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라와 미카의 비밀 시크릿 시리즈
제시카 소런슨 지음, 정미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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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어덜트라는 장르가 최근에 미 독서계의 새로운 층위를 세분했다고 하죠? 이 제시카 소런슨의 작품은 아마 그 뉴 어덜트의 효시로 꼽힐 작품이 아닌가 해요. 달달하고 아삭아삭한, 아직 10대의 풋풋한 기운을 채 떨치지 않은 어린 20대 둘의 사랑을, 감각적이고 평이한 문체로 졸졸 써 내려간 러브 스토리입니다.

혹시 책 제목만 접한 분들 중에, 엘라는 물론 미카까지도 뭔가 여성향의 이름으로 받아들여진 분 없으셨나요? 음..... 두 주인공 미카와 엘라를 나란히 붙여 읽으면, "미카엘라"라는 완전한 여자 이름이 되는 점에서도 그렇구요,소설에 물론 폭력이나 탈선, 비행의 묘사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순정의 두 주인공이 서로를 향한 열렬한 시선을 교환하는 중에 아무 다른 생각, 즉 곁눈질, 바람핌, 양다리 같은 크고작은 배신 행위가 일절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이 소설은 비록 뉴어덜트의 장르에 속한다고는 하나, 뭔가 진한 순정으로만 가득한 고풍의 로맨스소설 공식을 충실히 따르며, 주로 "착한" 독자들의 기호를 집중적으로 만족시키는 것 같습니다! 즉, 읽어 나가기에 변칙이나 폭주가 없는, 담담하고 착한 내러티브가 연속되어, 예를 들어 현재 그저 착한 사랑만을 충실히 이어나가는 연인들이 돌려 보고 공감하기에 더 없이 좋은 그런 소설 같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미카"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강직하고 굳센 한 예언자의 이름이고, 영미 관습상 확고하게 자리 잡은 남성용 퍼스트네임입니다.

주인공들의 성격이나 환경 설정 역시 그래요. 여주 엘라는 이 후미진 동네에서 못 말리는 정의파, 행동파였고, 그 늘씬하고 잘 빠진 몸매에 예쁜 얼굴까지 갖춘 외모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에게나 또래들에게나 터프걸의 이미지로 아주 어린 시절부터 콱 각인되다시피한 왈가닥이었다고 "설정"됩니다. "설정"되었다고 한 건, 이 권에서 그 구체적인 묘사가 없고, 과거 회상의 계정 속에서만 어렴풋이 재생되고 있어서입니다. 우리는 현재. 완전히 범생이 대학생 이미지와 외관으로 변신에 성공한 엘라를 볼 뿐, 그녀의 터프걸로서의 과거 행적은 그저 전언, 회상으로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이게 이 소설의 눈에 띄는 특징이죠. 현재의 매력적인 그녀를 제시하되, 현재의 모습으로는 상상이 안 가는 과거를 간간히 알려 주며 현재 모습과 대비시킴으로써, 여주로서의 그녀 매력을 최고조로 부각하는 방법을 작가는 쓰고 있습니다.

여주 엘라가 완벽한 변신을 겪는 동기는 어머니의 자살입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지만, 엘라는 나약한 정신의 아버지, 성치 못한 정신의 어머니, 그리고 성별만 남자일 뿐 여성인 자신의 영혼과 거의 판박이라 할 수 있는 내면을 지닌 오빠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니, 건전하기는커녕 정상적인 가정 수준에도 다소 못 미치는 분위기에서 성장한 셈입니다. 이런 중에, 그녀에게 거의 평생에 걸쳐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는 사건까지 터집니다. 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그녀는 고향을 떠나 엉뚱하게도 라스베가스 소재의 대학, UNLV로 진학하게 됩니다(실제로 있는 대학인데요, 그렇게 명문은 아니고, 소재 지역 분위기 따라 주로 호텔 관광업 인력 배출에 특화된 기관입니다). 대학 기숙사에서 그녀는, 부유한 가정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란 "진짜 모범생" 라일라를 만나, 어찌 보면 그녀를 롤 모델로 한 듯한 변신에 성공합니다. 기숙사 생활 해 본 분들은 알지만, 둘 중의 하나는 청소 등 가사일 유사의 잡무를 잘 해 줘야 생활이 편한데요. 엘라는 어려서부터 가사일을 완전 내팽개치다시피 한 엄마 밑에서 컸던지라, 라일라에게는 더없이 편한 룸메가 됩니다. 그렇다고 천성이 왈가닥인 엘라가, 라일라 같은 약해빠진 아이의 "시녀 역할" 같은 걸 맡았을 리야 없고요, 아마도 다른 일상에서는 언제나 그녀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해서 상황을 리드해 갔으리라 짐작합니다. 근성 있으면서도 (대학 진학 후로는) 흐트러짐 없이 모범생으로 제 역할을 잘 해온 엘라가, 짜잔한 뒤치다꺼리는 또 알아서 척척해 주니, 둘이 잘 맞을 수밖에 없죠. 마음이 맞는 라일라 같은 룸메를 만난 덕에, 처음부터 변신 의지가 확고했던 엘라는 첫 학기를 잘 보내고 고향에 돌아오게 됩니다. 아직 자신의 차가 없는 엘라는, 바로 룸메인 라일라의 메르세데스(우리가 흔히 벤츠라고 부르는 차종)을 타고, 망설임과 불안감을 마음 한 켠에 간직한 채 다소 심란한 귀향길에 오르는 거죠.

고향에서 같이 지내던 시절, 엘라와 미카는 아버지처럼 의지하고 지내던 아저씨를 한 분 둔 적이 있습니다. 두 사람 다 아버지가 온전한 노릇을 못 했던 (나중에 밝혀지지만 미카가 더 심한 경우입니다)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에, 마치 로렌스 신부를 따르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둘은 이 맘씨 좋은 아저씨를 무척이나 따릅니다. 이 아저씨가 뼈암 4기의 중태인지라, 미카는 마음이 급해서, 그 넓은 미국 곳곳의 "엘라"들을 검색해서, 느닷 "그 사건" 이후 종적이 묘연한 엘라를 찾아 나섭니다. 친구 에단의 도움으로 간신히 유타 주 모 대학에 재학 중인 엘라를 발견하게 되고, 사진상으로 보아 완전한 변신을 해 버린 그녀의 모습에 미카는 더 충격을 받게 됩니다. 휴대전화 번호까지 알아 내어 음성 사서함에 메시지를 남기는데, 확인 여부는 애타게도 미지수로 남아 있죠. 공교롭게도 바로 그 날, 엘라는 라일라와 함께 호화 독일 승용차편으로 귀향하는 중이었습니다.

미카야 마음 어느 한 구석으로부터도 엘라를 지운 적 없지만, 엘라는 고향과의 결별 당시의 상처와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가 너무 컸던 탓에, 스스로를 배신까지 해 가며 미카를 잊으려 애씁니다. 묘한 것은, 그 한창 나이의 불 같은 열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성(이든 혹은 동성-그녀의 활달하고 터프한 성향을 감안하면 동성 파트너를 물색했을 법도 했는데요)을 찾는 노력은 또 일절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는커녕, 엘라는 자신의 빼어난 그림 솜씨를 발휘해서, 미카의 그 멋진 자태를 화폭에 담아 기숙사의 벽에 걸기까지 했다는 거죠. 라일라는 대체 이 정감과 열정, 연정으로 가득한 선과 색으로 표현된 미남자가 누구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제 그녀는, 잠시 후 도달할 엘라의 고향에서, 섹시미 가득한 "동네 팝스타" 미카를 실물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누가 뭐래도 미카와 엘라는 자칭타칭 공인 커플이었지만, 정말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라서 그런지, 여태 둘은 한번도 같이 밤을 지낸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자유분방한(이라기보다 거의 방치된) 가정 출신이라, 잔뜩 술에 취한 체 미카는 엘라의 방으로 창을 통해 기어들어와 그 날씬한 몸을 꼭 끌어 안고 잔 적은 여러 차례 있었나 봅니다. 하지만 결정적 선을 넘은 적은 없는데, 이에는 엘라의 괄괄한 성미와 나름 분별력이 큰 작용을 한 것 같습니다. 남자들이야 미카 아니라 누구래도, 그런 경우 제 본능을 절제하는 예가 없으니까 말이죠. 아무튼,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 속속들이 서로를 알고 있고, 좋아하고, 딴 마음 먹지 않는 의리파들인데다, 미국 어디다 내 놓아도 빠질 것 없는 선남선녀인데도, 둘은 여태 그 나이까지 선을 넘은 적이 없습니다. 이런 그들이, 순전히 엘라의 사정으로 반 년 동안 서로 생사 여부도 확인 못 하다, 이제 극적인 상봉을 눈 앞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후의 흥미진진한 사정은 직접 책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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