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과 함께하는 에니어그램
정신실 지음 / 죠이선교회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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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람에게는 참된 자아가 있고(기독교인은 이 자아를 가리켜, 하나님이 당신의 모상을 우리를 빚을 때 정해 주신 바로 그 참된 모습이라고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지음 과정에서 생긴 "가면", "페르소나"가 있다고 합니다. 이 가면, 페르소나, "성격"이란, 자신의 결핍, 약점을 감추거나 보상하려는 의도로, 혹은 사회나 타인과 어울려 살며 나름 그 속에서의 생존을 도모하려는 방편으로, "가짜 자아"를 편한 대로 얼굴 위에 뒤집어 쓴 위장입니다. 문제는, 이 가면과 가면이 만나, 가면끼리의 충돌과 대립, 갈등을 벌이는 탓에, 가면이 다치는 게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우리의 참 자아가 다치는 게 문제입니다.

자 아가 다치는 건, 육체에 상처를 입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우리를 아프게 하기에, 우리는 소위 힐링이란 것을 시도하죠. 하지만 근본의 질환을 치유하지 않는 대증 요법의 처방이, 그 효력을 오래 가게 할 리가 없습니다. 근원적 요인을 알아 내어서, 거기에 메스를 들이대든지, 상처를 아물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성격이란 가면의 본질이 뭔지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어떤 유형의 가면을 뒤집어 쓰고 있으며, 그 가면의 특징과 성향이 뭔지를 알면, 나 혹은 타인이 특정 상황에서 왜 이러이러한 반응과 태도를 드러내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myjay.byus.net/xe/jungsinsil)


저 사람과 나는 각각 이런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에, 잘 맞거나, 혹은 잘 안 맞는 것이구나. 이런 상황에서 이 가면은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게 보통이고, 저 가면은 저렇게 나올 수밖에 없다.... 나를 공격하는 건, 혹은 반대로 나를 편하게 하는 건, 저 사람의 저 가면이 행하는 기능이지, 그 사람의 참된 자아가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게 아니다.


이런 깨달음에 다다를 때 우리는,
1) 갈등의 원인과 발생 과정을 알고 이해했으니 내가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고


2) 그 사람의 가면이 미울 뿐, 가면 뒤에 숨은 참된 자아가 그러는 게 아니니
내가 얼마든지 그를 용서할 수 있겠으며


3) (신앙인이라면) 모두 다 주님의 모습을 따라 만들어진 피조물인데
너와 내가 다를 바 없는 모두 다 귀한 존재라서
서로 사랑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종교상의 가르침과,
자신이 세상에서 실제로 처한 현실,
이 둘을 조화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책에서, 책임감을 중시하는 육미(제 6유형)가 말하는 것처럼, "그럼 참된 자아를 찾는 게 우선이지, 왜 가짜 모습을 (이 에니어그램을 통해) 굳이 알아야 하"는 걸까요? 그에 대한 답도 아주 명쾌합니다. 가면이 뭔지를 정확히 알아야, 타인의 가면과 실체를 구별할 수 있고, 나 자신이 그 가면을 언제든 벗을 수 있기 때문이죠. 거짓된 껍데기가 뭔지를 알면, 이를 제외하고 남은 모든 것은, 원초의, 참된, 나 자신이라는 논리입니다.

아 무리 맞는 말씀이고 진리라고 해도, 서술하는 품이 까다롭고 어려우면 우리 마음에 잘 와 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자 정신실 사모님은, 자신을 캐릭터 "모님"으로 등장시키고, 아홉 가지 유형에 해당하는 캐릭터 아홉을 차례로 혹은 동시에 무대에 올려, 이 책 내내,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때로는 심각한, 대화를 주고받게 하고 있습니다. 정신실 사모님이 하시려는 말씀은, 캐릭터 모님의, 자상한 그러나 예리한 어조로 조곤조곤 전달됩니다. 우리들 독자는 책 처음에 나온 표를 보고, 내 성격, 가면이 어느 유형인지 판단한 다음, 나를 대변하는 캐릭터가 모님과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 됩니다. 저는 오랜 시간 동안 마음에서 해결되지 않던 답답함이나 궁금함이, 이 대목을 읽으면서 말끔히 가시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나를 힘들게 했던(혹은 나를 기쁘게 해 주었던) 다른 사람들 역시, 이 아홉 가지 유형 안에 고스란히 들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특히 힘들었던 과거의 체험을 떠올리며, 캐릭터(나를 힘들게 한 그 사람을 대변하는)와 모님이 나누는 대화를 읽고 "그래서 그 사람이 그랬던 거였군." 하며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성격을 분석하는 도식이라고 하면, 그저 심심풀이 삼아 즐기는 화제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통해 (개인적으로) 처음 알게 된 "에니어그램"이라는 패러다임에 이런 깊은 의미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제 느낌을 말하자면, "에니어그램" 자체가 놀라웠다기보다, 저자 정신실 사모님의 그 깊은 사고, 자상한 배려(사모님의 주변 인물들, 웹 저작물과 이 책의 독자들을 향한), 논의 주제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 정리, 이 모든 역량에 대해 놀랐다고 해야겠어요. 저는 신앙인이 아니라서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은 안 했지만, 기독교 신앙을 지닌 독자들이라면 그 치열하고도 순수한, 주님에의 외바라기를 도모하는 자세에도 깊은 찬탄과 공감을 표할 것 같습니다.

정신실 사모님은 부군 김종필 목사님과 함께 <와우 결혼>이라는 책을 쓰신 적도 있습니다. 이 책 역시 "어쩌면 부부 사이의 행복과 그를 위한 바른 길, 거기에 신앙인으로서 갖춰야 할 미묘한 고민 등을 깊이 생각하고 조목조목 써 내려 가실 수 있을까?" 하는 감동을 제게 준 책이었는데요. 부끄럽게도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두 책이 같은 분의 솜씨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정 신실 사모님의 생각과 글은, 비신앙인이 흔히 오해하듯 신앙인 자신만의 기준에 갇혀 타인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는 고정 관념을 완전히 깨 주는 내용입니다. 나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자상한 본문도 좋았지만, 책 말미에 실린 후기에 물씬 배어 나오는 그 진지한 실천적 고민의 흔적들이 제게는 정말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스스로를 보수적인 개신교인이라 칭하시면서, 문화적으로 정서적으로 이질감이 느껴지는 이런 "가톨릭적" 영성 도구를 흔쾌히 받아들여,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게 자신의 버전으로 풀어 주시는 모습, 정말 감탄스러웠습니다. 이성적이고 냉철한 면모와, 올바르고 정의로운 것을 향한 끓는 듯한 열망이 한 영혼 안에 공존하는 모습이, 쉽게 볼 수 있는 예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습니다. 독자로서 참 이런 글, 이런 책을 읽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게 만드시더군요.

내 성격을 알고 싶으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이 책을 읽어 보십시오. 진짜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기독교 신앙이 아직 낯설거나 거리감이 느껴지는 독자들도 아무 개의할 것 없습니다. 내 성격을 내가 알고 다스리는 데에 이만한 길잡이가 없습니다. 읽는 과정에 아마 "참 기독교인의 모습이 이런 것이구나!'하며 새로운 각성도 밀려올 것입니다.


PS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죠이선교회의 책들은 편집도 참 예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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