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라종합연구소 2014 한국 경제 대예측 - 일본 최고 민간경제연구소의 한국 경제 전망
노무라종합연구소 엮음 / 청림출판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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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 나와 있는 "대예측"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범위도 넓고 폭도 깊은 분석을 해 주고 있는 책입니다. 보통 한 해를 마무리할 시점에 이런 책들이 나오긴 하지만, 특히나 이 책처럼 매년 정기적이라 할 만큼 고정된 독자들의 수요에 맞춰 내는 류라면, 집필측이 참 애로를 겪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이크로트렌드만 다루는 입장이라면 크게 어려울 게 없습니다. 이 책처럼, 깊이와 폭을 동시에 노리는 책이, 그 스탠스를 잡기가 난감한 거죠. 거시적 상황이나 여건이 일 년이라는 기간 동안 크게 바뀌는 게 아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업데이트되었다는 인상을 뚜렷이 남기기가 그만큼 더 어려워서인데요. 제가 매년 이 책을 보고 있지만, 볼 때마다 놀라는 건, 2014년판이면 정말 그 출판시점에서의 적실한 이야기를 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입니다.


구색만 갖추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스타일, 테마를 바꾸는 식이 아니라, 정말 진지한 고민, 정확한 데이타에 기초하고 이루는 분석, 집필이라야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폭"을 갖추었다고 하면, 이 책이 다루는 범위가 그만큼 넓다는 뜻입니다. "깊이"가 느껴진다는 말은, 단기 트렌드의 정보 전달에 치우치는 게 아니라,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새 독자 혼자 힘으로도 어느 정도까지는, 다음 기간에 대한 분석을 해 줄 수 있게 하는 프레임을 키워 주는 교육적 컨텐츠가 가득하다는 뜻입니다. 근래 좋은 경제경영서가 많이 나오지만, "싱싱한 물고기"를 잔뜩 담고 있음에도 정작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은 보기 드물었습니다. 헌데, 이 책은 "고기를 낚는 방법", "여기 말고 다른 장소에서도 싱싱한 녀석을 건질 수 있는 방법"까지 두루 가르쳐 주는 책이었다고나 할까요. 정보도 좋지만, 그 정보 이면에 숨은 거대한 체계와 논리를 배우는 독서가 즐거웠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한국경제" 대예측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책은 1부와 2부로 나뉩니다. 1부는 세계 경제 대전망입니다. 잘 모르는 분들은, "아 1부까지는 각국 시리즈에 공통 module이고, 2부부터 특화된 각론이 전개되는구나. 약았는걸?" 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잘 보면 그렇지도 않다는 게 놀라웠습니다(정성을 많이 들인 기획, 집필이라는 말입니다). 3장의 내용이, 뚜렷하게 "한국과 일본"에 포커스를 두고 집중적인 조명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내용이 절대 그 제목을 배신하지 않는, 성실한 편제였다고나 할까요.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가 워낙 큰 충격을 몰고 왔으므로, 다소 식상하지만 이 책도 그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1부 1장의 제목은 "세계 경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입니다. 아 마 우리가 10년쯤으로 간을 거슬러 갈 수 있다고 하면, 미래에 나온 책의 한 챕터가 이런 제목을 달고 있다는 게 다소 의아할 텝니다. "무슨 새삼스러운..?" 그런데 그 미묘한 10년기 동안, 세계는 미국의 패권이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았고, 중국의 잽싼 부상이 세상의 모습을 통째로 바꿔 놓을 줄로만 알았습니다. 아직도 미국 타령을 하는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진 취급을 받기가 일쑤였죠. 격하고 다이내믹한 풍랑을 겪고 난 후에야 냉정을 되찾은 세계는, "여전히 미국이 문제(중립적인 의미에서)"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초미의 관심사는 양적 완화 정책의 변화 기조입니다. 이미 미 연준은 긴축 기조로 돌아설 것임을 천명했고, 이 책은 (작년 12월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예상한 내용이라는 듯, 뉴스 인용에 그치지 않고 상세한 분석과 전망를 풀어 놓고 있습니다. 며칠 전 정식으로 취임한 재닛 옐런의 성향도 본문 중에 잠시 언급합니다. 아무래도 일본측의 시야에서 바라보는 만큼, 2001년 당시의 "일본은행"이 취한 긴축 정책과의 비교가 이뤄지고 있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상황이 크게 차이가 나는 만큼 불필요한 시도가 아니었나 보여집니다. 여튼 결론은, 당시의 일본은 단기국채 위주의 회수 정책이었고, 미국의 지금 그것은 중장기 maturity 를 대상으로 한 만큼, 그 결과를 두고 섣부른 유추는 금물이라는 게 포인트입니다. 긴축의 속도가 완만할 것인가 그 반대이겠는가에 대해서는, 이 노무라 시리즈가 언제나 그래왔듯, "유보"적인 결론입니다. 노무라 시리즈가 믿음이 가는 건, 어차피 변수가 다양하게 개입하는 경제현황의 전망에 있어서, 무리한 확단은 언제나 패착으로 향하며, 설사 점친 방향이 맞았다 한들 행운의 소산 이상이 아니라는 점을, 독자에게까지 상기시켜 준다는 점입니다. 판단은, 마지막 순간까지 흘러나오는 정보를 모두 취합한 후 우리 스스로에게 남겨진 몫이라고나 할까요.


그 다음은 미국의 정치상황을 잠시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잘 알듯 지금은 공화 민주 양당의 정책 이격도가, 유사 이래 최대라고 할 만큼 크게 벌어져 있습니다. 정치는 경제사회상의 변화를 반영하는 종속변수이니만큼, 미국 경제가 안고 있는 양극화 추세가 문제이지 정치인의 무능을 탓할 건 아니죠. 하지만 정치인들이, 가뜩이나 어려운 문제를 사후적으로 더 어렵게 만들 능력은 충분히 있습니다(미국이라고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경제 분석서에서 정치 이야기가 많이 개입하면 산만해지는 단점이 있는데, 이 책은 딱 적절할 만큼만 짚어 주고 있습니다. 노무라 시리즈가 이래서 좋다는 겁니다.


" 미국의 세계 맹주 자리를 지킬 수 있을.." 이 챕터는 사실 그 다루는 주제가, 이 정도 분량에서 소화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겠으므로, 시간 없는 분들은 패스해도 좋을듯합니다. 누구에게나 재미 있을 토픽이지만, 또 누구나 이미 다 알고 있을 법한 내용입니다. 일본이 언제나 군침을 다시는 동남아의 볼륨 존에 대해서도, 그 성장세는 그리 낙관할 형편이 아니며, 결국은 중국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뉘앙스까지 아주 조금 흘리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까지 볼 일이 아니지만, 역시 돌다리도 두들기고 건너는 노무라 시리즈에서 취하리라 충분히 기대되는 스탠스네요.


아배노믹스의 성패를 두고는 대체로 두 가지 점을 분명히합니다. 하나는, 우리 한국에서의 불편한 분위기와는 달리, 여전히 이 정권에 대한 일본 국민의 지지, 최소한 기대치가 높다는 객관적 사실입니다. 두번째로, 이 정권의 명운을 가를 수 있는 소비세율 인상 조치의 결과를 두고, 당국은 경기 실속(失速)을 막기 위해 갖은 궁리를 다 짜내고 있다는 점이죠. 책 전체에 걸쳐 되풀이되는 사항인데, "결국 5~10년의 시차를 두고 한국은 일본의 전철을 밟기 십상이다."는 관점이 일단 기본으로 깔려 있긴 합니다. 그러나 두 나라의 형편이 디테일면에서 상당한 차이를 노정함도 집필진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은, 저성장시대에의 건강한 적응, 혹은 표면적 탈출을 위해(더 직접적으로는, 일본의 우울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한국 정부가 어떤 기조 하에서 정책을 펴고 있으며, 대체로 효과를 보는 편인지에 대한 촌평을 곁들이고 있습니다.


2부가 볼만합니다. 본디 거시 분석은 누가 해도 비슷한 말이 나오기 마련이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그 말하는 사람의 역량이나 내공이 드러나게 되어 있죠. 이 후반부서는 전기전자, 자동차, IT, 부동산, 금융, 그리고 유통 분야를 논급하고 있습니다.


전기전자의 장이 그나마 가장 "식상한(?)" 편이었고, 나머지 분석은 정말 읽는 순간 눈 앞에 새로운 경지가 보일 만큼 신선했습니다. 특 히 한국 가전 업체들의 미국 시장 대약진을 집중 거론하고, 일본 업체들의 초라한 패퇴(흑색 가전) 속의 권토 중래(백색 가전) 분위기를 언급하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월폴은 현재 덩핌 혐의로 한국 2社를 자국 법원에 제소한 상태인데, 이는 미국 내 분위기가 어느 정도 자체 위기를 절감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들의 반격 태세가 만만치 않다는 점도 상기하는 취지입니다. 그러나 아직 "종래의 거인들"은, 과거의 영화가 주는 달콤한 기억에 빠져 혁신의 필요성을 절감 못하는 분위기라는 것도 살짝 암시합니다. 자동차의 경우, 친환경 컨셉은 더 이상 시장 선도의 소재가 아니라, 기업이 이 판에서 살아 남느냐의 문제라고 아주 단언하고 있습니다. 신흥국 시장에서 자동차 메이저들은 승부를 봐야 할 단계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며, 그 중에서도 닛산의 도약세가 현재 두드러진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 아주 볼만한 파트가 IT입니다. 우리는 누구가, 잡스의 애플이 지난 10년기 중에 자리잡아 놓은 스마트폰 혁명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체감하지만, 정작 그 본질적인 경제사적, 문명사적, 혹은 인문적 의의가 무엇인지 표현해 보라고 하면 미디어에서 쉽게 들어오던 상투어 몇 마디를 풀어 보는 데 그치는 게 고작이죠. 그런데 이 책은 아주 짧은 분량 안에, 왜 스마트 혁명이 그토록 지대한 의의를 지니는지 아주 핵심만 찔러서 품격 있게 표현해 주고 있어요. 다시 말하지만 경제 분석서에 추상어구, 역사적 의의 타령이 들어가면, 외관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정작 몰입도와 효율이 떨어집니다. 노무라 시리즈는 정반대로, 문제를 근본 차원에서 이해를 돕는다는 확실한 메리트를 이 대목에서도 보여 줍니다. 거의 감동 수준이었습니다.


유통의 키워드는 한마디로 "컨버전스"입니다. 사실 유통에서의 혁신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한국에서조차 이미 1990년대애 가격 파괴니 뭐니 해서 치열한 경쟁의 바람이 일었다는 걸 우리 대부분이 기억합니다. 어찌 보면 재래시장과 대형 마트의 충돌도, 시장의 강자-약자 간 불공정경쟁의 갑을 이슈가 아닌, 혁신과 정체 사이의 치열한 각축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혁신의 키를 강자 쪽에서 쥐고 판을 끌어간다는 데 있을 뿐이죠. 이 장에서 초점을 대담하게 옮기는 분야는, "PB"입니다. 왜 저기 우리도 GS나 CU 같은 데서, 자체 브랜드를 붙여 파는 우유나 스낵을 보곤 하죠(제법 오래되었습니다). 이런 제품들은 대체로 저가인 편인데, 어떻게 해서 이런 결과가 나오는지에 대한 상세한 분석이 이뤄집니다.


요즘 선대인씨 덕분에 부동산 시장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부쩍 높아졌죠? 선대인씨 책을 읽고 기본 프레임을 잡은 독자라면, 이 책의 부동산 파트를 읽으시고 보다 시장 중심적인 처방과 타개책이 무엇인지 공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선대인씨의 최근 베스트셀러가, "이 정부에서 폭탄 돌리기를 바로 끝내 버려야 한다."는 거시 정책 위주의 내용이었다면, 이 책의 해당 파트는 시장이 언제나 직면하게 마련인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곤경을, 어떻게 선진 시스템과 기법을 도입, 혹은 창안하여 극복해 내는지에 대한 놀랄 만한 청사진을 보여 줍니다. 저는 이 새로운 트렌드가, 일본에서 처음 시도된 것인지 그들도 구미의 것을 연구하여 자국 실정에 맞게 변형한 것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중요한 건, 패러다임의 변화는 단순히 1인 가구의 증가나, 소유에서 사용향유 위주의 패턴으로 바뀐다는 피상적인 영역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회사의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도, 대중은 그 기업의 경영 과실을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바로 주식회사 제도입니다. 부동산 개발 역시, "공모"를 통해서, 혹은 그 단계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공신력을 충분히 확보한 민간 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개인이 투자의 애로를 벗어날 방법은 있다는 것입니다. 작 금의 부동산 난국은 비단 세입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집주인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고충이 (어차피 한계가 분명한) 정부의 개입으로 뭐가 나아질 수는 없고, 시장의 성숙과 선진화라는 민간 차원에서 접근해야 근본적 해결이 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긴, 어찌 그 이치가 비단 부동산 섹터에 한정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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