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 매그너스 린드비스트는 그 할아버지代부터 미래학을 연구해 온 학풍을 지닌 집안 출신이라고 합니다. 미래란 말 그대로, 아직 다가오지 않은 시간대입니다. 또한, 매그너스 린드비스트 자신과 그 할아버지가 주시하는 "미래"란, 둘이 서로 같은 내용과 범위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도 매우 당연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란 특정 시점에서 즉흥적으로 판단하는 관점보다. 더 오랜 세월을 두고
과거로부터 관찰해 온 눈이 더 넓은 폭과 성숙한 시야로 전망할 수 있다는 점도 맞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할아버지代
부터 차곡차곡 쌓여 온 미래학 연구의 내공을 어떤 식으로건 상속받은 저자라면, 그 당대를 출발점으로 삼은 다른 연구자보다는 훨씬
유리한 위치에 놓이며, 우리 독자들도 더 권위 있는 인식을 그로부터 힉득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책의 부제는 "장기적 사고로의 가이드"입니다. 바로 이 부제가, 여타의 미래학 서적과 이 책이 질적으로 차별되는 면을 잘 알려 줍니다. 종
래 다른 미래학 서적은, "미래에는 이러이러한 사건과 발명, 풍요로운 생활상이 우리 주변에 잔뜩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같은
장밋빛 전망만을 제시하거나, 반대로 별반 근거도 없이 디스토피아 비전만을 나열하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이 린드비스트의
책은, "미래를 어떤 방법으로 체계적으로 예측하고, 아울러 우리가 속한 현재의 모습을 정확히 파악하는 방법이 무엇이지"에 대해 보다 많은 비중을 할애하여 이 책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물고기를 입에 넣어 먹여 주는 게 아니라, 물고기를 낚는 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라고 하겠습니다.
또한, 다른 책들과는 달리, "왜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게 (미래학자들이나 직접 이해관계자들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지"에 대해, 보다 체계적이고 분명한 이유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이유로 들고 있는 사항들을 잠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순환형 사회에서 진보형 사회로의 이행
이
사항은 우리 동양인들에게는 좀 가슴 아픈 대목이기도 합니다. 우리 동양 전통 사상은 언제나 회고적이고, 과거의 이상시대를 전제로
하여 타락한 현재를 교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단조로운 농경 사회의 반복적 생활 양식이 모두의 사고를 지배하는 분위기에서, 기술적
산업적 진보가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없었던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럽습니다. 저자가 책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순환형"과 대립되는 "진보형"이란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사실 분명합니다. 과거를 되돌아볼 필요가 감소한다면, 그 빈 자리를
무엇이 메꿀 수 있겠습니까? 미래를 내다보는 일은, 이제 생존을 도모하기 위한 필수 과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 운명이 아닌 기회에 의해 인도되는 것
저
는 이 장을 읽으면서도, 마치 저자가 우리 동양 사회를 염두에 특히 두고 서술한 것이 아닐까 하는 약간의 착각을 할 만큼 자극을
받았습니다. 모든 생활상이 고정된 패턴을 염두에 두고 이뤄지는 농경사회의 모습이라면, 개인은 자신이 보유한 재능과 자질이 어떤
것인가 하는 요소보다는, 출신 집안의 성격과 본질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는
물론 그런 낡은 구조가 아닙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다름 아닌 자신의 계발과 생존을 위해 중요한 task가 되는 것입니다.
3. 다양한 선택 가능성의 대두와 이에 따른 복잡성의 출현
현
대는 인류가 굶어 죽는다든가, 추위와 자연 재해 따위에 속절없이 노출된다든가 하는 원초적 위험을 극복하지 못한 단계가 아닙니다.
즉. 기본적인 욕구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된 상태에서, 서서히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는 비교적 여유 있는 시대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여유가 생기면, 현재의 주어진, 고정된 조건만에 얽매이지 않고, "나 자신이 앞으로 변화할 수 있는 모든 선택안들"에 대해 느긋한
주시를 할 수 있습니다. 물질적 풍요는 풍요에 그치지 않고, 사회를 잘 작동하게 하는 기본적 메커니즘의 복잡화와 세분화를
유발합니다. 개인은 이런 고도로 발달된 구조가 요구하는 수준에 적응하게 위해, 이전 세대가 알던 지식보다 훨씬 높은 층위의 전문 기능으로 무장해야만 직장에서의 과업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과거"가 아닌, "미래"를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습니다.
"미래"를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는 어느 정도 분명해졌다고 보고, 이제 "어떤 미래"를 바라보고 유의해야 우리의 이런 실용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겠습니다.
저자는 다섯 가지 정도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이런 미래의 속성을 파악하는 일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미래가 시작될 때"를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어디부터가 "미래"이며, 어디까지가 "현재"인지를 구별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1. 느리고 점진적인 미래 - 아
무리 급격히 발전하는 미래상이 설사 확실시된다고 해도, 미래가 한꺼번에 이틀씩, 혹은 일년치가 닥쳐 오는 일은 없습니다. 미래는
언제나 하루 단위로만 우리에게 찾아온다는 말은 재미있기도 하지만, 핵심적인 진리를 깨우쳐 주기도 합니다. 과거는 언제나 엄청난
더께로 우리에게 놓여져 그 벅찬 이해를 강요하지만, 미래는 누구나 감당할 수 있을 만한 할당량으로 공평하게 우리를 찾아 오죠.
이런 까닭에 우리는 그 변화의 점진성을 종종 무시하며, 느린 변화를 "존재하지 않는(않을) 변화"로 착각하기까지 합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증거의 부재"를 "부재의 증거"로 착각한다는 멋진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아직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았음이 증명된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뜻이겠죠?
2. 빠르고 예상할 수 없는 미래
이건 앞에서 논한 것과 정반대의 속성입니다. 역설적이지만 둘 다 타당한 사항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1980년대의 히트작 영화 <터미네이터>를
들고 있습니다. 기발한 아이디어는 감독 짐 캐머론이, 호텔에서 임시 기거하며 먹을 것도 채 챙겨 먹고 있지 못한 시점에 느닷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아이디어나 요긴하고 기발한 발상은 이처럼, 불시에, 전혀 준비 안 된 우리를 방문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물론 현재의 소속물이 아닌 미래의 전유물입니다.
3. 실제의 미래, 상상 속의 미래, 절대로 다가오지 않는 미래
실
제의 미래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현재와 밀접하게 닿아 있는 최근접의 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미래는 미래라기보다, 어느
정도 현재에 가까운 속성입니다. 이런 미래는 현재의 패턴을 어느 정도 그대로 답습하기 때문에, 예측의 기술적 노력이 상대적으로
불필요한 대상이기도 합니다.
반면 우리가 "미래"라고 하면 대뜸 떠올리기 쉬운 게 바로 "상상 속의 미래"입니다. 이런 미래는 "백일몽"이라는 다른 말로 표현이 가능합니다. 이런 미래에서는 상상 속에 불가능한 게 없습니다. 그런데 건설적인 착상과 계획을 위해서는, 이런 불확실한 경계보다는 보다 구체화한 어떤 전망이 필요한 게 사실입니다. "절대로 다가오지 않는 미래"는 그 자체로 패러독스입니다. 하지만 하루살이에게 한 달은 그의 인식이 미칠 리 없는 억겁의 세월이나
마찬가지이듯, 우리 인간 역시 38억년이라는 지질 시대의 긴 호흡을 가늠할 길은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인간에게
지나치게 긴 시간의 단위는 역시 "결코 우리가 맞이할 수 없는 미래"인 셈입니다. 억 년의 단위로 가면 우리 자손들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구상에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생물이 존재한 게 불과 얼마 전인지 생각하면 이해가 빠릅니다.
미
래는 고정된 실체로서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된다거나, 허황한 공상의 요소로 채워진다거나, 반대로 철저히 무시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다룰 수 없습니다. 과거와는 현저히 변화된 방식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현재, 그리고 바로 인접한 미래를 효과적이고
능률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라도 "언제나 미래를 염두에 두는 방식"을 체질화해야 합니다. 이 책은 그런 사고와 태도의 본질과 실제
적용례를 잘 풀어 주고 있습니다. 분량은 불과 200여 페이지를 넘지 않지만, 다 읽는 데에 천 페이지 볼륨 이상의 시간이 걸린
건 개인적으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속이 꽉 찬, 몇 번을 두고 거듭 읽어도 모자람이 있는 깊이 가득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