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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이의 봄 ㅣ 책고래아이들 54
민승희 지음, 한담희 그림 / 책고래 / 2025년 5월
평점 :
오월이라는 가상의 어린이가 들려 주는 열여섯 꼭지의 이야기들입니다. 이름은 오월이인데 이야기의 배경은 봄에 한정되지 않고 여름, 가을, 겨울에 다 걸쳐 있습니다. 계절마다 네 꼭지씩 해서 모두 열 여섯 편입니다. 반려견을 데리고 사는 오월이는 아빠가 초등학교 선생님이라고 하네요..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렇게 일단 서평의 처음을 잡고 책을 본격적으로 읽어 내려 갔는데... 어 이거 뭔가 좀 이상하다 싶어서 (개 그림이 너무 많다거나, 애한테 어른들이 너무 심하게 혼을 낸다거나) 다시 꼼꼼히 읽어 보니, 주인공 오월이는 사람이 아니라 개였습니다! 뭐 개도 어린이가 없으라는 법은 없지만 이 동화의 화자는 제 느낌에는 나이도 제법 들어 보였습니다. 아무리 늙은 개라고 해도 사람들은 애 취급을 하기 마련인데, 그렇다고는 해도 몇몇 장면에서는 너무들 뭐라고 하는 것 같아서 좀 불쌍해 보였습니다(오월이가 먼저 잘못한 경우도 있긴 했습니다).
유난히 오월이를 잘 챙겨주는 어린이가 나리초교에는 한 명 있는데 이름이 민이입니다. 이름만 봐서는 모르겠는데 p19의 일러스트를 보니(한담희씨 작품인데, 작년 11월에 신비스러운 느낌의 <별 아저씨>를 제가 리뷰했고 이 책이 이분 솜씨였네요. 그림체가 역시 특유의 그 스타일입니다) 여자애인 것 같습니다. 지금 종이 쳐서 교실에 들어가야 하는데 운동장에서 민이, 오월이 사이에 레이스가 벌어져서 아이들이 창 밖을 보며 소리를 지르고 난리입니다. 쌤이 너무 각박하게 공부만 진행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가끔은 여유를 갖는 게 뭔가 인간다운 분위기네요.
음... 읽다 보니 오월이 얘도 문제가 좀 있네요! p26을 보면 "새 운동화"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봄 파트애서는 이게 마지막 사연입니다. 민이가 새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왔는데 그 냄새가 너무 좋아서 신발장에서 물고 나와 벚나무 밑에 놓아 두었습니다. 그런데 오월이 집 앞에서 아이들이 오월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나길래 가 봤더니, 신발 어쨌냐면서 막 뭐라고들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오월이가 민이 신발 물어가는 걸 보지는 못했는데, 선생님이 오월이 발자국이 남아 있다며 범인(!)을 지목했던 거죠(셜록 홈즈가 따로 없네요).
그런데 아이들이 몰려와서 막 따지자 오월이는 "무슨? 난 그런 거 몰라."라고만 하며 정신을 못 차립니다. 동물에게는 소유권 개념도 없고 뭘 잘했다 잘못했다의 범주가 아예 없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민이가 운다고 하니(신발이 없어졌으니 당연히 그러겠죠) 그게 덜컥 걱정은 됩니다. 이것도 "나는 신발 냄새가 좋아서 물고 왔을 뿐인데 왜 민이가 울지?"처럼 오월이한테는 그저 불가사의할 뿐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뉴욕의 나비가 날갯짓을 했는데 왜 베이징에 폭우가 내리는가? 인간의 하찮은 과학 공식으로는 이를 도저히 알아낼 수 없습니다. 신(혹은 그 비슷한 존재)이 보기에는 그저 우리가 오월이 보듯 볼 밖에요.
여름 파트 마지막 이야기에는 할머니, 그 며느리인 어머니가 다 등장합니다. 할머니 안경이 없어져서 할머니는 오월이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혼 내기 직전이었는데 이불 안에서 이게 나오는 겁니다. 개가 이불 안에 들어간 적은 없으니 할머니 본인이 잘못한 거죠. 뭐 나이가 들면 다 정신이 없어지기 마련이니 개가 이해를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그런데 미안하다며 엄마 몰래 소시지를 갖다 주는 걸 보면 이건 할머니 희생은 아닌가 봅니다. 자기가 잘못해 놓고 며느리 계산으로 미안풀이를 하니 그 노친네 성격 한번 고약하다 싶었습니다. 더군다나 며느리는 이미 사정을 다 짐작하고 "어머니가 잠결에 어디 두신 것 같으니 잘 생각해 보세요."라고까지 미리 말했으니 평소에 애 좀 먹는 편이겠음이 짐작됩니다. 그래도 p40을 보면 차 안에서 토하는 점박이(얘네들은 오월이의 형, 누나들입니다)를 챙기는데 마음이 따뜻한 면도 있습니다.
p68에는 새로운 캐락터로 진석이가 등장합니다. 민이가 오월이를 좋아하니 관심을 뺏긴다 싶어 진석이는 오월이를 미워합니다. 이 책에는 전반부에 배불뚝이 아저씨부터 해서 뚱땡이들이 종종 나오는데 공통점은 오월이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p84를 보면 드디어 엄마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데 건이가 새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순환과 오묘한 생로병사의 이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