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플 패키지 - 성공의 세 가지 유전자
에이미 추아.제드 러벤펠드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누 구나 한 번 사는 세상에서 남 보란 듯이 거두고 싶은 것이 성공이지만, 막상 현실이라는 게임의 복잡한 룰 앞에 서면 어디서부터 수(手)를 두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 지름길만 찾아 가는 방법을 부모님한테서 전수받기라도 했는지, 남들이 몇 번 겪는 시행착오도 겪지 않은 채 낙하 물체가 중력의 법칙을 따르듯 고비고비 잘만 최단거리를 골라 잡습니다. 과연 성공의 유전자나, 그 특별한 비결이 따로 있는 것일까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그것의 주체가 "개인"으로 설정되어 있는 이상, 아마 근미래에는 찾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 런데, 기준이 되는 카테고리를 특정 인종, 특정 문화가 지배하는 그룹으로 잡았을 때, 유난히 성공자의 비율이 더 놓게 나타나는 결과를 목격하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그룹은 본디 주류 집단, 지배 계층으로부터 천시되던 이들이기도 했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먼 중세부터 유럽 도시 공동체에서 활동하기 위해 신체에 특별한 표징을 패용하고 다녀야 했고, 중국인 이민자들이 골드 러시를 계기로 아메리카 대륙에 건너 왔을 때 그들에게 주어졌던 일감이란 쿨리[苦力]의 일이 고작이었습니다. 조지프 스미스가 선지자의 계명을 받았다며 자신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다녔을 때, 그에게 돌아온 대접은 타르와 깃털을 알몸에 바르고 조리돌림당하는 극한의 치욕과 고통, 그리고 이은 죽음 뿐이었죠.

남 들보다 나은 위치에서 출발하기는커녕, 오히려 핸디캡을 안고 레이스를 맞이해야 한다면, 게임은 시작하기도 전에 그 결과가 반 이상 결정되어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목격하듯이, 이들 마이너리티 클래스에서 도리어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성공자 표본 비율이 발견됩니다. 상식이 예견하는 바와는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이 결과를 보고 질려 버린 우리들은, "어떤 사람들은 성공을 위한 특별한 유전자를 물려 받기라도 하기에, 불리한 상황을 딛고 저처럼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펼칠 수 있나 보다."하고 결론을 내립니다. 나 같으면 도저히 저렇게 못하겠다 싶으니, 어떤 결정론적 인자가 인과 과정에 개입하기라도 하는 양 결론을 내리는 게 차라리 속이 편하죠.

이런 논의는 일단 수면 위로 구체적인 논박이 오갈수록 분위기가 나빠집니다. 어떤 사람, 혹은 민족, 종교집단의 정신적 자질이, 나를 포함한 평균보다 특별히 낫다는 걸 받아들이기가 대단히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맨 위에 적은 대로, 그냥 어떤 집안이나 특정한 개인이, 머리가 대단히 좋고 정신적 자질(근면성, 인내심)이 뛰어난가 보다 여기는 건 차라리 거부감이 덜합니다. 그러나 예로부터 천대받던 집단에, 알고 보니 우월 요소가 몰려 있더라는 결론은, 진정 집단 분노를 유발하기에나 딱 좋은 "떡밥"입니다. 이런 "인지 부조화"를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요? 누구누구들이 잘 나간다는 건 이미 눈 앞에 보이는 현실이니 말이죠.


셀 러브리티 커플로 유명한 제드 러벤펠드(어디서 많이 들었는데.. 하시겠지만, 실존 인물 융을 빗대어 캐릭터 영거를 등장시킨,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프로이트 박사가 나오던 미스테리 팩션물 <살인의 해석>을 지은 바로 그 사람입니다)와 에이미 추아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해서 광범위한 실증적 분석을 행하고 이번에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그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이네들이 성공하는 건 과연 특별한 무엇인가가 개입해서였을까?"


이 부부의 저작이라고는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부인 추아 여사(그녀도 남편처럼, 본디 저술가로 시작한 경력이 아니라 예일에서 교육 받은 법학자죠)의 내러티브가 더 강하게 느껴지더군요. 그렇다고 레벤펠드의 기여가 적은 것도 아닙니다. 부인이 중국계이고, 자신은 폴란드계 이민자의 후손이며, 학창 시절부터 주변으로부터의 왕따 취급을 감수하고 무진장 노력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이런 책을 한번은 저술하고 싶은 충동이 평생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나올 책이 나오고야 말았다." 정도의 느낌이랄까요.



사 실 이런 책은 내용의 결론만 요약하는 일이 큰 의미가 없습니다. 과연 그럴 만한 결론이 적정한 노력과 연구, 검증을 거쳐 도출되었는지, 꼼꼼한 독자는 저자가 펼친 모든 논의 과정을 다 검토한 후에 그 저자가 내린 결론의 당부를 판단해야 하죠. 하지만 이 책은, 그 살벌한 경쟁의 파고를 뚫고 - 더군다나 소수인종, 소수파 출신이라는 불리한 초기조건까지 딛고 - 성공을 이뤄 낸 이들의 사연이, 제법 두툼한 볼륨 가득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더군다나 Heroic Horatio 같은 가공의 스토리가 아닌, 실제 이야기가 뿜어 내는 감동이 있기 때문에), 과연 나올 만한 결론이 나왔는지 눈에 불을 켜고 꼬투리를 잡는 피곤함이 없더군요.


과정을 훑는 일도 재미있었지만, 이 커플이 내놓은 결론이 더 그럴싸합니다. 이 책 제목을 보십시오. <트리플 패키지>... 솔직히, 딱 봤을 때 하나도 진지한 기대가 안 되었습니다. 저런 속되고 경박한 제목에 무슨 진리가 숨어 있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 과정도 진지하고 밀도 높았지만, 이런 결론을 용케 추려 내는 것도 쉽지 않았겠구나 싶더군요. 굳이 적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SUPERIORITY COMPLEX

긴 설명이 필요 없죠. 주의해야 할 건, "컴플렉스"란 여기서 (우리가 흔히 착각하듯) 열등감만으로 이뤄진 심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열등감과 우월감이 동전의 양면처럼 얽혀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열등감으로만 가득 차 있다면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우월감만으로 가득하다면, 그 역시 노력이라는 게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 요소가 내면에서 길항 작용을 이루며 결합하고 있어야, 본연의 잠재력이 발휘될 수 있죠.


INSECURITY

이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라기보다, "잘해야 하는데.. 뭔가 보여줘야 하는데..." 같은 긴장감과 비슷한 함미입니다. 이런 심리적 요소가 없으면, 그 사람은 발전에의 유인을 찾지 못하고, 일상에서 성공을 위한 바른 습관을 들일 수가 없습니다.


IMPULSE CONTROL

이런 복합적인 충동은 물론 성공을 위한 좋은 추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그 사람의 내면에 불안 요소만 남기고 끝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충동의 조절이 필요하고, 이는 보다 높은 차원에서의 절제와 균형감각과도 상통하는 문제입니다.


소수 인종, 마이너리티가 출세했다는 공통점을 가지면서, 이 저자들이 다루지 않은 예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인도에서 지금까지도 소수 종파로 많은 불이익을 당하는 시크 교도라든가, 반대로 소수파의 불리함을 딛고 부단한 노력 끝에 이제는 엄연히 사회의 지배 엘리트로 자리잡은 자이나 교 신자들이라거나 하는 예가 그것입니다. 이 러벤펠드, 추아 커플이 제시한 사례와 그 결론의 프레임을 거기에도 대입해 보면, 고스란히 잘 들어맞는다는 게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저자들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극적이고 감동적이기까지 한(?) 교훈을 도출하기까지 합니다. 바,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이 "트리플 패키지"를 동력으로 삼아 오늘날 세계 패권국의 자리에 섰다는 명제입니다. 사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원주민의 희생, 집단 살상, 그를 바탕으로 한 자원의 착취 등에 기반한 면 크기 때문에, 이런 결론까지를 아무 무리 없이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하지만, 저자들은 예컨대 manifest destiny 같은 제국주의 정당화 논리를 펴는 게 아니라, 그 중에 내포된 겸손, 근면, 자기 절제, 초심으로 돌아가기 같은 미덕을 강조하고 있으므로, 굳이 거부감을 느낄 것까지는 없겠습니다. 간만에 좋은 책 한 권 잘 읽은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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