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도 - 고독한 일인자를 웃게 하라
타오돤팡 지음, 유소영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우리는 흔히 그런 데에서도 의외의 쾌감을 찾곤 합니다. 분명 도덕적으로는 용납이 안 되는 말인데, 실제로 치열하고 야비하기까지 한 사회 생활을 하면서 몸 으로 터득한 "교훈"이랄까 요령에 대해, 뻔뻔스럽게 "이것이 진리!"라며 늘어 놓는 말, 이런 말은 최소한 "정직'이라는 미덕을 갖추었기에, 많은 이들로부터 통쾌한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지지를 받습니다. "까놓고 이야기해서, 맞는 말 아닌가?" 중국 고전은 물론 유교 윤리를 잔뜩 담고도 있지만, 초월적 명제나 진리를 설파하고 있는 일이 극히 드물기 때문에, 처세와 인간 관계의 법칙을 배운다는 점에서 특히 경청할 게 많습니다. 공자 역시 "괴력난신"을 언급하고 논하기를 꺼렸는데, 이는 그의 개성적이고 심오한 객관적 관념론의 토대를 마련하는 큰 공헌을 했다고 평가 받습니다.


요 즘 "후흑학"처럼, 실용과 처세의 묘한 이치를 "돌직구"의 언명에 담아 대중에게 가르치는 책이 여럿 나오고 있습니다. 읽어 보면 비록 표현은 기분 나쁘고 거칠어서(표현이 세련되어, 그 대의에 찬동하지는 않아도 묘하게 수긍을 유도하는 것도 있습니다) 일시의 반감을 부르지만, 따지고 곱씹어 보면 대단히 타당하며, 무엇보다 실제 인간 관계를 이끌어 나가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게 많죠. "실용성"이란 요즘 같은 스피드와 효율이 강조되는 시대에, 가장 선호되고 우선시되는 미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실제의 쓸모가 없는 건 결국 정신의 공간만 잉여로 차지하여, 결과적인 말썽이나 장애를 빚기기 보통이라는 점에서 말이죠.


이 책의 제목을 보십시오, "아부지도"입니다. "아부지도, 어무이도, 내 말이 그르다 하지 않으시네."할 때의 어구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阿附, 아첨에도, "도(道)"가 있다는 말입니다. 예전에 홍 모 비서관이 아무개 전직 대통령에게 짐짓 비꼬듯 추어올리는 말을 하면서, "아부는 이렇게 해야 한다."며 기자들에게 농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은 주로 중국의 지난 고사를 여러 시대로부터 추출하여 인용하면서, 상급자의 비위를 달래고 소통을 강화하는 효과적인 표현을 구사하되, 그저 듣기에만 좋고 내심으로는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실패한 아부가 아닌, "이런 말을 해야 상사, 주군이 진짜 좋아할 법한 테크닉"을 골라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가진 최대의 문화적 자산은 바로 그 풍부한 고전입니다. 양적으로 풍부하다 보니 자연 담아올릴 엑기스도 많겠지만, 이 저자 타오돤팡(陶短房. 도단방)은 용케도 그 방대한 사서(史書)에서 적실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만 추려서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재 미없게 편집한 처세서는, 그저 우리가 잘 아는 고사 몇 개만 짚다 보면 어느 새 식상함에 빠집니다. 이런 책이 우리 독자에게 환영 받으려면, 첫째 교과서나 다른 실용서가 잘 다루지 않는 좀 드물다 싶은 이야기를 취해야 하고, 둘째 그러면서도 보편적으로 잘 알려진 이야기를 끼워 넣어 맥락이 산만해지지 않게 해야 하며, 셋째 잘 알려지지 않아 참신하다고 해도 그 주인공(역사 인물)이 너무 생소하면 공감과 동조의 효력이 반감되므로, 되도록이면 인물만큼은 어느 정도 알려진 pool에서 잡아야 하며, 마지막으로 저자의 구수한 입담과 해설, 책의 편찬 취지를 잘 구현할 힘 있는 독자적 서술이 들어가야 합니다. 기껏 역사 이야기만 재미 있게 늘어 놓아도, 나중에 가서 "그냥 이야기책이었나? 저자가 말하고자 한 바, 그리고 내가 이 책을 시간 들여 읽은 이유와 보람은 뭐지?" 같은 생각이 들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이 책은 이런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으며, 매 챕터마다 "요지, 핵심"이 무엇인지 간단한 요약까지 곁들이고 있어서, 이런 종류의 책으로 최고의 만족을 주었습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읽는 재미만으로도 최고였습니다.


사 람 사이를 잘 줄타기하는 데 있어, 최고의 묘미는 바로 그 정해진 공식이 없다는 점입니다. A라는 상황에서 분명히 통하던 게, 새로운 B상황에서는 전혀 약발이 먹질 않습니다. 이 책에 나온 예를 들어 보죠. 진 문공은 전쟁상황에서 벼슬을 사양하고 누운 신하에게 그 용태를 살피고 올 것을 측근에게 주문합니다. 이 말을 듣자 신하의 주변에선 "대감님, 즉시 자리보전하고 칭병을 하십시오." 라고 권하죠. 그런데 이 사람은 문공의 측근이 와서 자신을 살피는데도, 아픈 기색 없이 일어나서 뛰기(저자의 유머러스한 표현에 따르면 "유산소 운동"이라는군요)까지 합니다.사실 진 문공은 "그자가 누워서 아픈 시늉을 하면 다른 마음이 있다는 뜻이니 즉시 처단하고, 그렇지 않으면 살려 두라."고 은밀히 지시를 해 둔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주변의 권유대로 따랐다면, 이 사람은 목숨을 보전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다고 정말 딴 마음이 없었느냐, 후에 위(魏)씨 가문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한(韓), 조(趙)씨 가문과 나란히, 진(晉)나라를 삼분하여 나눠 가집니다. 만약 이 때 마음을 들켜 잡혀 죽었다면, 후대의 창업은 아마 없었던 일로 되었겠죠.

진 시황의 명을 받들어 초를 정벌하러 가는 장군은, 수시로 황제에게 사절을 보내어 이런 저런 물질적 요구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황제가 불쾌히 여기지 않겠습니까? 말 없이 동병(動兵)에만 힘을 쓰심이... " "그렇지 않다. 내가 지금 국가의 병력 80만 중, 60만을 휘하에 두고 있는데, 무슨 딴 마음을 먹어 군대를 돌릴 지 황제가 어찌 안심하겠는가? 그러나 내가 이런 시시한 요구를 끊임 없이 보내면, 황제는 나를 그저 물욕이나 채우려는 소인배로 보고 안심할 것이다." 본디 큰 일을 하려는 자는 소소한 금전욕을 채우려 들지 않고, 색욕에도 어느 순간부터 초연해집니다. 대사를 갈무리하면 그런 부산물은 자연스럽게 굴러 들어올 텐데, 뭐하허러 별도의 수고를 들이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방식을 기계적으로 "교주고슬膠柱鼓瑟"하듯 되풀이하면, 상사나 주군은 어느 새 그 정직하지 못한 마음을 꿰뚫어보고 오히려 불이익을 줄 지 모릅니다. 실제로 양수는, 이처럼 주군의 마음을 너무도 잘 헤아려 일을 처리했기에, 이른 죽음을 자초하기도 했습니다. 한 번 써먹은 수법은 다시 쓰면 안 되는 것이고, 어느 정도 내 생각의 흐름을 투명하게 누설하기도 해야 진정한 믿음을 살 수 있겠죠.


참 아부라는 게 어렵습니다. 무조건 교언영색만 갖춘다고 윗사람의 마음에 드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어리석은 대중을 속이려면 그런 구태의연한 방법으로도 가능하겠으나, 그 사람이 복합적인 사고와 판단 능력을 갖추었기에 그 자리에까지 올랐다면, 일차원적 접근 방식으로는 환심을 살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어떤 사람은 정반대로, 자신이 타인들과의 소통에 능하지 못하기에, 남이 시도하는 방법은 무조건 진정성 없는 아부라며 깎아 내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그 자신이, 진심이라곤 없는 기만과 허위로 상대를 대했기에,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식의 반응이 나오는 거죠. 이렇게, 진정성도 없고 아부에도 서투른 인생이야말로 조직에 있어 암적인 존재입니다. 이런 사람은 업무 처리를 위한 능력도 불비한 경우가 많더군요. 이 책에서 설파하고 있는 진정한 "아부의 도리"란, 상대방의 마음을 정확히 읽고 나의 처신을 그 주파수에 맞추는 능력을 말하고 있습니다. 남(상사, 오너)를 이해하는 작업은, 부끄럽지도 않고 떳떳하지 못한 부도덕, 반칙이 아닙니다. 내가 바라보는 그 상대가, 동시에 내가 자신을 이해하고 있음을 알게 하는 것, 나와 상대 사이의 복합 다차원 게임이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균형점에 다다르게 하는 게 바로 아부의 정도(正道)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말하는 아부란 해로운 거짓과 교란 요소가 아닌, "세련된 소통의 방식"을 이른다 함이 타당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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