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수레바퀴 아래서 (오리지널 초판본 고급 양장본) ㅣ 코너스톤 착한 고전 양장본 2
헤르만 헤세 지음, 박지희 옮김, 김욱동 해설 / 코너스톤 / 2025년 4월
평점 :
이렇게 오리지널 초판본 디자인으로 보니 뭔가 고풍스럽기도 하고 신비하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또 독일어 원제목도 상단에 보이는데 Unterm Rad, 생각보다 간단한 어구네요(생각해 보면 당연하지만).저는 이 책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 나이 또래에 고교에 입학하여 처음 배운 독일어 단어가 Fahrrad(자전거)였는데, 저 단어 뒷부분 어근인 Rad가 바로 "바퀴"라는 뜻입니다. 바퀴라고만 하면 무슨 뜻인지 잘 모를 수 있으니까 우리말로는 "수레바퀴"라고, 한스의 불쌍한 인생이 떠오르게 더 구체적으로 풀어 주는 게 보통이죠. unterm Rad는 단축형이며 unter dem Rad로 더 풀어쓸 수 있습니다. 단, 저 기벤라트라는 성씨의 "라트"라는 부분은 -rath입니다(발음은 똑같음).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플라이크, 물론 성실하고 장점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예컨대 p58에서 보듯, 어린 한스에게 "그 목사를 가까이하면 신앙심을 잃을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무엇이 참된 신앙이라는 말입니까? 한스는 더군다나 그리스어를 배우기 위해 목사를 만난다고 했을 뿐입니다. 한스 스스로도 말했듯 최소한 저 목사는 그리스어를 매우 요령 있게 가르치는 유능한 인물입니다. 별반 성공적이지도 못한 자신의 인생에서 뭘 배울 게 있다고 어린 학생에게 저런 무책임한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당대의 기독교가 형식화하고 위선적 모습을 보였다면, 그건 그것대로 비판하면 됩니다. 본인도 신앙이 없으면서 애한테 너의 신앙을 잃을 수 있다니 그야말로 위선이고 거짓말이 아닙니까? 뻔뻔스러운 자기 투사, 자기 모순이라는 말을 들려 주고 싶네요.
(스포일러가 되겠으나) 비인간적이며 기성체제에 기계 부품처럼 봉사하는, 일방적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어린 학생에게 강요하는, 저 목사와 교장을 저는 차라리 두둔하고 싶습니다. 확실히, 나이 들고 나서 책을 읽으니 (작가의 의도와는 또 별개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지는 듯도 합니다. 만약 플라이크 씨가 어린 한스를 괜히 불안하게 하지 않고, 긴 인생에 리스크가 될 수 있는 경솔한 선택으로 이끌 수 있는 저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어린 소년의 죽음이라는 끔찍한 결과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교장과 목사도 한스의 감정, 개별성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었지만, 플라이크라고 달랐겠습니까? 힘만 없었을 뿐 그 역시 자신의 생각을 애한테 일방적으로 주입하려 들었던 건 마찬가지입니다. 한스는 그저 신학교에 진학하여 그 길을 걷는 게, 결국은 무난한 진로 선택 아니었겠습니까?
p123을 보면 고전라틴어 격언 differendum est inter et inter라는 말이 교장의 입을 통해 나옵니다. "직역하면 inter와 inter도 구분해야 한다" 정도인데, 아무리 봐도 같은 단어 inter인데 뭘 어떻게 구분합니까? 그러나 같은 단어도 문맥에 따라 용법이 다를 수 있으니 저 말은 역설 같아도 타당합니다. 교장이 한스더러 "분명 같은 너인데 다르게 보인다"라는 의도로 저 말을 쓴 건 적절한 원용이며 적어도 라틴어 감각이 상당하다는 건 알겠네요. 물론 우리도 입시에서 영어 속담 별의별 말을 다 외우듯(혹은 가르치듯), 들은 풍월로 그냥 기계적으로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p152를 보면 εὐθύς ἐπιγνόντες αὐτὸν περιέδραμον라는 고전 그리스어 문장이 나오는데 책에는 출처가 따로 안 나오지만 이게 기독교 신약 마가복음 6장 54~55절이죠. 한스가 헷갈려한 저 동사 1인칭 단수형은 περιτρέχω인데 아오리스트(일회적 과거) 시제에서 모습이 저렇게 바뀝니다. 접두어 περι-는 잠시 잊고, 어간인 저 τρέχω라는 동사는 고전 그리스어에서 아주 자주 나오는 편입니다. 뭐 공부를 많이 하다 보면 좀 헷갈릴 수도 있는데 한스가 너무 자책하지 말고 좀 자신을 추스리며 다시 일어났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마가복음의 저 대목에도 물 위를 걷는 예수를 "유령"이라며 사람들이 놀라워하는 대목이 (조금 앞에) 있죠. 이 책에서는 p153:20에 저 단어("유령")가 좀 다른 맥락으로 나옵니다.
코너스톤의 깔끔한 번역, 양장본 제본으로 이렇게 다시 읽으니 느낌이 새롭습니다. 범우사루비아문고판으로 고딩 때 읽고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한스 기벤라트가 저보다 더 똑똑하게 보였는데(비록 진학에 실패하고 죽었지만), 지금 보니 어학 재능이 저보다 부족하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