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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본색 - 가려진 진실, 드러난 욕망
양상우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6월
평점 :
이 책의 저자 양상우 전 한겨레 대표이사는 기자 시절에도 묵직한 공익을 실현하는 특종 보도를 많이 하신 분입니다. 또 처음으로 주주배당을 하신 대표이사이기도 한데... 일단 배당이 가능하려면 이익이 얼마라도 나야 합니다. 그런데 창간 이래 수십 년 동안 한겨레는 무슨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고, 주주총회 자체를 유효하게 소집하기도 힘들어서 매번 신문에다 "위임장(이라도) 보내 주세요" 같은 절박한 광고를 내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아무튼 최초의 한국 독립 언론인 한겨레를 이만큼 오게 한, 큰 공적이 있는 분이라는 점에서 존경심이 생기네요.
(*북뉴스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일본의 문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쓴 소설 <나생문(羅生門)>이 원래 있었고, 거장 구로자와 아키라가 이를 바탕으로 연출한 영화가 따로 있습니다. 무엇이 사실이고, 사람마다 다르게 파악하고 내세우며 간직할 수 있는 "진실"은 별개일 수 있다, 영화 <라쇼몽>은 이 점을 우리 관객들에게 절실히 인식시켰다는 점에서도 명작이라고 저자는 강조합니다(p39). 그런데 저자는 여기서, 언론의 사명과 기능이 과연 무엇이며 또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추출하여 독자들에게 들려 줍니다. 그 무엇보다 "라쇼몽 효과"를 절감하는 게 언론인들이라고도 하십니다.
작년(2024)에도 트럼프와 해리스가 대선에서 붙었지만, NYT 같은 친(親) 민주당 매체는 이러이러하게 보도하고, 팍스뉴스 같은 공화당 성향 미디어는 또 다르게 말합니다. 과연 무엇이 팩트이며 또 진실입니까? 어차피 진실은 사람마다 진영마다 개별화하는 게 정상이니(?) 언론은 그냥 스스로 진실이라 여기는 바만 주구장창 보도하면 그걸로 끝일까요? 저자는 이 점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또 스스로 회의하시는 듯도 보입니다. p45에서 언급되는 알자지라는 우리가 911 이후 부쩍 자주 접하게도 된 중동쪽 언론입니다. NYT나 알자지라는 22년 전 미군과 교전한 세력을 insurgents라 불렀지만(알자지라는 그들이 "민간인"이었음도 강조), 팍스는 그저 "이라크인들"이라 보도한 것처럼, 사소해 보이는 명칭 하나에도 가치관이나 프레임이 일일이 담긴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공격할 때 어떤 매체는 병원에 하마스가 잠복해 있었음을 강조하고, 어떤 매체는 무기력하고 무고한 민간인, 환자, 어린이의 피해를 부각합니다.
p85에 나오듯 20세기는 그야말로 매스미디어의 시대였습니다. 1990년의 걸프전도 신생 방송사 CNN이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보도함으로써 전쟁조차도 일종의 리얼리티 쇼가 되었는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매스미디어가 얼마나 큰 영향을 세상에 끼칠 수 있는지 여실히 증명해 보였습니다. p86을 보면 이런 대형 신문의 언론인은 진실에 대한 실질적 공인자(authenticator)로 자리잡았다는 저자의 말씀이 나옵니다. 과거에는 군주나 그의 신임을 받은 고위 관료가 하던 일을 이제 거대 언론 자본이 대신하게 되었던 거죠. 1998년작 <007 네버다이>를 보면 (아마도 루퍼트 머독을 모델로 삼은) 언론재벌이 세계 정세를 배후에서 조작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물론 과장이지만 그시절 거대 미디어의 무서운 힘을 잘 풍자했죠.
p145에 보면 그 유명한 clear and present danger의 원칙이 나옵니다. 이 책 p280의 후주에서 저자가 다시 설명하듯 1919년 美 대법관 올리버 웬델 홈즈가 처음으로 도그마화한 유명한 표현이죠. 본문과 후주에서 모두 저자가 친절히 밝히듯이 존 스튜어트 밀의 harm principle에 기초하여 만들어졌기에 더 연원이 깊은 이 원칙은 (책에는 미처 나오지 않지만) Schenck vs United States 사건 중에 확립된 판례이기도 합니다. 1994년 해리슨 포드의 히트작 <긴급 명령>(동시에, 토머스 해리스 원작 소설)의 원제목이기도 해서 더 흥미롭습니다. 아 물론 요지는, 미국에서 언론의 자유를 제한할 때 이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지난 정부에서 언론 관련 정부부처의 인사(人事)에 문제가 많았음을 p234에서 지적합니다. 또 21세기는 유튜브나 블로그형 포맷의 뉴미디어가 (그 총합으로 볼 때) 레거시 미디어보다 더 큰 영향을 행사하는 중이기도 한데, 실제로 김어준씨 방송이나 우파 채널들이 각자의 진영에 끼치는 힘이 훨씬 큽니다. 저자는 이들을 "신흥 언론인"이라 규정하는데, 이들을 포함하여 레거시 미디어에 새로운 통제(사실상)를 가하는 플랫폼(페북이라든가)의 기능에도 진지한 성찰이 이뤄져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