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순간들 - 불멸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의 자전적 에세이 부글 클래식 boogle Classics
버지니아 울프 지음,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빅토리아 시대의 숨막힐 듯한 속박이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새 세기를 맞은 영국의 지식 계층은 다양한 방향으로 활로를 모색합니다. 다른 나라의 발달 국면과 비교하여 영국의 그것이 언제나 눈에 띄는 점은,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거대 담론과, 이른바 "시대정신"에 매몰됨 없이, 개인과 개성, 개별성의 건강한 성장이 언제나 제 색깔, 제 향기를 가지고 각각의 텃밭에서 피어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당장 버지니아 울프의 동시대, 다른 유럽 국가의 사회상과 비교해 보십시오. 한다하는 지식인들도, 결국은 크고작은 소속의 "진영논리"에 물들어, 소집단의 얕은 명분과 구호 아래 파멸적인 분열상을 보이거나(스페인, 프랑스), 아니면 소수파를 압살하는 섬뜩한 전체주의를 풍선처럼 부풀려 개인과 자아의 바람직한 발달상을 저해하는 결과(독일)를 낳았을 뿐입니다. 영국은 이런 대륙의 조류에 휩쓸림 없이, 그저 뉴트럴하고 제 위치에서 한없이 진지한, 따라서 고유의 정서와 사유에 정직한 개인개인들로 공동체를 꾸려갈 수 있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우리가 잘 알듯, 결국 발작 끝에 비극적인 자살로 생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녀는, 특유의 섬세한 정서와 칼날 같은 이성이 주는 영혼에의 길항을 견딜 수 없었던 탓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만, 파국의 결단이 내려진 그 순간의 정신상태를 두고 의학적인 재단(정상/비정상)을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특별한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소수 지식인들의 멘털은, 얕고 속된 상식론으로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직접적인 비교 대상은 아닙니다만, 지난 세기 말 프랑스의 천재적 맑시스트인 루이 알튀세르가, 자신의 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지만, 결국 책임조각사유가 증명되어 풀려 난 일도 있습니다.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정신은, 다른 기준에 의해 평가되어야 하죠.

 

이 책은 모두 세 챕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챕터는 자신의 조카 바네사 벨에게 쓰는 편지의 형식인데, 역자의 친절한 설명이 말해 주듯 이 조카는, 버지니아 울프가 이 편지를 쓸 무렵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역자 후기에 자세히 나오지만, 바네사 벨은 물론 편지라는 지면의 세계에서만 등장한, 상정된 존재가 아니고, 스페인 내전 당시에 참전까지 했다가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기도 한, 불꽃 같은 존재감으로 세상을 물들인 실존 인물입니다. 이처럼 태어나기도 전에 그 이모(버지니아 울프)의 사랑과 기대를 듬뿍 받은 일이 있었기에(성장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애정을 쏟았다고 하는군요), 한 생명과 영혼이 그 건강과 순결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대체 앞으로 태어날 생명이 어떤 성품과 기질, 그리고 지향을 지닐 줄 알고 이처럼 자상한, 자세한 내력을 풀어 주고 있는 걸까요. 그녀 자신에게는 어머니가 되고, 태어날 생명에게는 할머니가 될 줄리아 스티븐은, 버지니아 울프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입니다. 이 편지에서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를 묘사하는 대목은, 아무리 혈족의 입장에서 행한 관찰과 분석이라고 하지만, 그 서술과 분석의 상세함과 미적 완결성이 주는 각성과 충격이 현대의 독자마저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딸이라고 해서 반드시 어머니를 속속들이 아는 것도 아니고, 그 반대 역시 언제나 참이 아닙니다. 이 대목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어머니를 설명하는 그 모든 기준과 분석틀, 언어는, 조금만 방향을 바꾸면 세상의 그 어떤 개성과 인격에도 적용할 수 있는 개념들입니다. 줄리아 스티븐은 물론 비범하고 예외적인 인물이었습니다만, 한 개인에 불과한 "존재"로부터 이렇게나 많은 "추억"과 "상념"이 도출된다는 게 그저 놀랍게만 다가왔습니다.

 

한편으로 그녀의 영혼 깊숙히 심어진 불안과 고뇌의 단초는, 바로 이런 비범한 어머니가 남기거나 지어 둔 인생의 족적, 그리고 그에서 파생된 인연(공교롭게도 이런 제목의 작품이 있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편지의 수신인으로 예정된 바네사로서는 촌수를 따지기도 힘겨울 스텔라 덕워스는, 성(姓)이 잭슨(태생), 덕워스(첫남편), 스티븐(둘째 남편이자 버지니아 울프의 생부)으로 세 번이 바뀐 줄리아 스티븐의 첫째 남편과의 소생인, 씨다른 언니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란, 그것이 통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도 순간의 알력과 다툼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달갑지 않은 복합가정에서의 인연과 교차였는데다, 개성도 그 이상 강할 수 없는 캐릭터들이 맞물리고 부딪히는 상황이었다면, 그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였을까요. 멜론이나 포도 한 입, 한 알도 입에 익은 토양의 소산이 아니면 임산부의 까탈마냥 그 미세한 미감의 변형을 못 견뎌 하며 토해 내었을 듯한 버지니아 울프(뿐 아니라 그 핏줄들이 다 마찬가지더군요)였다면, 그 알레르기반응의 격함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2부 과거의 스케치는 버지니아 울프 개인의 말년을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자료입니다. 진정한 회고록 성격을 갖춘 건 이 부분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작가가 다루고 그려 내는 대상과 그 결과물에는 아무 제한이 없어야 원칙이겠지만, 상념과 묘사를 이런 스타일로 풀어내는 작업은, 남성에게는 그가 아무리 문학적 천재라도 불가능한 과업이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3부는 주로 그녀가 속한 클럽 회원들 앞에서 낭독을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다는 게 역자의 설명입니다. "낭독"이란 즉시의 청자, 청중을 전제로 하는 거동이며, 따라서 그 원고는 비평자의 즉각적인 반응을 언제나 예비하는, 오픈되고 교호적인 속성을 지닙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결코 고립된 정신세계를 지닌 영혼이 아니었으며, 역자의 표현을 빌리자면(그리고 독자 누구의 생각으로도 공감할) "손가락 하나만 잘못 대어도 바스라질 것 같은 섬세한" 그 정신세계가, 사실은 다른 개성의 지성으로부터의 즉각적인 판단 작용에 언제나 반응 태세를 갖춘 역동성을 지니고 있었음도 증명하는 셈입니다. "인생이란 기본적으로 슬픈 운명이며, 우리는 기껏해야 그 슬픈 운명을 용감하게 직시하는 선에서 그 최선을 기대할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나 많은 인식과 감성의 가능성을 제시해 주고 생을 마감한 그녀의 응원이 있기에, 우리는 그저 슬픔 이상의 어떤 적극적인 시선으로 인생을 바라볼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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