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경영하라 - 어떻게 똑똑한 결정을 내릴 것인가
민재형 지음 / 청림출판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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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생겼다"는 지적과 "무식하다"는 지적 중 어느것이 더 가슴아프게 다가올까요? 청소년이나 대학생 시절에는 몰라도, 치열한 생존 경쟁을 통해 누가 더 많은 수익, 실적을 올리느냐로 그 사람의 가치가 결정되는 성인 시절에는, 아마 후자가 더 깊은 상처를 안길 수도 있습니다. 후자는 지적 능력의 결핍, 무능력, 이로 인한 현재의 열악한 경제상황까지 포괄적으로 암시할 가능성이 크니까요. 아예 어떤 사람은 아마 이 두 가지 말을 모두 듣고 지내는, 지속적 스트레스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이상 성격과 낮은 학교 성적으로 왕따 신세, 사회로 나오면 무능으로 인한 백수 신세. 하지만 이것으로 인생이 끝난 건 아닙니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면, 반전의 기회는 평균적 확률만큼은 그에게도 열려 있습니다.


중 요한 건 느낌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초래되는 효용, 다른 말로 통장 잔고입니다. 지적을 받든 말든, 그 사람이 실속 없는 감정 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착실히 내실을 다지는 선택을 한다면, 언제가 그 사람은 오히려 남들을 향해 편안히 그런 지적을 할 수 있는 우월 권력자의 위상으로 올라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현재의 비참한 실상을 가리러 거듭되는 bluffing, 전망 없는 투기,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자신 주위의 극히 일부 지인을 제외한) 얼척 없는 스펙 쌓기, 나아가 자기 만족을 위한 터무니없는 도발, 깜짝쇼 따위에만 몰입한다면, 그 사람의 미래란 더 이상 볼 것도 없이 파멸로 치달을 것입니다.

우 리는 순간순간 주어지는 선택의 상황에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선택을 해야 당장의 나은 결실, 미래의 더 나은 비전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기분에 따른 비합리적 선택을 한다면, 당장은 물론 먼 미래에 지금보다 더 나쁜 처지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두고 합리적이다 그렇지 않다를 판단하려면, 그 사람이 선택의 순간에서 합리적인 결정을 하는 "습관"이 들어있는지를 그 기준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주머니 사정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거나, 점점 더 나빠진다면, 그 사람은 자신에게 이롭지 않은 비합리적 사고를 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서라고 말해도 될 것입니다.

근 대경제학은 "인간은 합리적 사고를 한다."는 대전제 하에 그 화려한 발전상을 보였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거래, 교환, 생산 등의 치열한 상호작용이, 이처럼이나 정교하고 정연한 수학적 구조로 표현될 수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기에, 애덤 스미스가 창안하고 레옹 발라(왈라스) 등이 극성(極盛)의 치장을 들인 경제학은 사회과학의 여왕으로까지 칭송 받았습니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 이런 평판과 권력은 도전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론이 그 현실적 결과를 예측하는 데에 상당한 오차를 매번 보인다면, 그 이론이 타당성은 근본에서부터 의심을 받아야겠죠. 이이 대한 심각한 반성의 산물로 나온 것이, 카너먼과 故 트버스키 등의 "행동경제학"이었습니다. 이 이론은, "인간은 비합리적인 동물이다"라는 명제를 가르치기 위한 게 아니라, "어떤 생각 습관이, 합리적이어야 할 인간을 비합리적 동물로 자꾸만 몰아가는가?"를 규명하는 의도입니다. 달리 말하면, 나쁜 습관이 구체적으로 과연 무엇무엇인지를 짚어 내어, 그를 바로잡거나 제거해서 합리적인 인간, 선택의 순간에 착각을 범하지 않는 인간으로 교정하려는 의도를 가졌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이 책은 "잘 경영되고 잘 관리된, 다듬어진 생각이, 언제나 내가 하는 선택을 합리적이고 실속 있는 것으로 만들게 하자"는 취지 아래, 그 구체적인 방법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총 7장으로 편성되어 있는데, 첫 장은 "왜 종래의 생각 습관에 대한 교정이 필요한지"에 대한 서론이며, 본론 6챕터에서 이어질 주장이 군데군데 요약, 암시되어 있기도 합니다. 즉, 고정 관념에 사로잡히는 게 얼마나 위험하고 터무니없는 착각을 유발하는지 많은 사례를 들어 소개하고 있습니다.


위 의 그림을 보시면 왼쪽이 종래의 케첩 용기이고, 오른쪽이 개량된 것입니다. 굳이 손으로 흔들어 치고 짜내는 수고를 할 것 없이, 보관 상태의 지속만으로 자연스럽게 사용상의 불편이 해소되는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다만, 이 아이디어가 어느 시장에서나 우월 통용력을 확보하리라는 기대는 곤란합니다. 나라에 따라서는 용기의 전복된 형태가 막연한 시각적 불안감을 유발할 수도 있고, 내용물의 용기 잔여에 대해 큰 집착을 보이지 않는 행태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한국에서 하인즈 메이커가 고전하는 이유(일부 특징적 거주 지구는 제외)는, 단지 입맛에서의 취향 차 외에도, 이런 디자인에서의 이물감이 한몫하는 지도 모릅니다. 이런 의미에서도 "고정 관념에서의 탈피"는 중요한 과제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공의 가장 큰 적은 성공"이라는 명제가 여기에도 적용되어야 마땅하다는 뜻입니다. 한 시장에서 통하던 비결이, 다른 시장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리라고는 절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제 2장부터 제 7장까지에서 "우리의 판단에 개입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제목 아래, 합리적인 판단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비합리성 팩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 떤 판단을 할 때에는, 그 판단과 직접 관계 있는 정보에 더 큰 비중을 두고 과정을 밟아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보통은, 자기 머리 안에서 잘 떠오르는 정보, 그것 하면 먼저 딱 떠오르는 정보를 꺼내어, 상황에 가장 먼저 적용을 시킵니다. 중요하지 않은 정보이지만, "아니라면 왜 내가 가장 먼저 그것부터 생각했겠어?'하는 과신 때문에, 하찮은 정보를 가지고 큰 용기를 얻어 그릇된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사고가 유아적이고 성숙한 자아를 갖추지 못한 이들이 흔히 이런 오류에 빠집니다. 책에서 예를 드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광고입니다. 품질을 따져 보고 결정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잦은 광고에 노출되어 머리에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를 대뜸 고르게 되는 습관이, 이 회상용이성(availability)의 좋은 실례죠. 이와 관련된 오류의 또하나의 예가 "선례의 함정"입니다. 과거에 이렇게 해 보니까 되었다고 해서, 현재에 같은 방법이 또 통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과거와 현재는 상황이 많이 다른데, 이를 같다고 착각하는 습관이 바로 비합리성의 덫인 셈이죠.


선 례의 함정이, 일종의 무사안일을 부추긴다면, "횟수주의(frequency counting)" 역시 우리의 바른 인지를 방해하는 착시 팩터입니다. 책에는 기아차의 리콜, 수리 횟수를 제시할 때, 다른 브랜드와 절대 수치를 단순 나열하여 마치 횟수만 가장 높으면 불량률도 따라서 높은 것처럼 착각을 유발하는 사례를 소개합니다. 많이 팔린 차는 자연스럽게 리콜 횟수도 높아질 테지만, 전체 비율은 덜 팔린 브랜드보다 오히려 낮을 수도 있습니다. 우량품과 불량품을 가를 때에는, 단순 절대치보다 상대 비율을 놓고 생각해야 합니다. frequency가 아니라, ratio가 중요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1+1=2가 언제나 긍정적인 영향을 낳는다는 착각도 있습니다. 한 번의 실패에 또다른 실패를 거듭하면, 그것은 불행이 가중될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 보다는 둘이 낫다는, 철저한 비합리와 충동적 사고에 매몰된 자는, 한번의 실패도 부족해서 두번의 무모한 도박을 감행합니다.


이 와 관련해서 중요한 명제 하나가, "실수를 하되 빛나는 실수brilliant mistake를 하라"는 주문입니다. 시도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은, 실패를 할 이유도 없죠. 그러나 그 사람은, 그렇게 무위도식으로 생을 채운다는 자체가 벌써 실패의 드라마를 완성하는 중입니다. 에디슨은 전구 필라멘트 적합 소재를 찾는 데에 엄청난 시행 착오를 기록했지만, "이제 부적합 소재 9999개를 발견했을 뿐"이라며 긍정적인 마인드를 과시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설사 일이 실패로 끝난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무엇인가 배울 수 있는 실패를 해야지, 위에서 본 대로 "그저 제 기분을 만족시키는 데에만 좋은" most available, most favorable한 실수를 해서는 곤란할 것입니다. 특히 자아가 성숙하지 못 하고, 충동적으로 "이러면 내 기분이 좋아져!"라고 일단 저지르고 보는 타입의 실수는, 생산적 실수가 아닌 그저 파멸에의 돌진에 불과할 것입니다.

기 분이 좋아진다고, 간절히 원하기만 한다고 어떤 성과가 저절로 나올 리는 없습니다. 효과를 내기 위한 유효적절하고 직접적인 수단을 동원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능력이나,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과도한 장밋빛 전망을 가지기에, 때로는 처참한 실패를 맞이하곤 합니다. 이를 두고 Stockdale paradox라는 유명한 말이 생긴 거죠(Stockdale은 물론, 엄혹한 환경의 시련을 극복하고 생환된 사람입니다). 지난 번 집필이 대실패로 끝났으니, 이번 건은 반드시 대박을 칠거야! 실패하는 얼치기들은 이런 터무니없는 기대 끝에 똑 같은 실수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거듭된 실채를 통해 이미 학습된 기억이 부실한 머리에도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기왕 망하는 것 기분이라도 좋아지자!"하며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컨텐츠를 채우다가, 소송에 걸려 자신과 주위를 패가망신으로 몰아 넣기도 합니다. 이기는 습관, 지는 습관이란 그것도 습관이기에, 사람마다 들이기 나름이고 후천적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데, 루저, 백수는 그 간단한 인격 교정이 안 되어 나중에 큰 대가를 치르게 되죠. 퇴폐적이고 말초 향락만을 추구하는 매춘부 역시, 늙어가는 자신의 육체를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과거 편향(past bias)에 빠져 가망 없는 현재는 물론 먼 미래에도 손쉬운 생업 영위가 가능하리라 최면에 빠집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녀에게는 "잘나가던 과거"조차도 없었습니다만, 편의적 인지 왜곡에 빠져 현재의 오류와 무기력을 합리화하는, 이른바 "신 포도(sour grape)"의 행태를 보이는 거죠.


(스톡데일 제독)

이 와 같은 모든 "나쁜 습관"을 제거한 후, 그 빈 자리에는 무엇을 새로 들여 놓아야 할까요? 우리가 올바른 "생각 습관"을 몸에 붙여야 하는 이유는, 결국 "정확한 미래 예측"을 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위에서도 말한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이를 위해 대략 다음과 같은 준칙을 제시합니다.
1) 준거집단을 설정하라
2) 그 준거집단의 분포를 분석하라
3) 이 정보를 바탕으로, 전문가의 예측을 안출하라.
4) 그 예측치의 질을 평가하라.


보 통 3)의 단계에서 머물고 말지만, 위에서도 보듯 한 번의 시도에 만족해, 최적해를 구할 수는 없습니다. 3)은 언제나 불완전하며, 조정의 대상이 됩니다. 4)라는 피드백은 언제나 수반되어야 하며, 이것 없이는 프로세스의 개량이 불가능합니다.

이 단계를 거친 후에 비로소
5) 최종적 조정을 행합니다. 이 공식은
(준거집단의 평균)+(상관계수)×(직관적 예측치-준거집단 평균)
입니다.

이 식을 제가 조금 변형해 보겠습니다.
(1-상관계수)×(준거집단의 평균) + (상관계수)×(직관적 예측값)

상관계수가 점점 늘어나서 1에 가까워지면
(1을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비율이 100%를 넘어갈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답은 그냥 (직관적 예측값)입니다.

그렇지 않고 0이라면 답은 (준거집단의 평균)입니다.

여 기서 (직관적 예측값)이란, 과거의 경험을 통해 "척 보고" 도출한 휴리스틱 결과입니다. 과거와 미래의 상관 계수가 높다면, 이 직관(휴리스틱)도 맞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반대로 낮다면, 직관은 그저 무시하고 준거집단의 평균, 실측치에 따라야 합니다. 이런 경우라면 준거집단을 무엇으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그 프로젝트의 생사가 달릴 것 같습니다.

저 변형 공식에도 나와 있듯이, 올바른 예측은
실제로 행한 조사와, 과거에 이러이러했다는 경험적 직관 사이의 어느 지점입니다. 어느 하나에만 완전히 의존하면 안 됩니다. 상관계수란 결국 어느 요소를 어느만큼 늘리고, 다른 걸 얼마만큼 줄이냐 하는 배합 비율의 선택입니다.

올 바른 선태을 하려면, 연관 논리의 오류associative logic error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좋은 예로, 천재들은 약물에 의존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여성인 경우 가슴이 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명제를 역형태로 바꾸어, 약물에 의존하거나 가슴이 크면, 그 사람이 곧 천재라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성립하기는커녕 경험칙에조차 강한 강도로 반하며, 어느 누구도 수긍하지 않을 것입니다. 논리학의 절대 진리 중 하나가, 원 명제가 참이라고 해서 그 역이 참이라는 보장은 결코 없다는 거죠. 많은 실패자들은, 바로 이 연관논리의 함정에 빠져, 자신의 패가 거의 투기등급에 가까운 것임에도 이를 눈 질끈 감고 외면합니다. A가 잘 되었으니 나만 유독 안 되라는 법이 있겠어? 초기 조건, 세부 조건이 모두 다르므로 우연에 의한 국소 조건이 겹쳤다고 같은 결과가 나옳 수는 없죠.

계 속 실패만 해 온 사람은, 실패를 하는 그 습관이 어느 정도 그 사람의 인격을 지배하기 때문에, 이를 벗어나기가 힘듭니다. 습관을 고쳐서 상황을 개선해야겠다는 자체가 합리적 사고 습관의 시발점인데, 이 첫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은 거죠. 이 책에서는 안전지대secirty zone과 안온지대comfort zone의 구별을 제시하며, 후자에서 전자로 빨리 이행하는 게 합리적 사고의 실행이라고 주장합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여기에서도 타당히 적용되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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