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애를 말하다 -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그리고 사랑이 없는 무성애, 다시 쓰는 성의 심리학
앤서니 보개트 지음, 임옥희 옮김 / 레디셋고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참 재미있습니다. 소재가 성(性) 문제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흥미를 느껴 하지 않을까요? 요즘 스릴러 물을 보면, 연쇄살인마, 근친 성폭력, 아동 성폭력, 나아가 이 모든 요소의 결합을 시도한 것까지 아주 넘쳐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성 문제를 소재로 이런 극한의 인간성 실종 영역을 다뤄도, 사람들은 불편해하지 않고 오히려 호기심의 대상으로까지 삼습니다. 이런 분위기이고 보면, 비위 약하고 심장이 튼튼하지 못한 독자들까지 무난히 끌어 들일 수 있는 이런 성담론 소재의 책이야말로 거의 모든 독자층의 시선을 잡을 자격이 있다고나 하겠어요.


게다가 이 책은, 흥미롭게도 성적 소수 패턴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성적 소수자라고 하면 말 그대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소수이기 때문에, 그런 주제를 다룬 책 역시 소수의 관심만 받고 그칠 법합니다. 그런데도 성적 소수자를 논한 책, 영화, 혹은 방송 프로그램은, 계층과 나이, 직업, 그리고 성적 취향을 떠나 광범위한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성적 소수자를 다루는 미디어는, 정작 소수자 당사자보다 오히려 국외자인 다수, 비 소수자로부터 더 많은 관심을 받습니다. 일종의 관음증적 기호가 투영되어서 그런 걸까요(이 말이 사실이라면, 주류적 성 정체성을 가진 이들 중 많은 수는 변태 성향 역시 지니고도 있다는 반증입니다), 아니면 아무리 확고한 주류적 정체성의 소지자라도 때로는 그 일탈을 꿈꾼다는 일종의 심리적 배신의 노출일까요? 미 대법원에서 최근 동성 결혼의 합법화를 위한 중요한 결정을 내린 바도 있는지라, 이 문제는 더 이상 일부만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성 문제에 대해, 정면으로든 측면으로든 분명한 입장 정리와 인식을 가질 필요의 순간에 달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종래 흔했던 성적 소수자 문제를 다루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동성애, 양성애, 그리고 각종 특이성 패턴을 넘어, 아예 무성애(asexuality)의 적극적 개념 규정에 나서고 있습니다. 책에도 잘 나와 있지만, 무성애란 기본적으로 사람의 특성을 논할 때 쓰던 용어가 아닙니다. 아메바 같은 하등동물의 단성 생식 같은 행태나 지칭할 때 쓰던 용어죠. 그런데, 이성이건 동성에게건 그 어떤 끌림도 느끼지 못하는, 진정 특이하다 할 성적 정체성을 지닌 이들에게, 이런 명칭을 붙이고, 나아가 그들의 성적 정체성의 특질에 대한 정확한 규명을 시도함으로써, 성(性)이란 무엇인가, 성애(sex)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해명을 시도하는 게 이 책의 의도입니다.


이 책은 분명, 무성애자들의 특성에 대한 흥미롭고도 과학적이며, 정치적으로 공정하기까지 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책입니다. 헌데, 이 책을 끝까지 읽고 제가 느낀 각성이랄까일종의 감동은 그런 대목에서 그치질 않았습니다. 잠시 이 이야기를 좀 적어 볼까 합니다.


우리가 어떤 개념이나 현상에 대해, 그 실체를 정면으로 파악하는 작업이 대단히 힘들고 번거롭다면, 일반적으로 알려진 다른 접근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그와 반대개념 혹은 여집합을 이루는 나머지 영역을 철저히 고찰하는 루트입니다. 우리 현대인이 아무리 치열한 논쟁과 관심을 통해 그 접근을 시도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성애의 영역, 이성애, 동성애, 혹은 그 외 각종 성 패턴에 대한 지식은 여전히 미지의 분야로 남아 있습니다. 콧대 높았던 프로이트도 여성의 성 심리(성 심리 뿐 아니라 심리 일반)에[ 대해 무지를 공개적으로 고백했고, 여태 그 어떤 석학과 권위자도 성 문제에 대해 어떤 레벨에서도 명쾌한 해명을 내놓은 바 없습니다. 이 책의 표현대로, "성은 우리 안에 있는 괴물"입니다. 성이 눈을 뜨고 입을 여는 순간, 우리의 자아와 이성은 괴물에게 길을 내어 주게 됩니다.


이 책은 괴물의 정체를 밝힘에 있어(이 책의 의도가 그저 무성애 분야를 탐구하고 마는 것이었는지, 제가 지금 리뷰에서 적고 있는 대로 그이상의 지향을 지녔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요), 괴물의 본성을 적극적으로 규명하는 무망한 방법론을 취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괴물 아닌 것', "괴물이 (일시적 혹은 영구적으로) 부재한 상태의 성질"을 치밀하게 파고듦으로써, 역으로 괴물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려 합니다. 비유하자면, 광기가 무엇인지 알려면 정상 상태에 대한 탐구를 통해 그 파악이 가능한 것, 혹은 그 반대와 비슷하고다나 하겠어요. 아닌게 아니라 이 책은 성을 두고, 광기의 일종이라고까지 진단하고 있으니까요.


우리에게 그토록이나 많은 쾌감과 보람을 안겨 주는 성(性)은, 사실 자연스럽지도 않고 (당연히) 이성적이지도 못한 녀셕이라는 게 저자의 기본적인 시각입니다. 두 개의 다른 성이 서로 만나 생식을 도모하는 방식은, 지질 시대의 거대한 기준이나 장구한 진화론의 스케이프에서, 출현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행태입니다. 앞으로 또 어떤 효율적이고 부작용 없는 번식 양태가 등장할지는, 우리 중 누구도 예측 못 하는 일입니다. 게다가 이성 결합의 기제 역시 확고한 자리매김을 유기체 내에 마련한 것도 아니어서, 비정상적이고 극한의 환경에서 예외적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이미 정상적인 조건에서도 흔히 드러나는 게 동물의 동성애 패턴이라고 합니다. 실험에서, 숫양의 상당수는 아 무 자극이 없었는데도 태생적으로 동성에 이끌리더라는 거죠. 하긴, 만약 이성애가 확고한 본성이라면, 농장주, 낙농업자들이 교배 작업을 위해 그토록 노고를 기울일 이유가 뭐였겠습니까. 그저 불편한 진실일 뿐이라 애써 외면했던 것에 지나지 않았죠.


이 책의 충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저 가축들 중 상당수는, 아예 어떤 방식의 성적 관심도 노출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이른바 무성애 유형이며, 이는 명백하게 자연의 한 패턴으로 존재하는 실체였던 것입니다. 아무 가공이나 조작도 가하지 않은 자연의 실태가 이러한데, 인간 중 몇몇이 (아무리 소수라도) 성적 무관심, 나아가 무능력(무성애자가 곧 무능력자는 아닙니다. 나중에 적겠습니다)을 지닌다 치더라도, 이를 자연의 섭리에 반하는 존재라고 낙인을 찍을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 인간 지성사에 가장 크게 두드러진 지적 업적을 남긴 천재로 아이작 뉴턴이 있습니다. 그는 평생 동안 여성에 관심을 보이지 않은 사실로 유명합니다. 그 가 동성애자였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보다는 아무런 성적 충동을 지니지 않았다는 설이 보다 유력합니다. 인류 문명에 이런 공적을 남긴 이를 두고, 단지 성에 초연했다는 이유로 비정상, 장애의 낙인을 찍는다면, 그게 온당한 일일까요? 그렇기는커녕, 오히려 인간의 가장 완비되고 위대한 이성은, "무성애 상태"에서만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조심스레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1) 성애라는 건 자연 상태에서조차 "확고한 정상 패턴"의 지위가 아니며, 2) 진화론적, 혹은 도덕적 관점에서 탁월한 인간 고유의 본성인 이성의 작용은, "성애가 부재한", 즉 "무성애의 상태"에서 최고조의 기능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이러면 성애라는 것은, 인간이 누리는 ??상의 기쁨이자 정상의 표징이 아니라, 오히려 생물학적 생존과 진화에 장애 요소나 아니겠나 하는 주장까지 가능해집니다. 무성애가 장애가 아니라, 오히려 성애가 거추장스러운 부품이었던 것입니다!


저자는 이런 주장도 합니다. "인류 역사상, 이처럼이나 인간들이 성(sex)에 집착했던 때가 존재했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이 간신히 최소한의 물적 생존이나 도모하던 때라면, 성의 문제는 부차적이었을 뿐이었겠죠. 우리의 조선 시대라면, 양반들은 도학의 추구에 보다 많은 정력을 쏟았을 테므로, 성의 문제는 역시 주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평론가 러스킨은 배우자와의 첫날밤, 국부에 돋은 여성의 무성한 음모를 보고 질겁을 한 후, 일체의 성적 행동을 멀리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난 시대의 위대한 흔적으로 기억하는 많은 이들의 삶에서, "성'이란 그닥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습니다. 성에 몰두하던 이들은 생산 활동의 고됨에서 벗어날 길 없던 하층민이나, 극한의 타락에 빠진 일부 상류층 뿐이었는데, 어떤 눈으로도 이들을 정상이라며 지향하던 시대는 거의 없었습니다. 오로지 우리 시대만이, 계층과 지역을 불문하고 성의 과도한 수요와 공급에서 헤어날 줄 모르는 것입니다.


동성애의 과학적 기초에 대해서도 저자는 대단히 재미있는 정보를 알려 줍니다. 동성애란 근본적으로 생식이 불가능한, 후손을 남길 수 없는 성향입니다. 그런데 이런 성향이 유전으로 옮아가서, 동성애자들이 "근절"되지 않고 계속 출현한다는 건 상당히 큰 수수께끼이자 역설입니다. 저자는, "동성애 유전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남자를 과도하게 좋아하는 유전자가 존재할 뿐."이라고 알려 줍니다. 이에 따르면, 이 유전자가 남성에게 전해질 경우는 그는 동성애자가 되지만, 여셩에게 전해질 경우라면 지극히 이성을 좋아하는, 따 라서 아주 많은 후손을 남길 공산이 큰 이성애 여성을 빚어낸다는 거죠. 이 여성이 딸을 낳는다면 그녀 역시 어머니를 따라, 다산이라는 사회적 모범이 되지만, 만약 아들을 낳는다면 그는 사회로부터 백안시되는 게이가 될 확률이 크다는 결론입니다. 상당히 강력한 논거를 갖춘 해명 아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강력한 성적 충동을 보이는지 아닌지의 여부는, 호르몬 분비와는 별 관계가 없다고 합니다. 테 스토스테론이 왕성히 분비 중인 어느 남성도, 아무런 이성 혹은 동성에 대한 성적 관심을 보이지 않는 예가 속출했다고 하며, 고환을 절제한 카스트라토나 환관도 어느 순간 다시 성 관계를 시도하는 매우 드믄 예도 존재했다고 합니다. 성 행태의 발현은 근본적으로 호르몬 작용이 아닌, 뇌의 특정 활동과 더 밀접한 상관 관계가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이는 우리의 예상보다, 성 활동이 매우 복잡한 활동 기제를 지니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우리가 성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갖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단지 사회학적 논리나 윤리적 당위에 의해, 별 공감도 안 되는 억지 결론을 주입당한다면, 오히려 거부감만 남기 쉽겠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특별히 소수자에 대한 인위적 배려를 애써 지어내지 않더라도, 올바른 과학적 지식의 습득 만으로도 우리의 삶이 실천적으로 훨씬 윤택해질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책은 저자의 넉넉한 도량 덕에 유머가 깃들여져 재미까지 한층 더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들었다가, 큰 교훈과 뿌듯한 교양까지 축적하게 해 준, 고마운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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