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함의 용기 - 나는 수용자 자녀입니다
성민 외 지음 / 비비투(VIVI2)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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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를 보면 "나는 수용자 자녀입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주어는 1인칭 단수이지만 모두 열 분의 젊은이들이 책에서 자신의 사연을 들려 주며,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지 1년이 되는 시점에서 책이 나왔습니다. 그러니 아직 아픈 체험이 남긴 마음의 상처를 완전히 어루만지기 부족한 시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추스려 이런 수기를 기록하여 독자들과 공유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감안히고 책을 읽으면, 책의 제목인 "기억함의 용기"가 무슨 뜻인지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수용자"가 무슨 뜻입니까? 사실 이 단어는 생각보다 뜻이 모호합니다. 고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을 보면 미감아(未感兒)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감염(感染)되지 않은 아이라는 뜻인데, 감염아도 아니고 미감아라니 당사자에게 아무 문제도 없다는 게 말만으로도 증명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은 당시 사회에서 차별의 낙인 중 하나로 통용되었습니다. 병이 있는(주로 한센병)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나 본인은 안전하다는 뜻인데, 애초에 부모에게건 누구로부터건 아무 문제가 없었다면 "미감"이라는 확인 절차도 필요 없었을 테니 그것 자체가 하나의 낙인이 됩니다. 한센병은 개인의 특이체질 문제이며 유전되는 게 아니고 특별히 장기간 고밀도 접촉(상처에다 일부러 한센균을 대량 주입한다거나)이 아닌 이상 전염도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국 사회는 워낙 미개했던 탓에 (다들 똑같은 못난이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못하다 싶은 이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구획하고 차별하기 바빴습니다.

영어에도 inmate라는 말이 있는데 이게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 갇혀 복역하는 사람, 구속되어 구치소에 들어간 미결수(법적으로 아직 무죄 추정), 정신병원에 수용된 환자 등 다양합니다. 일단 자유를 제한당하고 시설에 들어간 이상 그 사람은 문제 있는 사람이다, 이런 선입견은 아직도 어디에나 만연하며 미국의 inmate나 한국어 "수용자"나 여전히 그 불편한 함의는 지니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수용자 본인을 향한 편견도 바람직하지 못한데, 별개의 인격체인 그 자녀에 대한 것이라면 더할 나위도 없습니다. 

어린이에게는 그 부모가 싸우기만 해도 불안감이 엄습해 옵니다. 연주(필명. 현재 물리치료학과 재학 중)씨는 아직 대학생이던 때 양친이 크게 싸웠습니다. 외숙모가 사망했다는 말을 경찰에게서 들었는데, 그럼 어머니의 상황은 현재 어떻다는 건지 당연히 궁금해지겠죠. 경찰 입에서 나온 말은 "사망하셨습니다"였습니다. 여기까지만으로도 아직 어린 여학생이 얼마니 당황스러웠겠습니까? 그런데 잠시 후에 알게 된 진상은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이 리뷰에서는 공연히 다른 분의 불행한 가정사를 자세히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 아직 나이가 어린데, 더 어린 여동생의 일까지 함께 돌봐야 하는 연주님이 앞으로 더 용기를 갖고 자신의 일을 처리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두번째 사연인 연주님 이야기에서도 나오지만 사실 그 양친이 특별히 문제 있는 분들도 아니었습니다. 세번째 기복님의 사연에서도, 원래 그 부친은 무난한 직장을 건실하게 다니던,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업에 실패하고, 거듭된 불운을 거치며 성격이나 정신 건강 상태가 영 이상해져 버린 것입니다. 필자 기복님은 부친이 평소부터 조울증 증세가 있었다고 하지만, 독자인 제 생각에 그 정도는 누구한테나 갑자기 닥칠 수 있는 불운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사업에 크게 실패하고도 평상심을 에써 유지하며 가족들을 (위장 이혼 상태이건 아니건) 잘 돌보는 다른 분들이 정말 대단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가장이 무너졌을 때 자녀들에게 얼마나 큰 재양이 닥치는지 잘 알 수 있는 사연이기도 했습니다.

다원(현 미술학원 원장)님은 부친이 사업에 실패하여 장기간 수감되었습니다. 재벌기업에게는 삼백억이런 돈이 크지 않지만, 중소기업 대표에게는 회사 직원 모두의 생계와 법인의 향후 존속 여부가 달린 문제이기고 합니다. 그녀는 미대생이었고 한참 돈이 많이 소요될 때 최악의 상황에 처한 부친이 원망스럽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 글에서 그녀는 렘브란트의 자화상, 반 고흐의 자화상을 거론하며 어려운 시련이 닥칠수록 자신을 돌아보는 차분한 성찰을 강조하는 어른스러움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열 편의 수기들은 모호한 표현이 없고, 독자가 읽으면 한눈에 이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건지 바로 이해가 될 만큼 술술 읽힙니다. 이는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하신 필자들이 (아직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처지를 빠르게 객관화하고 힘차게 그를 극복하려 든 보람이 아닐따 추측합니다. 또 출판사 샘솟는기쁨에서 공감 가득한 시선으로 문장을 잘 다듬고 더 많은 독자들과 사연을 공유하려는 배려에도 기인했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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