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론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남희 옮김 / 박하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를 흔히 스릴러 작가로 분류하곤 합니다만, 저는 그의 작풍(作風)을 두고, 특유의 쉽고 넉넉한 말투에 따뜻한 인간미를 가득 담아 공기 중 포자처럼 전파하는 휴머니스트의 옛이야기투라 일컫고 싶습니다. 이번 신작도 전혀 실망스럽지 않고, 익히 독자가 즐겨 왔던 그만의 톤이 물씬 배인, 허술한 듯하면서도 알고 보면 속이 꽉 찬 장편의 "미담"을 잘 감상했다는 느낌이네요 대만족입니다. 마무리가 약했다, 중반까지 예측이 뻔한 스토리였다 등등의 평을 하시는 다른 독자를 위해, 저 나름대로 그의 변호를 좀 해 볼까 합니다("변호"가 굳이 필요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제가 언제나 히가시노 선생의 작품을 읽으면서 느끼는 건, 어떤 장르적 외양을 하고 있건 간에 그의 작품은, 한 편의 훈훈한, 그리고 건강한 동화가 전달할 법한 감동을 독자에게 선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첫째 장치는 선하고 착한 캐릭터들의 면면입니다. 이 중에는, 환경의 보호 덕분이건 강인하고 일관된 선의지 덕분이건, 초심의 순수를 언제나 잃지 않는 믿음직한 인물들도 있고, 마치 "돌아온 탕아"를 연상시키듯 일시적으로 타락, 일탈의 모습을 보였으나, 못내 저버릴 수 없었던 양심을 회복하고 결정적 국면에서 "한 방"을 해 주는 성격들도 눈에 띕니다. 대체로 보면 그의 작품세계에 등장하는 악인들도, 근본부터가 완전히 잘못된 이가 드물고, 악하면서도 어딘가 허술한 점을 노출하여 결과적으로 "선의 회복, 실현"에 반어적, 비(非)고의적으로 기여하는 해학적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현실의 세상 만사가 이처럼 불변의 조리를 염두에 두고 진행되었으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우리가 잘 알듯 우리의 모습은 훨씬 사악하고 타락했으며, 일견 가망이 없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기에 밀폐 용기 속에 일시적 교란이 일어나도, 결국에는 제 조화와 균형을 찾아가는 히가시노 선생의 작은 가공의 세계가 더욱 애틋이 정감을 풍기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겨울에 그 상상만으로도 서늘한 설산(雪山) 스키장을 배경으로 한 픽션을 읽으면, 그 애초의 미학적 쾌감이 증대될까요, 아님 반감이 될까요? 납량(納凉)은 여름철에 실시해야 제격이라는 생각은, 이 소설에서 구리바야시 상이 어린 중학생 아들 슈토에게 예전 낡은 방식의 스키 이야기를 들려 주는 그 품새 만큼이나 시대에 뒤떨어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이 가볍고 작은 볼륨을 가방 안에 넣어가서, 하루의 코스가 끝난 뒤 다음 날의 질주를 기약하며 잠을 청할 때, 리조트의 숙소에서 읽기라도 하면 제격일 것 같습니다. 결국 장르소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얼마나 그 처음의 의도 관철에 성공했는지가 중요하지, 책을 펼쳐 든 독자의 주변 물리적 기후 조건이 문제될 건 없습니다. 어쩌면 겨울에는 이처럼 겨울 이야기를 읽어야 제 철을 건강하게 나는 방법인지도 모릅니다.

 

히가시노 선생은 연구를 성실히 하고서 새 작품을 내어 놓는 편입니다만, 그 서술 태도에는 과장이나 현학이 보이지 않아 좋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자신이 예전에 알거나 익숙했던 패턴(예를 들면 과거에는 리프트가 대부분 저속[低速] 사양에다 1인용이 많았다는 식)을 구세대 캐릭터의 입을 통해 술회하면서, 다만 새로운 시대에 바뀐 양식은 이러이러하더라는 설명은 젊은 영혼의 역할로 배당합니다. 처음부터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는 작가적 가식이 없고, 모르는 건 독자들과 함께 배워나가겠다는 태도가 그대로 묻어나옵니다. 이러니 그 노령에도 젊은 독자들과 여전히 호흡을 함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려면서도 예컨대, "심설(深雪)은 특유의 부유감(浮游感)이 있어 좋다."는 진술처럼, 품격 있고 실용적인 감상까지 요약적으로 삽입하는 그 여유도 마음에 듭니다.

 

가식과 위세가 없음은 그의 캐릭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소설은 애초에, 평범한 선의를 지닌 사람들이 엄청난 규모의 재앙을 막기 위해 분투하는 내용이지만, 가가 형사 같은 뚜렷한 개성의 주역이 등장하는 다른 시리즈에서도 그 사정이 다르진 않습니다. 우리와 크게 지적 능력에서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추고 있고 적절히 발휘할 수 있는 추리력, 논리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결국은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해 냅니다. 그리고 이런 공훈을 세울 수 있는 결정적인 동기는, "진실은 밝혀져야 하고 정의는 회복되어야 한다."는 순수한 선의지, 공민 의식이라는 점도 거의 언제나 공통적입니다. 사실 장르물에서 기발한 트릭은, 예전의 고전들이 이미 소진시켰고, 현대에 남은 것은 대단히 기교적인, 그래서 오히려 가치가 떨어지는 번잡한 장치들 뿐입니다. 히가시노는 이 점을 알고, 기술적 수월성의 추구를 목표에서 배제한 채 작품 구축을 해 나갑니다. 그리고 독자라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공감할 휴머니티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런 시도는 이번 작품에서도 멋지게 성공했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평가하고 싶네요.

 

이 소설에서 가장 비난의 초점이 될 만한 악역은 물론 도고 소장입니다. 연구와 학술의 영역에서는 거짓과 허위의 태도가 엄격히 배제되어야 하는데, 이 사람은 일본 유수의 대학 기관의 고위 책임자이면서도 양심을 속이는 행태를 밥먹듯 보이는 위인입니다. K-55 개발 자체가 벌써 불법적인 용역 수임이었고, 그의 부조리한 관리 방식은 하급 연구원인 구즈하라에게 배신과 일탈의 동인을 제공하다시피 했습니다. 구즈하라의 악행이 물론 더 큰 악당의 잘못에 의해 합리화될 수는 없습니다만, 여기 이 소장은 지위상의 책임 뿐 아니라 개별 행위에 있어서의 과실도 함께 물려야 할 인물임이 분명합니다. 구즈하라는 비효율적이고 부도덕한 조직에서 더 이상 소속의 이유와 의무감을 찾을 수 없었고, 이런 조직이 버젓이 높은 평판을 유지하며 부당한 이익을 챙기게끔 용인하는 사회 전체에 대한 경멸감까지 갖게 됩니다. 그의 이런 생각은, 수십만 인명을 한순간에 희생시킬 수 있는 무서운 테러 예비 단계를 일개인의 몸으로 기획하는 결과를 낳으나, 때마침 천벌의 섭리라도 작동한 것인지 그는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습니다. 문제는, 테러의 주범이 돌연 사망함으로써 그 예방과 진압에의 길이 아주 오리무중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도고 소장은 처음에, 그저 사태를 묻어버리려고 했었으나, 가장 신임하는 부하 직원 구리바야시의 강력한 만류로 마음을 돌려먹게 됩니다. 구리바야시는 순수한 양심의 발로에서 나온 행동이었으나, 도고 소장은 결국 당국이 최종 귀책 사유를 반드시 자신에게서 발견하리라는 두려움, 그리고 구리바야시를 비롯한 다른 부하 연구원들의 입단속이 불가능하다는 인식 때문에, 첩첩 설산 중 한 그루의 나무 밑에 묻혀 있을 밀폐 용기를 찾아 나서는 일에 혈안이 됩니다. 두 사람의 행동 동기는 이처럼 큰 차이가 나는데, 다만 그 수행 방식의 비능률성과 무계획성만큼은 서로 닮았습니다. 도고 소장은 잔재주에만 능했을 뿐, 돌발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전혀 없다시피한 위인입니다. 예를 들어, 구리바야시가 원군을 보내달라고 하자, 소장은 "입막음 대상이 들어나면 사후 관리가 어려워진다."는 단순한 동기 하나로 주저하다가, 리조트 구호 요원(소장 입장에서는 그 이름을 알 수 없었을, 아니 알 필요가 없었을 네즈)을 잘 설득했다는 전화 연락 하나에 바로 기다렸다는듯 단념해 버립니다. 치밀하고 생산적인 악당에 되기에 너무나도 부족한 기량입니다. 그저 부하 직원에게 닦달하고 보채는 것 말고는 아무 계획이 없는 분수입니다.

 

구리바야시 역시 순전히 행운에 의해 그 정도까지라도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히가시노 선생의 작품에서 언제나 감지되는 바처럼, 그의 세계 속에서는 주인공들의 의식적인 분투 외에, 이해할 수 없는 제3의 손이 하나 개입하여, 사태의 바른 해결에 일조를 하곤 합니다. 구리바야시는, 만약 겨울 스포츠를 좋아하는 아들과 아들의 인맥이 없었다면, 스키장의 개략적 위치도 파악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을 것입니다. 스키장에서 네즈와 치아키 같은 선의의 인물들, 또 미하루, 이즈미, 유키 같은 아이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 사태는 과연 어떤 방향으로 굴러가고 겉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을까요? 구리바야시, 그리고 도고 소장은 이 끔찍한 테러 전단계 사태를 수습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고, 어느 정도는 사태의 유발 책임자이기까지 합니다. 가가 형사 같은 믿음직한 추적자, 해결사가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공권력 당국은 처음부터 정보에서 배제되어 있었습니다. 네즈 등은 막막한 설산에서 그 누구보다 험지를 누비고 다닐 신체적 능력이 갖추어진 인물이지만, 거대한 음모와 기술적 난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소시민일 뿐입니다. 끔찍한 테러 발발이 목전인데, 이렇다 할 영웅이 없습니다. 사건은 파국으로 치닫는 게 상식에 부합하는 경로였겠으나, 알 수 없는 우연과 행운이 거듭되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나갑니다. 그런데 이런 설정이 조금도 어색하거나 무리스럽지 않게 다가옵니다. 왜일까요? 겉으로 보아 조금도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일련의 상황이, 사실은 인간성 보편에 내재한 선의지로 인해 이미 수렴의 어느 한 지점을 예비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말하자면, 우연이고 행운의 소산인 듯하나, 사실은 필연이요 사필귀정의 더 튼튼한 압설(壓雪) 정규 코스로 그 모든 사건들은 질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모든 "우연"의 배후에는 인간의 선한 마음이 먼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었고,이런 이심전심의 공감을 두고 우리는 "신의 섭리"라고 불러 줘도 됩니다.

 

히가시노 선생은 본격 소설가로 데뷔한 사람이 아니지만, 노력파 다운 성실성과 여유가 묻어난다는 점은 앞에서 얘기했습니다. 꼭 보면 소설 중간쯤 가서, 독자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는 웃음을 자아내는 재주도 선보입니다. 구리바야시는 네즈들의 추궁에 못 이겨, "섭씨 10℃ 이상이면 소멸해 버리는 특수백신"이라는 엉터리 핑계를 지어냅니다. 우리가 안 봐도(?) 짐작할 수 있듯, 구리바야시는 능란하게 낯빛을 바꾸지 않고 거짓을 늘어 놓을 위인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특별히 허술한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 사명에 느슨하게 임하는 나쁜 습성이 있는 것도 아닌 네즈는, 이 말을 곧이 듣고 테디 베어의 수색에 나섭니다. 상관도 "어차피 너의 일 중 하나"라며 다른 직무를 면제해 주기까지 합니다. 이 동기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뭔가 미심쩍지만, 왠지 도와줘야만 할 것 같은 사람이었다."는 느낌이었죠. 실상 구리바야시는 분명 거짓말을 한 데다, 나쁜 세력의 도구로까지 움직이던 처지였습니다. 상대는 특별히 바보가 아니었는데도 그의 들러댐에 넘어가고, 나아가 근원적인 신뢰까지 보냅니다. 이는, 결국 저 먼 섭리적 차원에서 작용한, 보다 큰 공동선에의 이끌림 같은 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 이야기를 나중에 보고받자, 도고 소장은 "섭씨 10℃ 이상에서 소멸하는 백신이라면, 인체에 무슨 수로 작용을 한단 말인가? 방귀만큼도 영향을 못 미치는 백신이라니 제대로 지어냈어야지!"라고 짜증을 부립니다(독자인 저도 앞에서 의아해했기에, 이 대목에서 크게 웃었습니다). 여기에 구리바야시는 그답지 않게" 그건 소장님 같은 전문가나 알아채지 일반인은 그냥 그러려니 할 뿐입니다!"고 받아치죠. 어찌보면 세상 사는 융통성이나 요령도 지지리 없는, 되다 만 악당과 졸개 사이의 웃지 못할 촌극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위험한 물질의 운명이, 이처럼이나 빈 구석 많은 엉터리들의 손에서 좌우되고 있을 무렵, 진짜 치밀하고 음험한 악당 한 명이 새로운 변수로 등장합니다. 겉보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감정도 의욕도 없는 무사안일 순종형 여직원이었던 오리구치 마나미가 바로 인물인데요. 이 사람은 알고 보니 진정 무서운 위험 분자였습니다. 그녀는 머리도 좋고 생각도 멀리, 깊이 할 수 있는 인물이었지만, "빼어난 학업 성적을 올려 봐야 출세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괜히 남의 미움이나 받기 좋다"며 만점에 가까운 시험 성적을 하위 조작까지 하는 무서운 염세형이었습니다. "인생은 한방이다." 그는 투명인간처럼 굴신, 조신하여 남의 경계를 푼 후에, 결정적 찬스를 노려 거금을 우려낼 기회만 노리는 가공할 이중인격자였죠. 더 무서운 건 이런 여인의 가면 행각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그녀의 진단과 판단이 맞다는 걸 확인시켜 주고 있는 사회 병리와 모순이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소설 마지막에 가서, 그녀는 태연한 얼굴로 "도고 소장의 위임을 받고 물건을 인수하겠습니다."며 구리바야시를 찾습니다. 참 정말, 허무하리만큼 간단한 한 수입니다. 처음에 저는, 이 소식을 도고 소장이 알면 "뭐야? 난 그런 명령을 내린 적 없는데!"라며 길길이 뛰는 무능 악역의 클리셰 한 장면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더군요. 오히려 더 강한 한 방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리구치는 처음부터 도고 소장을 찾아가서 정식 명령까지 받아온 것이었습니다. 하긴, 그러지 않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소설을 꼼꼼히 읽고 이후 진행을 작가의 호흡에 맞춰 예측해 보면, 이처럼 히가시노의 센스 있는 스텝이 체감(體感)되어, 그 페이지 넘기는 재미가 더합니다.

 

과연 마지막이 "약했다"고 생각되십니까? 어설픈 악당들을 실컷 고생시키고 혼쭐을 빼 놓은 후에, 그녀는 완벽한 계획을 빈틈 없이 수행하고 유유히 출국할 태세입니다. 바로 그 직전, 그녀로서는 어이 없다 할 우연과 낭패가 개입하여,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죠. 제가 앞에서도 말했지만, 마지막의 그 반전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이미 소설의 앞 부분에서, 부자 간의 묘하게 엇갈리는 의지와 감정의 대치 속에, 복선이 마련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위험은 임계 수위를 넘었고, 영웅은 없고, 통제의 기술 수준은 인간의 악의를 감당 못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무엇이 파국과 재앙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겠습니까? 오로지, 어린아이와도 같은 선의지, 양심, 연대 의식입니다. 히가시노는 마치 동화에서처럼 이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를 놓친다면, 우리 역시 두 눈 버젓이 뜨고도 감지 신호를 보내는 테디베어를 나꿔 채지 못한 빙원(氷原)의 초라한 낙오자나 다를 바 없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