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 지음, 서정은 옮김 / 뿔(웅진)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출판사에서 나온 두 권의 단편집 중 이 책이 좀 더 판형이 크고, 분량이 더 많으며, 그 분위기란 조금은 더 어둡고, 조금 더 차분합니다. 모두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지만, 맨 앞의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이 좀 긴 편이어서 중편에 가깝습니다. 그 배경도, 대체로 시골에 가까운 소읍이며, 늦은 중년에서부터, 인샏의 종막을 맞이하는 노년의 연령대에 가까운 캐릭터들이 주인공이라는 점도 공통입니다. 대체로 주인공은 여성이며, 남성이 전면에 부각된 경우도 그를 관찰하며 캐스팅(전달)하는 목소리는 지근의 여성이라는 점도 공통입니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여성도 나오는데, 그렇다고는 해도 본격 글쓰기 과정을 소재로 삼지는 않는다는 점도 주목됩니다.


<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의 첫 장면이, 가구를 먼 도시, 자신이 이주할 곳으로 운반하려는 여성과 역무원의 대화인 점, 그리고 세번째 단편의 제목이 <어머니의 가구>라는 점에서도, 작가 먼로가 특히 집안의 가구에 대해 특별한 장치로 사용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스타일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이 책과 좋은 한 벌을 이루는 <행복한 그림자의 춤>에서도 비슷한 태도가 엿보이던데요. 그 책에서는 가구 외에도 농장을 둘러싼(주인공들이 캐나다에 흔한 소농 집안 출신이라면, 작은 농장을 성장 배경으로 삼음이 아주 자연스럽죠) 자연 풍광에, 어린 나이의 주인공, 그리고 성장하여 그 시절을 기억하는 주인공이 일일이 그 지물에 감정 이입을 하여 선, 악, 호, 오, 미, 추를 매기는 대목이 흥미롭더군요. 놀 거리가 부족한 시골 아이들의 공통 습성을 잘 잡아내어 따뜻한 풍광으로 살렸다는 의의 외에도, 인간은 결국 무엇인가에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존재라는 점, 이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역시 빼놓지 않고 자신의 작품에서 개별사례의 일반화로 우리 앞에서 재낭독해 주고 있음을 확인한다는 점에서요.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에서 얼핏 느껴지는 모습은, 답답하면서도 차분한 묘한 분위기입니다. 여성은 으레 아름다움, 활기, 일상의 재미 등에서 존재를 확인하는 법인데, 주인공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이 보입니다. 못생긴 여성에게 짖궂은 농담이나 던지는 걸 낙으로 삼는 역무원은, 어느 새 실속 있게 제 용건만 챙기고 "무례하게, 마치 자신을 자동 응답 기계 대하듯 하고는" 떠나 버린 여성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가구에 손상이 생기면 안 돼요. 가축 냄새가 배어도 안 되구요." 시대 배경이 딱히 정해지진 않았으나, 우리가 속한 시간대와 그리 멀지는 않음도 확실한데, 이런 모습은 낯설기는 합니다. 역무원이 권하는 트럭 운송은 우리 식으로 말하면 자영택배업 정도일까요? 조해너(한창 때에도 별 봉 일 없었을 것 같다고 역무원에게 내심으로 가혹한 평가를 당하는)는 그러나 곧이 기차 운송을 고집합니다. 나중에 드러나지만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보세요. 사신 가구들, 상점에서 사셨죠? 근데 그 가구들은 다 그 상점에서 만들었겠어요? 아니죠. 그 가구들도 다 기차가 운송한 거라구요. 우리는 그런 일 전문입니다. 안심하세요." 나름 재치와 설득력을 갖춘 설득이지만, "시골 사람 특유의 예의갖춤 기색도 없이" 조해너는 기계적 응대만 남기고 떠납니다.  이어 그녀는, 좋은 상품을 취급하지만 공동체 이웃들로부터 제 대접을 못 받는다는 불만을 떨칠 수 없는, 그러나 상술보다는 진정한 소통에 능한 어느 의상실 주인 밀레이디와 만납니다. 좋은 옷, 그녀의 예산에 약간 벅찬 가격의 옷을 제시받지만, 그녀의 체형에 잘 맞질 않습니다. 딱히 열등감이 사로잡혀 사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녀는 이런 옷을 무리하게 걸쳤다가 웃음거리가 되기 좋겠다는 냉정한 판단을 즉시에 내립니다. 매력도 행운도 결핍한 그녀지만, 현실 인식에 있어 주관적 환상에 빈틈을 내주지도 않는 타입입니다. 20페이지 중간쯤을 보세요. "녹색 드레스의 경악을 공유하고, 갈색 드레스를 찾아 내는 사이에 뭔가 유대감이 생긴지도? 아니다, 이 여자는 방금 한 건의 마수걸이를 한 데서 오는 기쁨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사실 우리가 보는 눈으르는, 꼭 그렇게 비관적으로 볼 것도 아닙니다. 밀레이디라는 이 의상실 주인은, 그저 노련한 상식에 입각한 세일즈와 응대를 했을 뿐인데, 주위로부터 큰 환대를 받고 자라지 못한 조해너로서는, 임박한 작은 기쁨(그녀로서는 큰 기쁨)에 괜한 여파를 부를 변수를 차단하려는 오랜 습성이 발동한 것 뿐이겠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가구>를 보면, 앞서 말했듯 잘 드러나지 않으나 결국 이 주인공은 작가입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친하게 지내던 친척 아주머니의 독특한 인생 역정을 소재로 살짝 삼았는데, 이에 대해 아주머니는 크게 분노합니다. 나중에 아버지의 장례식에 찾아 온, 아주머니의 딸로부터(너무 나이들어 보여 처음에는 아주머니의 동생인 줄 알았다고 하죠) "물고기처럼 잔인하고 무정한 아이"라는 말까지 전해 듣죠. 자신의 말로야 그리 풀고 있습니다만, 우리 독자 역시 아픈 어머니를 뒤로 하고 바로 대학 진학을 선택한 그녀의 행보를 생각하면, 그 평가가 진실에 가깝겠다는 생각 역시 가지게도 됩니다. 그리고, 이 아주머니의 친딸이라는 여성은 과연 누구일까요? 어려서 입양되었다는 사실, 늦게서야 찾은 생모로부터 묘한 사연을 전해 들었다는 걸로 봐서, 아마 주인공의 아버지와, 그 아주머니(서로 사촌간입니다) 사이에 생긴 불의의 사생아가 아닌지 짐작이 가능합니다. 결국 그녀는, 생부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온 셈입니다. 이 끔찍하기까지 한 진실에 어느 정도의 자각과 긍정이 주관적으로 가능했는지, 우리는 주인공의 심리를 간접으로 짐작할 뿐입니다.


맨 마지막 작품은 사실 이 책 전체의 표제로 내세워도 무방한 비중입니다. <곰이 산을 넘어오다>는 여기 실린 작품들 중에 가장 극적인 구조를 지닌 단편입니다. 훌륭한 가문 출신에 빼어난 지성까지 갖추고 교수직에 오래 재임하였으나, 여제자들과의 좋지 못한 추문이 번져 결국 퇴직하게 되는 그랜트. 그리고 그의 처 피오나는 대단히 아름다운 여성이었고, (남편 그랜트의 표현으로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그 아름다움을 손상 없이 간직한 드문 케이스입니다. 피오나의 모계 쪽으로는 대단히 급진적인 사상을 지닌 피가 흐르고 있고, 이는 아이슬랜드식 좌파라는 코드로 형상화됩니다. 금슬 좋았던 부부는, 노년에 접어들어 급속한 뇌손상을 겪어 맑은 정신을 유지 못하는 피오나 때문에 큰 시련을 맞게 되고, 사태의 변전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쪽으로 흘러 갑니다. 결말이 상당히 의외라서 산뜻한 충격을 받았는데요. 먼로의 다른 작품을 보면 이는 이른바 "반전, 트위스팅""으로 작가가 의도적으로 짜 낸 장치는 아닌 듯합니다. 인생에 대한 찬찬하고 정직한 관조가, 뜻하지 않게 극적 흥미까지 자아낸 결과로 보여집니다. <곰이 산을 넘어오다>는 아이들 전통 동요의 제목이자 가사의 한 소절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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