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정치 - 이정희 교수의 정치평론
이정희 지음 / 인간사랑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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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희 교수님은 한국 학계의 존경 받는 원로 중 한 분입니다. 그는 청년 시절부터 교단에 서서,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은 스승의 마음으로 제자들을 훈육했고, 다른 면에서는 신문, 잡지, 기타 종교 매체를 통해 기고, 파급하는 글을 통해, 정치인을 향해 그 다심하면서도 준엄한 충언을 보내었고, 시민들을 향해서는 순간의 격정과 분노, 혹은 좌절과 체념을 삭이고 지양하여 진정한 통합과 화해의 공동체 형성에 창발적 동참의 손길과 노고를 보탤 것을 주장해 온 지식인입니다.


이 정희 교수님의 강단 외 활동, 강연하시는 모습을 한 번도 못 접하신 분이라고 해도, 그분의 칼럼이나 시사 평론을 일간지에서 읽으신 분은 제법 많을 줄 압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정희 교수님이 동아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의 중앙지에 기고를 시작하신 시점이 무려 1980년대 후반, 노태우 정부 시절부터의 일입니다. 교수님은 이 시기부터 무게 있는 기고 활동을 시작하셔서, (이 책에 실린 아티클 기준으로) 2011년 가을까지 집필을 이어가시고 있습니다. 2011년 가을이면, 오세훈 시장의 급작스러운 사퇴로 이른바 시민후보 박원순씨의 부상, 그리고 그 전부터 서서히 수면 위로 역량을 노출하던 안철수 원장의 대두가 가시화하던 무렵입니다. 과연 가장 최근의 칼럼을 보면, 다음 연도에 전개될 정치적 대격변의 파란을 예견이라도 하듯, 신중한 자세로 도도한 민심의 흐름을 정치인들이 직시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칼럼마다 당시의 시대 배경을 분명히 엿볼수 있어요.

이 킬럼은 2002월드컵과 지방선거를 화제로 삼고 있네요.


잠 시, 책에 실린 칼럼의 시간적 범위를 살펴 보죠. 노태우 정부 중엽부터, 김영삼, 김대중 두 분의 정부를 거쳐, (시쳇말로, 한국에 노씨가 몇 명이나 된다고 벌써 두번째의 노씨 대통령이 나오냐는 말까지 들었던) 참여 정부 노무현의 시대, 그리고 후반에 어지간한 레임덕에 시달렸던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장장 5인의 대통령들을 다 지켜 보고 쓴소리와 충언을 아끼지 않은 기록입니다. 지식인의 고뇌와 사색, 충심어린 걱정이 녹아 있는 대 다큐멘터리입니다. 그 커버하는 세월의 범위가 무려 25년입니다. 25년이면 갓난아기가 장성하여 자기 핏줄을 생산하고 어엿한 경제 활동 인구로 탈바꿈하고도 남을 시간입니다. 그 세월 동안 이 학발동안(사실 머리도 여전히 검으신 편이지만요)의 노스승은 준엄히, 그러나 따뜻한 시선으로, 권력과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의 그 걸어가는 여정을 지켜 봐 왔습니다. 


이제 이 책의 제목을 다시 보겠습니다. <사랑의 정치>입니다. 정치 칼럼이므로 제목에 "정치"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사랑의" 정치라고요? (갑자기 어느 화제의 대형 교회 이름이 떠오르기도 합니다만) 수식어와 피수식어가 왠지 안 어울리는 느낌입니다. 우리 나라처럼, 정치가 그 최소한의 생산 기능을 하기는커녕 정쟁과 이권 다툼만을 일삼고, 나아가 국민들을 사분오열시키는 정치의 예가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죠. 그런데도 이 교수님은 그 온화한 표정과 인상에 걸맞게, 천연스레 "사랑의 정치"를 논하십니다.


이 교수님이 주장하시는 " 사랑의 정치" 컨셉이란 알고 보면 단순한 구조입니다. 상대르 인정하는 시선에서 모든 것을 시작합니다. 나의 생각이 소중하고 가치 있듯, 한 발만 물러서서 남의 입장을 바라보자는 겁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되는 가치는 대화와 타협입니다. 그런데, 기계적이고 마지못해 보이는 소통이 아니라, 진정을 담아서 행하는 한 발짝씩의 양보야말로, 이런 살벌한 시국(저 25년 동안 우리는 단 하루도 전쟁하듯 대치하는 여야의 대결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습니다)에서 실천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는 의미에요. 간단하지 않습니까? 사랑이 그처럼이나 간단하고, 또 현실에서 그만큼 구체적인 성과도 도출할 수 있다니, 들어서 마음만 편한 게 아니라, 우리가 부대끼며 그 안에서 자아를 실현하는 사회 전체를 살갑고 따뜻하게 만들어주기까지 합니다.


이 렇게 사랑을 자연스레 정치와 변증법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배경에는, 이 교수님 개인이 지닌 신앙의 배경이 작용하는 바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 책에는 평화신문 등 가톨릭 계열의 매체에 기고하신 글들의 분량이 제법 됩니다. 이 교수님은 그 다정하고 온화한 인상에서도 엿볼 수 있듯, 상생과 공존의 이념을 정신과 영혼 속에 가득 담은 삶을 사신 분입니다. 그런 실천의 경력에서, 이처럼 현실적이면서도 정의롭고 온건한 말들이 나올 수 있겠죠,


저 는 개인적으로 이 칼럼집을 역사책처럼 읽었습니다. 이 책에는 칼럼의 배경이 되는 갖가지 역사적 이벤트들이 빼곡히도 나열되고 있습니다. 제 2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잡음, 노태우의 민자당 탈당, 김현철 사태, 한보 비리, 대통령 자식들의 스캔들, 고건 대행의 등장, 김석수 총리 지명 등등 칼럼을 읽으면 이 시대에 이런 일들이 다 있었나 하는 생각에 현대사 책 한 권 읽은 듯 노곤함이 밀려 옵니다. 그 갖가지 파란과 이벤트가 긍정적 성격보다는, 현대사의 치부와 모순을 노출하는 성격이라서 그럴 겁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 노지식인이 내놓으시는 처방은 한결 같습니다. "사랑의 정치!" 이 다섯 글자입니다. 간단한데도 간단하지만은 않은, 이 시대의 화두가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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