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결전
우영수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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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페이지를 훨씬 넘기는 방대한 분량이었습니다. 술술 풀리는 이야기 중심이었다기보다는, 작가가 평소에 겨레의 역사와 올바른 지향에 대해 하고 싶었던 말을, 소설의 형식을 빌어 절절히 털어 놓은 에세이격 장편 서사시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은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 참, <묘청의 난>은, 그 사건을 <난(亂)>으로 본, 그리고 이 소설에서 역사 왜곡과 모화 사상에 빠진 정파의 괴수 격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김부식의 시각에서나 가능한 용어겠습니다. 요즘은 교과서에서도 <서경 천도 운동>으로 칭하는 걸로 압니다. 그게 타당한 명명(命名)이겠고요.


소 설의 전반부에서는 이자겸의 난을 재미있게, 그리고 여러 문헌을 참고하여 생생하고 실감 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저는, 극의 몰입도가 높았던 부분이, 바로 이 전반부였습니다. 학교 교과서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7대 80년 간 국구(國舅)로서 국사를 전단해 온 이자겸이, 금(金) 제국에 치욕적인 사대(事大) 정책으로 치닫고 급기야 옥좌까지 찬탈하려 든 혼란상으로만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 대단했던 실력자가 어떻게 해서 몰락하고, 왕씨 가문 중심의 정계 재편이 이루어졌는지, 또 그 후 불과 10년도 안 되어 서경 천도세력이 새로 부상, 기존의 집권 귀족 세력(이 소설에서 말하는 경주 중심 호족)을 위협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거의 알 수 없었어요. 요즘 한국을 일러 <다이나믹 코리아>라고도 부르지만, 지금으로부터 근 900년 전 반도의 시스템과 분위기 역시 상당히 다이내믹했나보다, 이런 씁쓸한 웃음만 떠올렸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 "아, 그래서 그렇게 된 거구나."하는, 사건의 앞뒤 정리가 말끔히 이뤄진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저는, 제 동생과 자식을 인종 친위 세력의 손에 잃은 척준경이, 무슨 이유로 그리 쉽게 인종의 친서 한 장에 쉽게 반(反) 이자겸으로 돌아설 수 있었는지, 이 소설의 서술만으론 쉽게 납득이 가질 않았습니다. 물론 자겸의 노비와 자신의 가노 사이에 붙은 시비가 발단이 되었다고 언급은 하는 중이지만, 대화 속의 설명만으로 그친 게 소설적 균형을 좀 무너뜨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극이 중대한 전환을 보이는 흐름에서는, 단순한 간접 인용이 아닌 직접적 드라마화가, 별개 씬을 통해 제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괴력을 지닌 척준경의 사연과 행적에 대해, 책을 덮은 후에도 도저히 잊을 수 없게 자세한 묘사가 이뤄진 데 대해서는, 작가의 빼어난 솜씨 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교과서에 한 줄로 간단히 언급되고 만 인물, 사건에 대해 잘 정리된 게 못내 뿌듯한 느낌입니다.


이자겸의 난과 서경 천도 운동을 한 고리로 엮는 인물은, 다름 아닌 정지상입니다. 만약 이 고리가 빠졌다면, 소설은 중간에서 어색하게 반토막이 나는 구조였을 겁니다. 김부식이 소년 왕 인종 앞에서 과감하게, 이자겸의 전횡과 실정을 탄핵하는 장면에서, 젊은 좌정언직의 정지상은 그 주장의 무리함을 지적하다 오히려 이자겸의 편을 드는 결과를 낳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그 주장의 참신함이 눈에 띄어, 인종의 곁에서 평소의 지론을 전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우리 고유의 풍류도와 단군 천제 사상, 고대 전 동아시아에서 화하족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룬 자랑스러운 역사를 설파하게 됩니다. 이 장면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작가는 이후 정지상의 입을 빌어 수시로, 사대주의 세력에 의해 말살된 배달 겨레의 웅혼을 일깨워 천하를 경영하는 제국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지론을 계속 상술하고 있습니다. 이는 젊은 벼슬아치이자 지사인 정지상이 군주 개인에게 간하는 메시지에 그치지 않고, 작가 본인이 현대 한국을 살고 있는 우리 독자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민족 정기를 바로잡자는 제안을 하는 셈입니다. 소설에서 이 메시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제법 커서, 전반적으로 소설이 어떤 역사의 스토리를 극화했다기보다는, 재야사학계가 주장해 온 대(大)배달, 온 가우리 사상의 경전과 같은 인상을 줍니다.


작 가가 펼쳐 놓고 있는 생각은 이분만의 순수 독자적인 창안은 아니어서, 인터넷 곳곳을 '환(한)단고기' 같은 검색어로 둘러 보면 그닥 어렵지 않게 발견되는 내용들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특유의 논리적이고 단정한 문장으로, 그런 주장들의 일견 거칠어 보이는 외피를 잘 다듬어 소설 속에서 매끄럽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특히, 환웅-환인-단군의 세 존재를 기독교의 3위일체와 비교한 건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소설 속에서는 투르키스탄의 유목민과 중동 원주민, 유태인을 싸잡아 색목인으로 칭하면서(실제 역사에서도 그러했긴 합니다만), 그 먼 옛날 우리 동이족이 그들에게 끼친 아련한 영향의 흔적이거나, 최소한 그들과 우리가 공유했었으나 화하족의 음모로 이산가족처럼 서로 떨어지고 만 고리처럼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당대의 수재였던 정지상의 입을 빌어 도도히 펼쳐집니다. 하지만, 천제 사상이 서양의 왕권 신수설과 연결되는 부분은 약간 실소를 자아냅니다. 알다시피 보댕이 왕권신수설을 정립한 시점은, 이 소설의 무대가 되는 시대보다 사벽 년은 뒤떨어진 일입니다. 유럽은 이 때 봉건 제후의 전성기였고, 왕이란 건 허울뿐이거나 아예 자리잡지조차 못한 시대였는데, 세련된 중앙집권화를 상당히 진척한 우리 고려나, 일찌감치 대 영역에 걸친 제국을 확립한 화하족의 사정과 비교할 게 못 되죠. <다윗의 별>까지만 해도 뭐 그러려니 합니다만.


기왕에 정지상을 화자, 주인공으로 설정했으면, 역사상으로도 말살되지 않고 잘 드러나 있는 그의 멋진 연시(戀詩)들 을 작품 속에 삽입했으면 어땠을까요? 아닌게아니라 조휘 같은 여진족 처녀의 등장은 이 소설을, 건조한 사상의 나열이 아닌 매혹적인 로맨스의 세계로까지 완성하는데 큰 기여를 합니다. 특히 지상과 조휘의 사랑을 묘사한 부분은, 외설적이거나 노골적이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운 청춘의 고혹적인 결합을 품격 있는 문장으로 그리고 있어서, 작가의 필력과 격을 증명하는 대목이었습니다(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너무 맘에 들어, 머리 속에 특별히 메모리를 해 두었어요^^). 그런데 왜, 정지상의 절대 걸작이자 중국에서도 칭송이 자자했던 <송인(送人)>을, 예를 들면 조휘가 왜국으로 떠나가는 대목에서 멋지게 인용하지 않았을까요? 사실 저 절창의 배경이 아직 확연히 드러난 바도 없는데, 작가의 상상력으로 이번참에 멋진 정당화의 근거를, 소설의 자유를 빌어 하나 마련했다면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김부식이 지상을 못내 처형하고 만 건 정치나 사상의 스탠스 차이도 있지만, 바로 이처럼 자신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운문 창작 능력을 보유한 천재였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임을 감안하면요. 제 생각에 작가는, 학창 시절 배운 국사 지식은 소설 창작에 백분 활용하면서 ("국호를 대위, 연호를 천개..." 운운하는 대목에서는 살짝 웃음이 나왔습니다. " 아, 이분, 고딩시절에 진짜 열심히 책을 판 모범생이었겠다." 그거 시험에 문장째 잘 나오는 부분이거든요), 국문학사적 지식은 별반 소설에 크게 녹여낸 것 같지 않습니다.


저 는 광주민중항쟁을 살짝 서경천도운동과 연결시킨 대목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동시에 의문을 가집니다. 낭도 세력은 그럼 이 서경 세력이 대변하고 있었다는 건데, 김부식은 경주 중심의 전통 기득권층이면서 왜 이들을 적대했는가? 아시다시피 낭도 하면 화랑이 그 대표격이고, 이 소설에서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 화랑 세력이 신라 건국의 주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민족혼 투철한 낭도들이, 왜 그 역사의 결정적 시점에서 동족을 적대하고, 화하족의 당 제국에 붙었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이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로서, 소설에서 주장하는 바와 모순됩니다. 당장 여기서도 사대주의= 구신라 출신-누대를 이어온 기득권의 상징 김부식의 존재가 매끄럽게 해명되지 않는 걸로 그 모순의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정지상은 극중에서 진시황의 분서 갱유를 두고, 실상은 동이족의 찬란한 역사를 말살한 만행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오히려 시황 정(政)이야말로, 몽골어를 하는 여진족 출신으로, 화하족의 패권 정립을 막기 위한 동이족의 후예였다는 설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입니다. 실제로 중국인의 체질에 맞지 않았던 법가를 배격하고 유가를 다시 전면에 내세운 한(漢) 제국이 진(秦)을 극복하고 이후 수백 년간 그들의 기초를 닦았다는 점에서, 이 주장 역시 근거가 빈약할 뿐 아니라 오히려 단군 사상에 자충수를 두는 면까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론적인 면을 떠나 소설만 놓고 봐도, 왠지 서경천도 운동, 700여일 간 장엄하게 전개되었던 그 비장한 이벤트가, 또 소설의 중심 테마로 이미 설정된 그 사건이, 소설 초두에 다소 몽환적으로 제시된 걸 제외하면, 이 대단원에서 다소 피상적으로 그려지고 말았다는 게 크게 아쉬운 점입니다. 최근에 저는 김형오 전 국회읩장이 쓴 <술탄과 황제>를 읽었습니다만, 작가의 기획 의도에 따르자면, 소설 속에서 이 서경 농성 장면이, 콘스탄티노플 함락의 그 순간만큼이나 상세하고 생동감 있게 처리되었어야 옳지 않았나, 너무 간략하게, 서둘러 마무리된 것 아닌가, 그런 아쉬움을 떠올립니다.


소 설은 그렇지만 많은 매력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역사적 기록들을 폭 넓게 참조하고 이를 소설 소5에 녹여 낸 점이 탁월합니다. 소식 소철 형제의 이름을 따 그들 형제가 개명까지 했다는 사실 같은 건 참 재미있는 정보 아니겠습니까? 이 소설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소동파는 중국 역사에서도 노골적인, (요즘 일본 말로 하면) 혐한의 대표 주자였다는 걸 상기하면 더군다나 흥미를 끕니다. 소설의 마무리는, 부식의 아들 김돈중이가 장군 정중부의 수염을 만인이 보는 앞에서 태운 충격적 사건을 살짝 언급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여력이 미친다면, 이 무신 정변에까지 소설화를 시도하여 속편을 내놓으면 어떨지 제안해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p294 밑에서 8째줄, '김부식라고' '김부식이라고' 오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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