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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 천안함 특종 기자의 3년에 걸친 추적 다큐
김문경 지음 / 올(사피엔스21)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아마 요즘 차를 몰고 거리를 다니다 보면, "천안함 용사들, 당신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같은 문구가 아로새겨진 현수막을 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오
늘의 한국은 모든 문제와 이슈가 정치적 스탠스에 따라 파당적으로 대립하는 모습이다. 이른바 '진영논리'라고 하는 건데, 개별
이슈의 독립성과 특수성에 상관없이, 자신이 소속되거나 지지하는 정파의 주견에 따라 자신의 생각과 견해를 정해 버리고, 반대편의
논리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다. 거기까지는 또 그러려니 하겠는데, 남의 불륜은 그저 불륜이요 제가 하는 일은
로맨스라는 식으로, 자신의 '꽉 막힘'은 이념적 일관성과 지조로 강변하고, 남의 논리는 그저 '말이 안 통함'으로 매도하는
경향이다. 이런 사회라면 그 존립의 기반이 붕괴하는 걸 피할 도리가 없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소속한
거대 집단 혹은 진영의 기계적 논지에 무조건 세뇌될 것이 아니라, 개별 사안에 대해 무엇이 진실인지, 혹은 진실에 가장
접근하는지 구체적인 인지와 포섭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과제의 중요성을 가장 절실히 느끼는 직종은 어느 누구보다도
언론분야, 즉 기자들의 직업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말미에도 나오지만, 제아무리 전문성과 직업적 특수 지식으로 무장했다
한들, 특정 정치 세력과 가까워진다는 그 한 가지 평판만으로, 전체의 신뢰성을 송두리째 상실하고 마는 게 현실이다. 기자들은
다양한 현장을 취재하며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정치적 중립성과 '오로지 사건의 진실'에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이 두
가지 중 하나의 축만 무너져도, 기자라는 직업인로서 디딜 발판이 사라지고 만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인
김문경 씨는 YTN 기자다. 기자라는 직업은, 과장 하나도 보태지 않고 "특종에 살고 특종에 죽는' 직종이다. 기자 생활 전
커리어를 통해 특종 하나를 건지는 것은, 단순화하자면 심마니가 '심봤다'를 외치는 바로 그 운명의 순간에나 비길 만큼 절박한
과제이다. 이 책에서도 저자 김문경은, 자신을 캐릭터화한 '오기자'를 통해(나는 처음에, 저자 김기자와 친한, 직장의 다른 동료가
따로 있어 그를 지칭하는 줄 알았다. 실제로 내 지인 중 하나가 YTN에 근무하는, 오씨 성을 가진 이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이는 이 저자분에 비해 연하지만), 특종의 발견이 기자로서 얼마나 절박하면서도 말단의 신경까지 흥분하게 하는 일인지 실감나게
적고 있다. 이 책의 내용과 직접 상관 없는 일이긴 하지만, 이 본문 중에 여러 차례 언급되는 '옷 로비 사건'의 경우도 역시
기자가 터뜨려 장장 일년 동안 전국을 달구게 한 대특종이었는데, 파장과 범위를 생각할 때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이 천안함 특종을
터뜨린 기자라면 그 성취감이 처음에 어느 정도였겠는가. 그럼에도 불구, 사안이 워낙 중대하다 보니 기쁨은 간 데 없고, 처음
세상에 대사건을 알린 책임감이 그 희열을 대체하다가, 나중에는 회한과 부담만이 커리어를 압도하는 느낌까지 털어놓고 있다.
이
책은 실명 노출, 전형적 르포 형식으로 서술해 나갔어도 충분한 소재를 다루고 있으며, 저자는 바로 특종을 터뜨린 그 수훈자이기에
그런 정면 돌파식 진술 양식을 택했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김문경 기자 본인이 아니라면, 이전 혹은 이후 누가 그런
작업을 감행할 자격이 있겠는가? 그러나 그는 다분히 겸손하게도(?), 이런 소설체의 형식을 빌어 픽션처럼 그 중차대했던, 지금도
여전히 한반도 전역을 정치 이상의 무게로 짓누르는 그 사건을 묘파하고 있다. 이는 일단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논쟁의 중심에
섣부른 자극을 주어, 비생산적인 대립으로 분위기가 악화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라든가, 정치적 중립성을 끝까지 유지하고 싶은
기자로서의 소명 의식이 다분히 작용했을 줄 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도대체 이 작은 땅덩어리(정확하게는 발생 장소야 바다
속이었지만)에서, 뭐가 이리도 복잡한 진상을 지닌 미스테리적 사건이 이처럼이나 미묘한 시기에 터질 수 있는지, 특종을 한 기자
자신도 대담한 접근이 꺼려질 만큼, 그 실상의 인식이 부담스럽게 다가온 이유도 있을 것이다.
부대끼며 사는
동시대인들의 사연과 갈등이 너무도 꼬이고 꼬여, 사고가 터져도 대체 그 발생 주체, 책임 소재가 누구인지도 모를 만한 사고만
터지는 것일까? 대참사의 원인을 구명하기에 앞서, 먼저 비틀리고 왜곡된 시선과 마음으로 세상을 오염시켜 온 우리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는 하늘의 경고이기라도 한 것일까? 섬뜩한 진실보다 더 두려운 것은 추악한 우리의 마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