에서 으레 다루는 내용이지만(프로이트의 창안 개념이니 당연하죠?), 억압(repression)과 억제(suppression)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문지현 박사님은 차분하고 친절한 어조로, 왜 억압하지 않고 억제를 해야 하는지, 마치 보모나 선생님처럼 자상하게 지도해 주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이 두 개념이 늘 헷갈렸는데, 이 책의 이 장을 읽고 나서는 확실하게 머리에 자리잡더군요.

이 챕터에는 유독 불행한 인생이 많이 소개됩니다. 주제가 "분노'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어려서 불행하게 자랐든, 정반대로 너무 과잉보호를 받고 자라서 가정이라는 둥지만 벗어나면 무능, 감정 조절 장애로 도통 적응을 못 하는 처지이건 간에, 성인이 되면 알아서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른이 되어서도 이런 문제를 타인에게 상담을 받아야 하거나, 남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을 우리가 실제로 동정어린 눈으로 잘 보지는 않습니다. 유독 이 책은, 이들에 대해 기능적이면서도 동조적인 태도로 접근하기 때문에, 독자도 읽어 나가면서 "저런저런, 어쩜 좋아. 뭔가 해결책이?" 같은 긍정적인 시선을 유지하게 됩니다.

슬품과 우울, 두려움, 불안, 트라우마,.... 이 모든 것에 공통된 처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피하지 말고 마주 보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를 향해 어차피 자기 리듬으로 직진해 오고 있습니다. 이를 회피하여 눈을 감아 버리면, 그 문제는 우리가 대비하지 않은 사이에 우리에데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대비를 해도 그 문제는 여전히 우리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지만, 무방비상태에서 당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같은 문제가 우리에게 같은 방식으로 상처릃 주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먼저 그 문제를 똑바로 직시하는 게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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