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티르와의 대화 - 현대 말레이시아를 견인한 이슬람 마키아벨리의 힘 아시아의 거인들 3
톰 플레이트 지음, 박세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마하티르는 서양인들에게 "과격한 무슬림을 대변하며, 반미 성향이 강한 독재자"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지금이라고 해서 그런 평판에 큰 변화가 생기지는 않았습니다만, 유태인을 아내로 두고 있는 톰 플레이트 같은 빼어난 언론인은, 이 인터뷰 가 있기 일찌감치 이전 시점부터 그런 선입견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마히티르가 월도프 아스토리아에서 서구의 기자들을 상대로 회견을 열 때, 톰 플레이트는 이미 회견이 끝난 후 어떻게 분위기가 바뀔지 짐작하고, 동료들과 내기를 하기까지 했죠. "멍청하고 아집에 가득한 독재자"란 표현에서, "멍청함"과 "아집"이란 개념은 "독재자"와 거의 동의어 관계입니다. 서양인들이 독재체제에 대해 가지는 혐오감은 그 정도입니다. 하물며 그 독재자가 무슬림이기까지 하다면 말 다한 셈이죠. 그러나 회견장에서, 이 전직 닥터가 보여 준 명철함과 카리스마, 활력과 자기 확신(올바른 신념에 기반한)은 좌중을 압도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마하티르는 30년을 넘는 세월 동안, 광대한 국가를 통치한 사람입니다. 상대적으로 그는,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수단을 덜 구사하며, 그 긴 임기를 보낸 편입니다. 이 점은 대단히 높이 평가를 받아야겠죠. 이 책이 새삼스럽게 강조하는 것처럼, 말레이시아는 인도네시아에 이어 세계 최대의 무슬림 국가 대열에 듭니다. 무슬림이 인구의 절대 다수를 이루기 때문에, 국제 무대에서 미국 등 서방 세력과 보조를 맞추기 힘들고, 경제 등 실질적 이해관계도 충돌하는 바 많습니다. 무슬림 국가가 언제든 노출되어 있는 위험은, 이슬람 과격파의 발호입니다. 이란이나 이집트의 예에서 볼 수 있듯, 한번 원리주의자가 세력을 잡으면 해당 국가 내의 정정 불안을 야기하거나, 국제 정치 무대에서 분쟁 야기의 핵심 원인으로 떠오르기 쉽습니다. 마하티르가 정권을 잡고 있던 세월 동안, 말레이시아는 그러나 단 한 번도 세계 평화에 위협이 되지 않았고, 국내 경제는 근 50년 동안 6%대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이 비결이 무엇일까요.

 

마하티르는 두 가지 점에서 우리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나는, 그 스스로가 "폭력적인 정국 운영은 통치자 스스로의 수치"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인터뷰어 톰 플레이트는 마하티르를 두고 "이슬람 마키아벨리"라는 별명을 독자에게 상기시킵니다. 이 호칭은 딱히 비난하는 투라고 보기 힘듭니다. 마키아벨리즘이 상정하는 통치 패턴은, 폭력이라기보다는 교활한 술수에 의존하는 방식에 가깝기 때문이죠. 아시아의 악명 높은 독재자들은, 한결 같이 국민의 피를 보는 결과를 마다하지 않는 폭압을 휘둘러 왔습니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역시, 그가 다스린 나라의 영역과 인구가 지극히 작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오명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헌데, 마하티르는 영토와 인구 공히 세계 규모에서 빠지지 않는 광대한 나라를 다스리면서도, 유혈 사태를 지극히 적은 빈도로 겪었다는 점에서 대단한 수완을 보였습니다. 이 나라가 영역이 방대하고 인구가 많을 뿐 아니라, 풍습과 문화가 다른 다민족 국가라는 점에서 더 주목할 만한 업적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의 신념과 스타일을, 조국의 주어진 환경과 현명하게 타협하는 그의 성격적 유연성과 인격의 깊이입니다. 마하티르는 명문 가문의 소생이고, 서구식 교육을 받고 성장한 엘리트입니다. 리콴유의 예에서 보듯, 이런 사람이면 철저히 서양식 세계관과 사고 방식에 젖기가 쉽습니다. 리콴유가 친서방 행보를 멈추는 순간은, 바로 자신의 이익이 서구와 충돌할 때 바로 그때뿐이었습니다. 헌데 마하티르는, 자신만의 스케일과 관점에서 국제 정치와 외교, 그리고 총체적 비전을 정리하는 지도자인 까닭인지, 보다 말레이시아적인 세팅으로 통치 전략을 수립하고, 이에 맞춰 구체적 행보를 밟아 왔습니다.

 

톰 플레이트는 리콴유와 대담할 때, 민감한 정치 이슈(독재와 후계 문제 등)을 제외하고선 대체로 그와 잘 이야기가 통했던 편이었습니다. 이 점이, 개인적 친분이 깊지 않고, 다소 음험하며 이중적인 리콴유와의 대담이 파국에 이르지 않고 그런 대로 진행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죠. 반면 이 마하티르와의 대담은, 마주 앉은 두 사람의 사고 방식이 너무도 다른 탓에, 인터뷰어의 인내와 이해심이 아니면 순조로운 경과를 보기 어려운 자리였을 수 있었습니다. 독자가 객관적으로 본 입장에서는, 이번 인터뷰가 훨씬 솔직하고, 인터뷰이의 진면목을 잘 드러내는 성과를 거둔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비결 중 하나는 역시 톰 플레이트의 빼어난 자질(피대담자를 이해하고, 동시에 핵심이 되는 질문을 멋진 포장으로 예의바르게 던질 줄 아는 능력)이겠지만, 다른 요인이라면 마하티르 자신의 인격과 품성이 대정치인의 그것에 걸맞았다는 사실도 한몫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사람은 나이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죠. 마하티르는, 인터뷰어인 톰 플레이트가 묘사하는 것처럼, 따뜻하고 화사한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얼굴이기도 합니다. 30년 동안 격심한 스트레스가 뒤따르는 포스트에 있으면서, 그만큼이나 자기 관리에 허술하지 않았다는 건 이 인물의 내공이 보통 아님을 암시합니다. 난감한 질문이 나왔을 때, 대답을 회피하거나 질문자의 수준을 한심하게 보는 기색을 비친다든가, 동문서답으로 얼버무리지 않고, 자신의 격정을 그대로 담아 가며 최대한 성실히 대답하는 자세는, 80을 넘은 국제적 거물이 쉽게 보일 수 있는 태도는 아닐 것입니다. 그는 최소한, 진지한 질문에는 자신이 아는 최선의 답을 해야 하며, 자신의 말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믿는 바를 그대로 담은 것이라야 한다는 신념에 충실했습니다. 이 때문에, 톰 플레이트는 그를 "(그럴 리가 없지만) 순진한 사람이 아닐지" 잠시 의심하기도 했다는 거죠. 이 점에서 리콴유와는 커다란 차이를 보입니다.

 

사실 저는 마하티르가, 자신의 말처럼 순수한 무슬림 원리주의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는 자신의 빼어난 두뇌를 이용해서, 이슬람의 깊은 교의를 충분히 이해하고, 국내의 극단주의자들이 정치적 주장을 펴는 근거로 도그마를 동원하기 한 발 앞서 자신이 선수를 치는 방법으로 이용했다고 봅니다. 정연하고 빈틈 없는 그의 논리 앞에, 율법학자들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을 겁니다. 그는 원리주의자를 가장하면서, 그 내실은 온건주의자, 평화주의자의 의도를 달성하고자 했던 것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는 이 이슈에서, 표현을 고르는 데에 대단히 민감해합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톰 플레이트가 문언 확인을 위해 보낸 팩스에 대한 응답에서, 그는 "주류 이슬람"이라는 무난한 표현을 두고서도 끝까지 주석을 달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슬람 충성도가 의심을 받아서는, 국가 붕괴의 위험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충직한 우려에서이겠죠. 이런 건 거짓말로 보기 힘듭니다. 말 그대로 믿어주는 걸로 충분합니다.

 

마하티르는 서양식 고등 교육을 그렇게나 높은 수준까지 받은 사람치고는, 다소 어이없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과연 그는 순진한 인간이었던 걸까요?). 예컨대, 911테러에 대해서는 미국 네오콘의 기획이라는 등 음모론이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진상은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예컨대, 빌딩에서 사망자 중 유태인이 한 명도 없었다는 말 따위는 완전한 루머이고, 이 점은 플레이트도 이 책에서 확인하고 있습니다. 설사 말하는 대의가 맞다고 해도, 펙트의 디테일을 함부로 왜곡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하티르는, 가장 원시적인 수준에서 이 음모론을 받아 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열렬한 어조로 상대에게 설득하려고까지 했죠. 이런 점은, 뱀처럼 냉정한 리콴유에게서 전혀 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마하티르의 반유대주의는, 여튼 1998년경 전 아시아에 재앙으로 닥쳐 왔던 금융위기 와중에서, 말레이시아를 굳건히 지켜내는 동인 중 하나로 작용했으니 딱히 탓할 것도 아닙니다. 당시 위기에 빠진 아시아는 두 가지 옵션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말레이시아처럼 "마이 웨이"를 고집하는 것, 다른 하나는 IMF에게 경제 주권을 내어 주며 철저한 굴신과 긴축으로 내핍 생활를 하는 것(우리나라처럼)이었죠. 이때 나온 이야기가, "아시아에는 아시아적 가치가 있다."는 그의 유명한 언급이었습니다.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공개적으로 대립한 이슈이기도 한데, 정작 사석에서는 김 대통령에게 깍듯한 예우를 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김 대통령이 그보다 연장자였으니, 과연 "아시아적 가치" 운운을 말이 아닌 실천으로 옮기기까지 한 셈이었네요.

 

마하티르는 다른 아시아의 독재자들에게서 찾아 보기 힘든 청렴성을 지닌 이이기도 합니다. 그의 보수 수준을 묻고서, 그게 주 단위의 금액인지, 월 단위의 금액인지 톰 플레이트는 몇 번이고 묻습니다. 퇴임 최고 통치자에 대한 예우치고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뜻에서이죠. 화제는 자연스럽게 리콴유에 대한 것으로 옮아갑니다. 마하티르는 의미심장하게, "그(리콴유)는 그리 깨끗한 인물이 아니다. 아직도 경제권을 자기 손에 쥐고 있는 자"라는 암시를 합니다(국부 펀드의 지분을 통해). 그 같은 사람이 말하는 바니 믿음이 갈 수도 있고, 영원한 라이벌에 대한 평가가 공정하길 기대하기란 힘들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에누리가 필요하지 싶기도 합니다.  아니면, 혹시 자신도 비슷한 경로로 국가의 돈줄을 쥐고 흔드는 위치라서 그럴까요? 한때 자신이 후계자로 키웠던 안와르 부총리를, 억울한 혐의를 씌워 투옥하고 고초를 겪게 했던 비정한 보스, 현직 총리를 가차없이 비판하여 자신과는 대조적으로 짧은 임기만을 마치고 내려오게 하는 막후 실력자. 그는 미국식의 4년 중임제에 대해, "지도자가 그 비전을 실현하기에는 너무도 짧은 기간"이라는 진단을 내어 놓습니다. 우리 나라 개헌 몽상가들이 멀리서 듣고 반길 언급이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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