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가 기가 막혀! - 주변의 도움 없이 난관을 헤쳐 나가는 친구들 이야기 세용 창작동화 2
문재갑 지음, 백철 그림 / 세용출판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들 책은 일단 읽기 편하고, 예쁜 그림이 많이 들어가는 책에 일단 시선이 갑니다. 이 책 <방귀가 기가 막혀>는 문재갑 님의 작품인데요. 이 분은 예전에 백제, 조선 등의 역사를 어린이용으로 각색해서 내신 적이 있습니다. 예쁜 그림을 그린 백철 님은 자음과모음출판사에서 <삼한지>를, 만화와 이야기 두 버전으로 출간하셔서 많은 학부모님들의 사랑을 받았었구요. 이 책 <방귀가 기가 막혀>는 우리 나라 어느 초등학교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이고 예쁜 그림과 함께 재미있는 동화로 꾸며 낸 책입니다.

주인공은 일단 민우가 있습니다. 이 아이는 일단 키가 크고, 얼굴이 잘생긴데다, 매너가 좋고 공부까지 잘하는 범생입니다. 다만 너무 과묵한 탓에 친구가 많지 않다는 게 단점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안 건데, 요즘 초등학교는 시험이 없어졌다고 하는군요? 다만 수시로 보는 수행 평가가 이를 대신한다고 합니다. 그럼 민우가 정말 공부를 잘하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고, 순전히 그럴 것 같은 이미지에만 덕을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 (물론 농담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보기만 해도 믿음이 가고 안정감이 느껴져서, 앞에 대표로 내세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유형이 어디에도 있기 마련이죠. 이런 유형이 저 민우라면, 반대로 해결사 형이 있습니다. 여기서 해결사라고 하면, 물론 험악한 깡패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공동체 곳곳에서 삐걱거리는 일이 있으면 솔선해서 나서고, 멋진 해결을 도모하는 facilitator를 말랍니다. 이 멋진 해결사로, 그 이름도 찬란한 영광이가 나옵니다. 이 영광이는 다소 정신 없고, 언제나 나대듯이 일을 벌이는 스타일이지만, 대단히 칭찬하고 싶은 점이 그 벌여 놓은 일들을 언제나 수습을 하고 나선다는 거죠. 제 일을 제가 수습할 뿐 아니라, 남의 곤란한 일까지 다 거들어 줍니다. 이런 타입, 자기가 좀 망가져 가면서 공동체의 분위기를 띄우고 과업을 해결하는 유형이, 어느 단체, 집단에서나 필요한 존재입니다. 세상에는 민우 같은 편안하고 유덕한 지도자 타입이 있는가 하면, 유능하고 수완 좋은 영광이 같은 타입이 따로 있고, 이 둘이 힘을 합치면 동네 전체가 조용하고 잘 굴러갑니다. 이 5학년 학급은 이 두 사람이 손을 잡고 학기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진정 운이 좋습니다. 앞으로 모든 일이 잘될 것만 같습니다.

민 우 같은 애는 어쩌면 운이 좋다고 봐야죠. 머리가 좋다, 키가 크다, 잘생겼다, 이런 건 그저 날 때부터 결정되는 요소 아닐까요? 하지만 영광이 같은 유형은, 아이들 뿐 아니라 직장이건 가상 커뮤티니 어디서건 더 본받고 더 귀하게 여겨야 할 타입이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물론 성격이 좋고 융통성 좋은 것도 타고난 요소라면 요소인데, 이건 그나마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내 것으로 할 수도 있는 자질이며, 잘생기고 똑똑한 건 일차로 자기 좋은 거지만, 성격 좋은 건 남한테 좋은 팩터이니까요. 반대로, 아무리 자질이 뛰어나고 환경이 좋다고 해도 그 보유자의 인생이 잘 풀려야만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뒤에 나오는 규명이 같은 애가 그 좋은 예입니다.

이 영광이는 아이라고 하기엔 좀 놀랍다 싶은 자질(!)을 보여 줍니다. 그냥 성격만 쾌활하고 변죽이 좋은 애가 아닙니다. 일단 민우한테, "넌 이런 점이 딥따 좋지만, 난 이런 장점도 있는데, 친구 하지 않을래?" 라고 과감히 접근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애가 여간 기특한 게 아니죠. 어른도 나이 들어서까지 이런 거 죽어라 하고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격 좋다 이런 걸 떠나서 이 영광이라는 애는 놀라운 본능, 지혜라고 하면 지혜라 할 자질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위험의 예측, 혹은 주위 분위기의 일각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불안 요소를 잘 캐치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한 순간의 증오의 시선 같은 것에 무슨 레이저빔이나 특수 파동이 담겨 있어, 뒤통수에서 이를 감지한다는 뜻이 아닙니다(그거야 영광이 본인이 아닌 제가 알 수는 없겠지만, 설마 그렇기까지 할까요? ^^). 이 아이는 새로운 상황에 대한 적응 능력이 뛰어나, 위험의 잠재 요소가 일단 눈에 띄면 머리 안의 db에 정리를 해 두었다가 그로부터 작은 변경 신호라도 감지되면 재빠른 대응 수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규명이가 뒤에서 째려보고 있을 때, 그 시선의 불길함을 알아 채고, 아 앞으로 생길 수 있는 이런 일에 대비해야겠구나 마음을 일찌감치 먹은 것입니다.

이런 불안감을 마치 미래를 내다보는 제갈 공명의 혜안으로 캐치하듯, 영광이는 다정한 "주군" 민우에게 당일 솔직히 털어 놓습니다. 사람 좋은 민우는 반신반의하지만, 그 위험은 아니나다를까 하굣길에 바로 현실이 되어 나타납니다. 규명이가 불량한(그리고 한심한) 중학생 형들을 이끌고 후미진 골목에서 영광이를 벼르고 있었던 겁니다. 애꿎은 민우까지 욕을 보게 생겼네요. 그러나 영광이는 특유의 순발력과 재치를 발휘하여, 이 위기를 멋지게 넘깁니다.

여기서 영광이가 보여 준 재간은 단순한 융통성이다, 순발력이다, 이런 류로 평가될 게 아닙니다. 이 아이는 특유의 예민한 레이더로 위험을 캐치한 후, 그에 관한 정보를 자신의 인맥(4학년 때 같은 반 애들)을 통해 수집하여, 미래에 벌어질 모종의 사태에 대한 정확한 예견까지를 내리고 있었던 겁니다! 이건 다름 아닌 전쟁에서의 장수, 혹은 치열한 비즈니스의 장에서 생존을 도모하는 CEO에게나 요구되는 인적 자질이죠! 이런 아이가, 보기에도 훤칠한 민우의 측근으로 자진해서 스스로를 포지셔닝하니, 이 반에 번영과 평화(?)가 깃들 수밖에요! 우리 정치판도 이런 인재들이 전면에 나서서 상황을 좀 정리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동화책에는 이것 말고도, 요즘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문화 가정의 화소까지 곁들여서, 그야말로 모든 갈등과 이슈를 한 몸에 담아 내고 잠정의 해결을 보려는 야심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그뿐일까요? 아마도 민우를 짝사랑하는 걸로 보이는 야무진 미녀 최수지양까지 등장, 인생에 있어 가장 파란만장한 시기(?)인 초 5학년 시기를 한 편의 서사 안에 잘도 녹여 내고 있습니다! 로맨스, 학교 폭력, 정치적 이합집산, 처세의 지혜, 여기에 예쁜 그림까지 모든 명작의 요소를 갖춘 <방귀가 기가 막혀>! 어른이 읽어도 마음이 뿌듯해 지는 동화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