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패밀리
토니노 베나키스타 지음, 이현희 옮김 / 민음사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유명한 갱스터 러키 루치아노(이 책에도 "작전명 스트립티즈"라는 화제 가운데 등장하는 실존 인물입니다. 물론, "스트립티즈"라는 작전은 실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압니다)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내 인생에서 후회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모든 것을 합법적으로 처리하지 않은 것이다." 그 말은, 굳이 폭력적이고 범죄적 수완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그 자신의 배짱과 두뇌 회전 속도였다면 성취(어폐가 있겠습니다만)의 상당 부분을 그대로 이뤄 냈을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 렇다면 왜 일부 범죄자들("일부"라는 말을 반드시 써야 합니다. 대다수의 범죄자들은, 그렇게 할 수밖에서 없어서 그런 일을 저지르는 무능력자들이기 때문이죠)은, 사회적으로 공인된 룰과 방식에 따르지 않고 일탈의 길을 애써 걷는 것일까요? 유 쾌하고, 약간 무섭기도 하고, 문장 하나하나에 재치와 위트, 기발함이 넘치고, 무엇보다 스토리가 너무도 재미있는(이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초호화 캐스팅으로 이미 만들어졌고 국내에서 상영도 되었는데, 흥행 면에서 뚜렷한 결과가 나오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조만간 DVD 상품이 출시되면 감상한 후에 그 후기를 올리겠습니다) 이 소설의 주제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바로 저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소설은 기막히게 재미있는 코믹 스릴러를 가장하지만, 기실 품에 담고 있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는 바로 이에 대한 것입니다. 이는 어쩌면 인간 본성에 대한 문제입니다. 프레드, 아니 조반니는 그 점을 힘주어 강조합니다. "인간이 진정 사랑하는 것은 용서가 아니라 복수다. 인간은 상대에게 먹을 휘두를 때 그의 존재 가치와 이유를 느낀다." 과연 프레드의 답이 옳은지, 그에 대해 동의를 보낼지 아니면 최후의 (정신적) 사형 선고를 내릴지는 역시 독자의 몫입니다. 


이 소설은 자신이 소속되었던 범죄 조직을 배신(이 단어를 곡 여기에 사용해야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는 이 "배신 행위"를 통해 자신이 마땅히 속해야 했던 정상인들의 공동체로 - 다소 불안하게나마- 복귀할 수 있었으니까요)하고, 미 연방 정부가 마련한 증인 보호프로그램에 따라, 멀리 대서양을 건너 프랑스 서해안에 위치한 어느 작은 마을로 은둔해 있습니다. 홀몸이면 사실 그 운신이 어려울 것도 없으나, 문제는 가족, 즉 아내와 딸, 아들이 딸려 있다는 점입니다. 그는 여기서 외출도 자제하고, 마피아 중간 보스로서 자신의 과거가 드러날 수 있는 어떤 언행도 삼가야 하는 처지입니다. 그의 가족들에게도 이 같은 의무는 동일하게 부과됩니다. 과연 타고난 맹수, 혹은 무대 기질 가득한 스타가 제 본색을 언제까지나 숨기고 살 수 있을까요? 그 무서운 마피아의 우두머리들은, 버젓이 네 식구가 붙어다닐 수밖에 없는 이 뚜렷한 목표물이, 설사 지구 반대편에 숨어 산다 한들 과연 언제까지 시야에서 놓친 채 방치할 수 있을까요?


전지적 작가(공교롭게도 주인공 프레드가 가장한 직업 역시 작가입니다)의 어투는 매우 코믹합니다. 전혇적인 수다스러운 이탈리아인의 현란한 수사를 유감 없이 맛보는 게 가능합니다. 그런 까닭에, 이 소설은 자칫하면 코믹 풍자물 정도로 오인 받을 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런 용도로 읽어도 본전은 충분히 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는, 마리오 푸조의 본격 크라임 노블에 못지 않은 짙은 향취와 사색,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이 들어 있다는 게 결정적인 차이점입니다.


우 선 이 소설에서, 의외로 중요한 역할을 맡으며 소설의 장엄한 엔딩에 한몫 단단히 하는 캐릭터는 아들 워런입니다. 누나인 벨은, 하늘이 부여한 선물, 압도적인 미모라는 자질에 기대어 어느 환경에서도 힘들이지 않고 제 갈 길을 나아갑니다. 아리러니컬하게도 그녀는 이 미모가 축복이 아닌 저주임을 깨닫고, 독자로서는 다소 뜬금없이 받아들여지는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려 들기도 합니다. 반면 키도 작고 어딘가 만만해 보이는 구석마저 있는 워런은, 현지 적응이건 기존 궤도 운행이건 삶이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워런이 누구인가. 바로 그 아버지 프레드의 아들입니다. 프레드가 누구인가. 뉴어크 특정 구역을 그 이름 조반니라는 석 자(?)만으로 벌벌 떨게 만든, 조직 개척의 대가입니다. 조직을 잘 꾸리고 실패하지 않는 사업 선택을 하는 재능만 뛰어난 게 아닌데, 이 자질을 아들이 고스란히 물려 받았음은 책의 마지막에 가서야 독자가 알게 됩니다.


주인공 프레드(조반니)는 겉으로 보아 똘기 가득한 깡패입니다만(세상에 성한 정신을 가진 어느 누가, 사람 목숨 해치기를 그토록 태연히 하며, 어제까지 친구였던 자를 눈도 깜짝 않고 저세상으로 보낼 수 있을까요?), 희한하게도 그의 단단한 두 어깨는 마치 세상 모든 범속한 이가 채 지지 못한 짐을 정직하게 그의 일생 동안 짊어져 온 보이지 않은 공덕이 있나 봅니다. 마지막에 그는, 타고난 완력으로나 육체적 나이로나 도저히 상대가 안 되는 무서운 히트맨, 암살자와 맨손으로 마주칩니다. 이상하게도 그는 이 자와 몸으로 부딪히면서, 가망 없는 싸움이라는 것도 알면서, 육탄의 희열을 느낍니다. 때 릴 때 뿐 아니라 맞는 순간에까지 엔돌핀이 솟는 상대를 보면서, 상대는 그만 "때리다 지치는 경지"를 느끼게 됩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프레드는 의자로 이 가공할 폭한을 가격, 자리에 누입니다. 화자의 말에 따르면, "잃을 게 더 많은 상대와 그렇지 않은 편 사이에 나는 승부"였다고 합니다. 맷집이나 펀치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거죠.


지 난 세기 대륙에서 빚어진 크나큰 말썽, 인류 절멸로까지 치달을 수 있었던 전화의 종막을 알리는 배경이 되었던 곳이 바로 이 노르망디였습니다. 이제 이 조용한 시골 마을에, 전직 마피아의 일가가 신분을 숨기고 잠입하더니, 다음에는 그의 목숨을 노리는 심판자의 무리가 운명처럼, 도둑처럼, 나중에는 점령군(이 대목이 특이합니다. 왜 이들은, 아무리 시골이라 하나, 그들의 철칙을 어기고 공개리에 대대적인 작전을 감행했던 것일까요?)의 양상으로, 세계사적으로 곡절도 많았던 이 고장을 접수합니다. 상륙은 두 차례에 걸쳐 이뤄지고, 탐(이른바 G-man)과 프레드는 둘의 힘만으로, 나중에는 한 손을 더 빌려, 하이눈의 게리 쿠퍼처럼 선량한 마을을 악의 손으로부터 구해 냅니다. 코믹하면서도 장엄하고, 감당 못할 촌극이다 싶으면서도 뭔가 숙연해지는 감이 있습니다. 소 설의 말미에서 어느 새 화자는 프레드로 바뀌며, 1인칭 주인공 시점의 변칙 템포로 전환됩니다. 사칭 얼치기에서 비로소 진짜 작가가 된,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잔뜩 들뜬 어투로 이어나가는 조반니, 아니 "브라운 씨"는, 어느 새 보편자의 입장에서, 영화 <대부>에서 마을 사람들의 facilitator로 봉사(?)하 던 비토 코를레오네처럼, 독자에게 인생 이면의 진실을 전달하는 author로 바뀌어 있습니다. 성자와 악한이 종이 한 장 차이이듯, 영웅 비토와 찌질이 헨리 역시 트럼프 카드 한 끗 차이임을, 이 코믹을 가장한 인생독본은 우리 독자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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