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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 디자인) ㅣ 코너스톤 착한 고전 시리즈 11
루이스 캐럴 지음, 존 테니얼 그림, 공민희 옮김, 양윤정 해설 / 코너스톤 / 2025년 4월
평점 :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을 쓰고 본명은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이었던 19세기 옥스포드 수학과 교수는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동화로 더 유명합니다. 사실 이 작품은 놀라운 상상력이 담긴 동화로 읽어도 매력적이지만, 영어를 좀 알고 원서로 읽으면 그 기묘한 언어 유희 때문에 더욱 재미있습니다. 이 오리지널 초판본은 본문 중에 영단어 원어의 이해가 필요한 대목에서는 일일이 주석을 달았기 때문에 독자가 부담 없이, 혹은 억지로 납득하고 넘어가는 척 할 필요 없이, 지적인 쾌감을 느껴 가며 읽을 수 있습니다. 또 초판본의 존 테니얼 삽화들이 그대로 실려 있어서 원작의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납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영어를 못 알아듣는 걸 보니 정복왕 윌리엄이랑 같이 온 프랑스 생쥐가 분명해(p32)." 19세기에 쓰인 이 작품 기준, 노르망디 공 기욤의 브리튼 섬 상륙은 1066년이니 무려 800년 전입니다. 앨리스다운 천진난만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은 페이지 하단 각주(역주)에도 나옵니다. 재미있는 건, 도지슨 본인도 "앨리스는 역사 지식이 부족하여..."라며 독자의 양해를 구한다는 사실입니다. p58을 보면 빌 더 리저드(도마뱀)가 굴뚝으로 내려가려는 그림이 나오는데 굉장히 사실적인지라 좀 징그럽기도 합니다. 저는 1997년 영화 <아나콘다>에서 마지막에 괴물이 긴 굴뚝으로 치솟았다가 폭파되는 장면이 혹시 여기서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생각도 해 봤습니다.
p86을 보면 그 유명한 "웃고있는 체셔 고양이(smiling cheshire cat)"가 나옵니다. 바로 다음 페이지에는 앨리스가 지구 자전축(axis of rotation) 이야기를 하는데 공작 부인이 잘못 알아듣고 도끼들(axes)로 말을 받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있는데 이 역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하면 바로 떠오르는 유명한 피처죠. p46을 보면 앨리스도 약간 말귀가 어두운 건 마찬가지라서 생쥐가 신경질적으로 Not!이라고 대꾸한 걸, 혼자서 매듭(knot)으로 착각하여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합니다.
공작부인은 플라밍고의 성질에 대해 혼자서 잘 안다고 착각하지만(p132) 사실은 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물 수도 있죠(He might bite)."라고 (조심스럽게) 답하는 앨리스한테 "겨자나 플라밍고나 둘 다bite하다"는 유명한 대꾸를 합니다. bite는 완전자동사(1형식)인데, 맛이 얼얼하다(영어에서는 이게 동사입니다)라는 뜻, 문다는 뜻이 따로 있음을 이용한 언어유희(pun)입니다. 또 p138에는 tortoise(땅거북)와 taught us의 발음이 비슷한 걸 이용한 말장난도 나오는데 각주(역주)에도 그렇게 설명이 되어서 좋았습니다. p139의 가짜거북이(Mock Turtle)의 그림이 매우 사실적이라서 또 흥미롭습니다. 사실 "가짜 거북이"가 대체 뭔가 할 수 있는데, 가짜 거북이 수프라는 게 있었고 거기서 루이스 캐럴이 역성(逆成)해 낸 게 이 캐릭터입니다.
"반짝반짝 작은별"은 의외로 그리 오래되지 않은 노래이며 가사도 작사가가 분명합니다. 그걸 패러디해서 p105에는 "반짝반짝 작은 박쥐"가 나오는데 글쎄 영어 원어로 읽어도(노래불러도) 그리 라임이 잘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p166에 twinkle이란 단어를 이용한 언어 유희가 또 나옵니다. 수업이 왜 lesson이냐? p142에 나오듯이 처음에는 10시간, 다음에는 9시간 하는 식으로 점차 줄어들어서(lessen) 레슨이라는 건데 웃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물고기 대구는 원래 cod라 부르는데 <...앨리스>에는 그 종은 안 나오고 그 비슷한 물고기인 whiting이 나와서(p151) 언어유희의 소재가 됩니다.
"광기와 무질서를 잔뜩 체험하고 내가 누구인지 정체성마저 흔들리다가 귀환한 세상이 그럭저럭 살만하다는 걸 비로소 깨달은 앨리스"라는 양윤정 교수의 설명(p206)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