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면아이의 상처 치유하기
마거릿 폴 지음, 정은아 옮김 / 소울메이트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성적으로는 "내일 일찍 일어나서 자료를 챙기고, 회의에서 제기될 어떤 안건에 대해서도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지." 하는 결의를 다집니다. 그러나 막상 새벽녘이 되면, 시틀
르 걷고 단호하게 일어나기를 망설입니다. "이 회사에서 과연 내 능력에 맞는 대우를 내게 충분히 해 주었던가? 그저 남들 하는
만큼만 일하고 때 되면 적당히 승진이나 챙기는 게..." 이상하게 내 마음의 한 구석에선, 5분만 더 자는 게 그간 상처 입은
자존심을 보상 받는 길인 양 뒤척이고 또 망설입니다. 이건 옳지 않습니다. 일단 맡은 바 소임이 있는 이상, 내 능력의 최대치를
발휘하는 게 나 자신에게 떳떳한 자세입니다. 결국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행동을 의지에 맞게 통제할 줄 아는 내가 이깁니다. 그러나
따스하고 포근한 침대 안으로 마냥 날 머물게 하려던 건 대체 누구였을까요?

저자 마거릿 폴 박사는 이런 현상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해, 성인자아(Inner Adult. 저자는 다소 독특하게 이 단어를 대문자로 표기합니다), 내면아이(Inner Child)라
는 두 실체를 상정합니다. 내면아이는 우리 안에서 끊임 없이, 상처 입은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보상해 달라고 조르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자아라고 생각하는 "성인자아"는 이런 내면 아이의 페이스에 끌려 다니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씁니다. 우리의 갈등과
스트레스는 다 이 둘의 밀고 당기는 싸움에서 유래합니다.
이성적으로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매번, 혹은 감당 못 할 만큼의 상처를 입지는 않습니다. 그런 드문 경우라면 현장에서 상대에게 해명을 요구하거나, 사적 자치 차원에서 해결이 안 될 시에는 법정 싸움으로 끌고 가면 됩니다. 합
리성이 어느 정도 통하는 사회에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이라면, 특별히 상처를 입을 일이 자주 생기지 않습니다.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내가 그 과실을 누리기에 객관적으로 부족했으니 나의 차지가 못 된 것입니다. 상처를 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의
성인 자아는 이 점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귀가한 우리는, 그날 동안 직장이나 다른 공간에서 입은 상처 때문에 잠을 못 이루는 일도 부지기수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상처(특별히 발생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를 달래고 보상 받기 위해, 때로는 나 자신에게 피해가 올 만한 선택도 저지르곤 합니다. 그 예가 바로 저 위의, 출근 시간 임박해서 미리미리 자료를 챙기지 않고 별 효용도 없는 토막잠에 빠지는 선택입니다.
이 "내면아이"를 처음 발견해 낸 사람은, 저자에 의하면 칼 융이라고 합니다. 융은 물론 "내면 아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습니다(이 용어는 저자가 독자와의 웡활한 소통을 위해 고안한 것입니다). 융의 명명으로는, 이 "내면아이"는 전의식(前意識 .preconsciousness)라고 칭했습니다. 이 전의식이란, 무의식과 의식 가운데 단계에 자리한 것으로서, 우리의 감정, 직관, 느낌 같은 걸 모두 대변하는 기제입니다.
우
리가 어떤 때 불행해지고 고통을 느끼는가 하면, 바로 이 내면아이와 성인자아가 다른 방향으로 따로 놀 때입니다. 어떤 사람이
극심하 불운이나 실패를 경험한다 해도, 냉철한 판단을 하는 성인자아의 보조에 내면아이가 잘 따르고 있을 때에는 마음이 평안합니다.
설령 객관적 상황이 호전되지 않고 있더라도 해도 말입니다. 반
대로, 비록 객관적으로는 아무 문제나 불안 요인 없는 평탄한 삶을 사는 이라고 해도, 어떤 이유에서건 내면아이가 성인자아와 다른
방향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을 때에 그 사람은 불행하고 고통을 느낍니다. 패닉 상태에 빠진다든가. 과거의 어떤 트라무마 때문에
갑자기 몸서리를 친다든가, 뭔가 보상을 받아야겠다는 충동 때문에 비이성적 도발을 한다든가, 이런 경우가 다 두 "내면"이 따로
놀아서 발생하는 결과들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내면아이가 어떤 식으로건 적절한 대우를 받게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극심한 만성적 스트레스 아래 놓여 신체적으로 심각한 질병에 걸리거나, 아니면 비이성적 돌출 행동으로 큰 사고를 치거나
둘 중의 하나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겪는 고통의 양상도 다양합니다. 성인자아가 너무 높은 기준으로
형성된 사람은, 비록 내면아이가 비교적 순한 기질을 지녀도 만성적인 둘 사이의 괴리에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죠. 반면, 아예
성인자아가 형성되지 않고, 내면아이가 그의 모든 판단과 선택을 맡아하는 경우도 봅니다. 이런 사람도 성인자아 유사한 의식과
내면아이 사이의 갈등을 잠시는 겪게 되는데, 그 잠시의 불균형과 갈등을 참지 못하고 "그냥 저질러 버리"는 걸로 나름의 "해결"을
모색합니다. 이런 사람은, 학교나 직장 등 소속 집단이나 강제 규준을 정해 주는 환경에 머물면 몹시 괴로워합니다. 내면아이가
그를 한시도 가만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이죠. 결국 직장에서 해고되고, 집에 홀로 놓여 은둔자가 되는 그 순간, 그는 행복감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전보다 더 나은, 행복한 내가 되었다"며 최면을 겁니다. 내면아이에 일체의 인격이 매몰되고 굴복하는 끔찍한
경우입니다.
성인자아와 내면아이가 단절되면, 사람은 일단 고통을 느낀다는 건 앞에 적었습니다. 만
약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고, 내면아이를 그냥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요? 저자가 이 전의식을 굳이 "내면아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이 전의식이 끊임 없이 누군가의 위로와 보호를 받기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일차적으로 내면아이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나의 성인자아에 관심과 보호를 요청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저자가 강조하는바, "끊임 없이 내면아이를 달래주고 보호하라."는
주문이 나옵니다. 자, 여기서, 만약 내면아이가 성인자아의 보호를 받지 몫하면 어떻게 될까요? (성인자아가 어느 정도 형성이 된 사람의 경우입니다. 없거나 발달장애를 보인 이라면 바로 내면자아의 폭주가 발생함니다)
이 내면아이는 타인의 보호와 관심을 요구하게 됩니다. 여기서 큰 위험이 이어집니다. 남에게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다가 만족이 안
되면 격분, 자해, 망상적 분노 표출을 일삼는 사람은, 바로 내면아이를 타인으로부터 보호 받고자 하는 성향이 강한 이들입니다.
연애나 결혼에서 실패하는 여성들 중 이런 타입을 우리는 흔히 봅니다. 이런 사람들을 잘 조종하는 유형이 바로 사이코패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특히 위험하다는 건, 사이코패스의 가장 손쉬운 표적이 된다는 점에서입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내면아이를 잘 달래고 도닥여서, 사고를 치지 않게 만들어야 할까요> 문제청소년이 있으면 일단 그 애한테 문제를 맡겨서야
일이 해결될 리가 없습니다. 어른이 나서야 합니다. 내면아이도 마찬가지, 극심한 내면적 갈등 때문에 일상이 힘들 정도인
사람들은, 일단 전문가를 찾아가 봐야 합니다. (꼭 약물치료가 권해지거나 처방되는 건 아닙니다) 지금껏 성인자아가 내면아이를 돌보지 않고 방치했다는 말이니, 다른 사람(의 성인자아) 도움이라도 받아서 달래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도움에 언제까지나 의존할 수 있을까요? 결국은 아이는 부모 곁으로 돌아가야 올바른 훈육이 이뤄지듯, 내면아이 역시 그를 버린(!) 성인자아의 도움을 받아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를 위해서 당신은, 당신의 성인자아를 먼저 돌아봐야겠습니다. 괜한 강박 관념, 죄의식 때문에 스스로를 쓸데없이 옭아매고 있지는 않나요? 만약 그렇다면 그건 언제부터 생긴 버릇이나 태도입니까? 지나치게 엄격한 아버지? 충분한 애정을 쏟지 않았던 어머니? 학급에서 유난히 당신을 부당하게 대우한 담임 선생님? 이들 중 누구 한 사람과의 잘못된 관계를 교정해야 합니다. 과거의 그를 찾아갈 수는 없고, 마음에서 자꾸 잊으려 들고 지우려 하는 괴로운 기억을 정면으로 끄집어 내십시오. 그건 더 이상 당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나, 벽장이나 골방 속에 묻혀 있으면 귀신이 되어 당신을 어둠에서 지배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먼저 성인자아를 점검하는 과제입니다.
책에는 다양한 내담자의 사례가 나와 있습니다. 어려서 부모에게 끔찍한 학대를 입은 이들도 있고, 성
장 과정에서 타인에게 부당한 상처를 입어 끝내 극복 못한 채 성인으로서의 생활을 영위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당신이
겪고 있는 고통이 당신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상처를 드러내고 인정할 때, 성인자아의 자존, 내면아이의 격정이 차례로
위안되고 치유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