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살찐 사람은 빚을 지는가 - 빚, 비만, 음주, 도박으로 살펴본 자멸하는 선택의 수수께끼
이케다 신스케 지음, 김윤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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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동경제학의 혁명적 물결은 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데이빗 카너먼은, 심리학과 통계학의 익숙한 원리와 기법을 경제학에까지 응용해서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는데요, 이 혁명적인 기법의 도입, 그리고 광범위한 확장을 가리켜 '행동경제학의 제 3의 물결'이라며 놀라워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우 리 나라에도 카너먼의 많은 책이 소개되었기 때문에, 행동경제학의 핵심 개념은 이미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많은 부분에 있어 종종 오해되곤 합니다. 이렇게 된 건 그의 기법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적지 않은 책임이 있습니다.


행 동경제학의 핵심은, 인간이 이성적 동물이라는 종래 경제학의 기본 명제를 뒤집어서, 모든 고찰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자는 데에 있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은 이성적 존재가 아니며, 따라서 이성적 선택을 할 수 없다."고 단정하는 데에 그 해석의 함의가 있었던 게 아닙니다. 다만 현실에서 냉철한 계산과 이성만으로 행동하는 사람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이성적 인간'이란 가정 아래에서는 유의미한 경제적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행동경제학은 처음으로 직시한 거죠.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비이성적 결과를 유효적절하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최초의 가정을 버려야만 적실성 있는 후속 작업이 가능해집니다. "이러이러한 게 정답이지만, 이성적이지 못한 사람들이 다수를 점한 거대 집단에서는 저러저러한 일이 벌어진다. 비이성적인 집단이 향후 어떤 선택을 할지 예측하려면, 그들이 애초에 이성적이었다는 가정을 송두리째 버려야 한다." 이는 대체로는 시장의 동향을 예측해야 하는 기업이나, 정책 결정을 현실에 맞춰 민활하고 유연하게 내려줘야 하는 정부 섹터에서 유념할 일입니다.


개인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대세가 비이성적이니, 나 역시 비이성적인 결단을 내려는 게 옳고, 또 내 본능에도 부합하니 속 편하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케다 신스케 교수의 이 책은, 당 신이 소속 집단의 추세를 거역하지 못하거나, 통계적으로 68.3%(플러스마이너스 원 시그마 범위의 비율이고, 정적분의 넓이입니다)에 속해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당신 역시도 비이성적 그룹에 속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런 상태를 지속하거나 잘못된 의사결정을 반복하면, '살이 찌고', '매력적이지 못한 외모 탓에 적절한 이성을 만나지 못하며'. '여차여차해서 결국 빚까지 지는 상황까지 갈' 수 있다, 대략 이런 점을 분명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행동경제학이, 그간 이성적 인간이 되지 못했던 모든 이들을 열등 컴플렉스에서 구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전혀 그렇지 않다."며 뒤통수를 치듯 각성의 순간을 마련해 주는 게 이 책입니다.


경 제학의 기본은, 모든 인간이 자기 나름대로의 효용함수를 보유하고 있고, 그 수식에 따라 최대한의 효용을 빚어내는 선에서 상품 선택의 포트폴리오를 짜며, 주어진 시간의 예산 제약 범위 안에서 휴식과 노동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행동경제학이 이에 대해 대폭 수정이랄 것도 없는 추가의 기여를 한 부분은, 현재 효용과 미래 효용 간에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지, 이성적 인간 한 가지 종류만을 상정하지 않고, 지수형 할인을 하는 유형과, 쌍곡형 할인을 하 유형 둘로 대별하여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책의 저자 이케다 신스케(池田 新介)가 처음으로 도입한 건 아니구요, 이미 리처드 헌스타인 하버드大 교수, 심리학자인 조지 에인슬리 등이 일찌감치 이론화, 모형화해 둔 도구입니다.



현 재의 일억원은 그저 일억원일 뿐입니다. 거기에 어떤 방법으로건 할인, 평가절하를 시도할 이유가 없죠. 그렇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억원은 지금 시점에서 액면 그대로 일억원으로 봐도 될까요? 1) 그 돈이 과연 내 지갑에 안착할 때까지 무슨 위험이 중간에 낄지 모른다는 점에서 평가를 신중히 해야 하고, 2) 정상적인 경제 시스템이라면 일정한 원본에 정상 이자가 시간에 따라 지급되므로, 훨씬 적은 현재의 원금만으로도 차후 목돈이 마련된다는 점에서도 가치의 하향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미래의 일억이 현재의 일억이 아니며, 그보다 적은 금액으로 할인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행 동경제학자들은 여기에 추가적인 가정을 삽입하여, 기존 이론의 내용을 더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이 파트는 수정이나 전복이 아닙니다). 이익 실현의 지연이 같은 기간만큼인데도, 그 지연이 지금 현재의 일이냐, 아니면 미래의 일이냐를 두고, 별 차이 없는 할인을 선택하는 그룹이 있고, 반대로 현재의 지연에 더 큰 할인을 행하는 그룹이 있다는 거죠. 전자를 1) 지수형 할인 패턴이라고 부르며, 2) 후자를 쌍곡형 할인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일억원이 제때 지급되지 않고, 지불이 한 달 미뤄진다고 하죠. 그 런데, 오늘 받아야 할 일억이 한 달 뒤에 들어오는 것과, 10년 뒤에 받아야 할 일억이 10년하고도 1개월 뒤에 지급되는 것, 이 둘 사이에 정확히 한 달만큼의 동일한 할인율이 적용되어야 할까요? 1) 같지는 않더라도, 별 차이가 없는 할인율이 적용된다면 그것은 지수형 할인이고, 2) 나중에 미뤄지는 건 그냥저냥 참을 수 있으나, 지금 미뤄지는 건 도저히 못 참겠다. 그러니 지금의 한 달 지연은 더 큰 폭의 보상이 필요하다!(십 년 뒤의 한 달 지연에는 별무관심)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은 쌍곡형 할인을 한다는 말입니다.


이 는 중요한 실천적 함의가 있습니다. 책의 결론은, 1) 이성적인 지수형 할인을 하는 사람은 살도 찌지 않고 빚도 지지 않으며, 2) 비이성적인 사고와 성향을 지녀 쌍곡형 할인을 하는 사람은, 당장의 식탐, 혹은 폭식을 통한 스트레스 해소 욕구를 억누르지 못해 살이 찌는 거고, 당장의 이런저런 소비 욕구를 억누르지 못해 결국 빚더미에 올라앉는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은 지금 당장의 만족에 너무 큰 비중(가중치, 주관적 효용)을 부여하기 때문에, 결국 자멸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죠('자멸의 선택'은 일본어 원서의 책제목이기도 합니다).


책 에는 다양한 사례가 들어 있어서, 교과서 혹은 카너먼의 책에서 미처 접하지 못한 내용에까지 캐주얼한 접근을 할 수 있어 더없이 좋습니다. 이 책은 친숙한 제목을 달고 있지만, 그 전개 내용은 제법 하드한 컨텐츠와 논리로 가득하기 때문에 보통의 자기관리 서적 읽는 마인드로 펼치면 제법 당황할 수 있습니다. 행동경제학의 핵심토픽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필요한 분이나, 대체 늘어가는 허리둘레와 쌓여가는 고지서를 줄일 이론적 설득 근거를 애타게 고집하는 분들이 읽으면 참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일본학자들의 번역을 그대로 모방해서 우리도 좀 무분별하다 싶게 '쌍곡형, 지수형' 같은 말을 쓰고는 있지만, 언어학적으로 바른 태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그간 종종 들었는데요, 이케다 교수님도 이런 용어례에 대해 약간은 회의적인 느낌을 표하시는 게 흥미로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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