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자격 - 내가 제대로 키우고 있는 건가
최효찬.이미미 지음 / 와이즈베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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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떤 소설을 읽어 보니, 아들이 위기에 처한 아버지의 목숨을,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구해 주면서 "낳아 주신 은혜에 대해 조금이라도  그 빚을 갚았다."고 말하는 대사를 봤습니다. "부모의 자격"이라는 타이틀을 단 이 책을 보면서, 처음에는 좀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습니다. 낳아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부모님인데, 그 부모 노릇을 하기 위해 또 다른 무슨 자격 같은 걸 꼭 갖춰야 하는 걸까요? 부모에 "자격"이 있다는 그 말 자체가 생소하고, 위화감을 느끼게 합니다. 저자를 보니 최효찬 소장님입니다. 평소에 우리 교육 문제, "교육"에만 치중하다가 사회 전반의 도덕성, 경제 기반이 붕괴하기에 이르렀다는 우려를 낳게 하는 우리의 현실에 대해, 명쾌하고 학문적 기반을 갖춘 진단을 여럿 내어 놓은 분이죠. 모두가 걱정하고 모두가 불만족스러워하지만, 아무도 그 근본 문제에 대해 선뜻 답을 내놓기를, 행동에 옮기기를 주저하는 교육 문제, 과연 어디서부터 그 시작을 잡아야 할까요?


우선 저자는, 재수, 삼수를 해서라도 명문대학에 가야만 한다는 강박 관념의 허상부터 지적합니다.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입장이건, 그렇지 않은 입장이건, 이 사회가 학벌 위주로 단단하게,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이 꾸려져 있다는 사실에는 대체로 공감합니다. 대학 입학 당시부터 대학의 서열화, 그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의 신분(카스트) 서열화가 이루어지고, 이로 인해 수많은 문제가 파생합니다. 그 와중에, 심적 부담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학생마저 나오는 현실입니다. 내 자신의 인생이 행복해 지기 위해 점수도 올리고 명문대도 가는 것인데, 우리의  현실은 주와 객, 목적과 수단이 도치되어, 점수를 위해 생명포포함한 다른 모든 가치를 희생해도 무방하다는 쪽으로 흐르고 말았습니다. 설사 좋은 대학을 나와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 직종에 종사한다 한들, 성장 과정서 바르게 함양되지 않은 인성 정립과, 사춘기에 적정한 자양을 흡수하지 못해 영혼에 새겨진 상처의 힐링은, 이후 어떤 물질적 보상, 세속적 성취를 통해 가능할 수 있을까요?


특히, 얼마 전 친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한 어느 학생의 예는,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자성의 기회를 마련해 주기도 했습니다. "너는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해서, 명문 대학에만 진학하면 된다." 만약 누가 "부모의 자격"를, 이런 학업 뒷바라지 차원에서 거론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어머니는 유관 기관에서 훈장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훌륭한 자격을 갖춘 부모였을 텝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서 그처럼 각별한 모습을 보였음을 잘 알고 있음에도, "내가 원하는 자아"와 "어머니가 원하는 자아" 사이의 갈등, 긴장을 이기지 못하고,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점수 따기 경쟁의 와중에 자신과 부모, 그리고 주변 모두의 삶을 망치고 만 것입니다.



 

책은 이 모든 암울한 현실, 끝이 보이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를 두고, "당신이 생각하는 그 방향이 옳은 것"이라며 독자에게 실증적 해법을 제시합니다. 현재 문과 계열에서 입학 점수 피라미드의 서열상 가장 높은 위상을 점하고 있는 서울대 경영학과 신입생들을 상대로 조사를 한 바가 이 책에 실려 있습니다. 이 결과를 보면, 신입생 중에 어려서부터 내내 1등만을 도맡아 하거나, 부모님이 특별히 베푼 배려로 해당 학과에 입학한 경우는, 생각보다 그 비중이 높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예 외적인 경우이긴 하겠으나, 집에 오면 게임이나 기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전혀 간섭 없이 방임하고, 휴일에는 신나게 축구를 하게 해 준 부모님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분들의 말은 "그렇게 해서 풀린 스트레스, 좋은 기분, 컨디션 이런 게 2~3주는 가거든요."입니다. 설사 아이가 공부를 하겠답시고 방 안에 틀어 박혀 있어도, 그 동안 딴 생각으로 가득하거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해 받은 스트레스를 다른 데서 풒어야 한다."는 네거티브 이펙트로만 그 머리가 채워져 있다면, 앞으로의 공부 능률 상승을 기대할 수 없죠(극단적으로는 위에 예로 든 학생의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겠구요).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흔히 "강남 엄마식"이라고 하는 아이들 관리법을 모두가 따를 필요가 없다는 점입니다.

신 교수님은 언제 뵈어도 지적이고 안정된 풍모를 보이시는군요.


소위 "부모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경쟁적으로 이뤄지는 자식들의 "대리 경주마 노릇"은, 그 효과도 의문스러울 뿐더러, 나중에 따로 치러야 하는 부작용의 비용도 만만치 않고, 실제로 부모나 아이 모두 각양각색일 자질과 체질, 성향을 고려하면 따라할 수도 없다는 게 저자의 결론입니다. 아이를 강제로 혹사하고, 원치 않는 행동을 기계적으로 조련하고, 궁극적으로는 부모와 아이 모두 삶과 행복으로부터 소외되게 만드는 "미친 질주"는, 그 과정이나 성과 면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시지포스의 도로(徒勞)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모든 부모님들은 아이들 교육을 위해 그저 노심초사입니다. 아빠는 "내가 벌어오는 수입이 부족해서 아이 사교육에 들이는 비용 조달에 지장이 있을지" 애를 태우고, 엄마는 그저 또래들과 정보를 교환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일반고에서 1등급하는 것과 특목고 1등급은 차원이 달라." "수능은 어차피 재수생한테 안 되고, 수시(그 중에서도 입사관 전형)는 자사고 애들한테 다 밀리게 되어 있지." "이렇게 애를 쓰는데 스카이를 못 가면 어쩌지? 어떤 엄마 자살했다고 신문에 날지 모르니 다들 알아서 봐." 마지막 말씀이 압권입니다. 아이를 제대로 뒷바라지 못 하면, 그게 부모 자격을 이미 상실한 것이고, 아이한테 해 줘야 할 도리, 나아가 이 사회 성원으로서 제 구실을 못한 낙오자라고 스스로를 단죄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누가 강제한 게 아니라, 우리들 스스로가 이런 불문율, 철의 규약을 이미 합의 하에 생성하여, 법보다, 도덕보다, 종교보다 강한 구속력으로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습니다.


저자들 역시(최 박사님의 저서를 여럿 읽어 온 독자들은 아시겠지만) 명문 대학을 나오고, 한국에서 상위 몇 %안에 드는 엘리트들입니다. 이런 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니만큼, 그 말이 주는 설득력은 남다릅니다. 원하는 대학을 가도 불행해지는 아이가 있으며, 남들이 선망하는 직장을 잡아도 그 안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는 이가 있습니다. 행복은 철저히 주관적인 것이며, 다른 이가 세워 둔 표준에 억지로 맞춘다고 없던 행복이 달성될 수 있는 게 아니죠. 저자들의 주장은 그것입니다. 1)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이 남들 따라만 한다고 이뤄질까? 2) 기계적이고 강요된 방식의 공부가, 과연 원하는 성적을 이뤄 낼 수 있을까? 이 두 문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주체적 사고와 관점으로 기울여 보라는 것입니다.


입 시 경쟁의 가혹한 장은 그 자체로 참고 봐 주기 끔찍한 무질서입니다. 자살이니 죽음이니 하는 사례가 아무리 예외, 소수의 몫일 뿐이라 해도, 마치 환경의 피폐를 지표식물처럼 미리 감지하고 모두에게 경고하는 타산지석으로 새기지 못할 바 없습니다. 현재 한국의 눈부신 발전은 분명 엘리트 위주, 수월주의 교육으로 달성되어 왔고, 글로벌 거목으로 우 뚝 선 삼성의 성공 사례가 강남 엄마들이 악착같이 길러낸 인재들이 그 밑거름이 되었음도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획일화된, 그래서 전체의 피폐를 부르는 제로 섬 게임보다, 타인에게 악영향을 끼치지 않으면서 나의 행복도 도모하는 상생의 터전을 고민할 시점입니다. 저자가 우리에게 일러 주는 메시지는 이런 절충적인 것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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