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이들에게
박상률 지음 / 특별한서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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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률 시인의 산문집입니다. 책 곳곳에 시인의 따스한 시선, 세계관, 독특한 위트가 드러나서 역시 박상률 시인이다 싶었습니다.

(*북뉴스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15를 보면 마크 트웨인과 현진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대목을 읽고 새삼 확인이 된 게, 두 문학가의 시대가 생각보다는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모든 정치인은 개x식이다."라는 그의 논평에 대해 말이 지나치다는 압박이 들어오자 이를 고치겠다며 "어떤 정치인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는 일화가 소개됩니다. 사실 마크 트웨인이 정말로 이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도 제기되지만, 마크 트웨인이 이런 성향의 캐릭터였다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시피합니다. 형식논리상으로는 전칭명제의 부정은 저런 특칭부정이겠습니다만, 실질적으로는 아무 뜻의 차이가 없다는 게 킬포인트이겠습니다.

김수영의 詩 <풀>이 p36에 소게됩니다. 새삼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언제나 착취당하고 버려지지만 민중 만큼 끈끈한 생명력을 지닌 존재도 따로 없다는 메시지가 강렬하면서도 잔잔히 전달됩니다. 한 달 전쯤에 부인 김현경씨가 타계했는데 두 분 나이 차가 6년밖에 나지 않는데도 이렇게 된 것은 워낙 김수영 시인이 요절한 것도 있고 김여사가 특별히 장수하신 까닭도 있습니다. 아무튼 여기서 박 시인이 하고자 하는 말은 "민초(民草)는 힘이 세다!"입니다.

p59에 보면 원로소설가 이문구 선생, 송기숙 선생, 문학평론가 임헌영 선생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문구 선생은 문이당출판사에서 나온 <매월당 김시습>이라는 장편소설이 또 유명합니다. 송기숙 선생은 한겨레신문 초창기에 1면 기명칼럼을 정기적으로 기고하기도 했었죠. 엄혹한 시절 바른 말을 하다 고초를 겪기도 하셨는데 그에 비하면 요즘은 너무 "패션으로" 진보 발언을 일삼는 셀럽들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진정성 없이 화제만 끌어 보려고 과거도 날조해 가며 보여주기식 언동을 값싸게 남발하는 이들 때문에 진보 진영 전체가 욕을 먹거나 건강성을 상실하기도 합니다.  

수필가 이정애 선생의 여전한, 또 순수한 "소녀적 감성(p93)"에 대해 저자는 높이 평가합니다. 그녀가 세상에 대해 표현하는 여러 언어들은 그저 단편적인 감상이 아니라 진지한 공감이어서 가치가 높다고 말합니다. 기혼 여성에게 시가쪽 사람들은 언제나 불편과 의무감 사이의 어느 한 지점에 놓인 존재들입니다. 마냥 정겹다고 하면 위선 같고, 그 반대면 패륜 소리를 듣기 쉽습니다. 혈연 아닌 인척 사이에도 할 도리는 해야 하기 때문에 의무라는 게 반드시 부과되며 사위와 처가 사이도 다를 바 없습니다. 장인장모한테 막하는 사위도 패륜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이정애 씨의 손자는 그 며느리를 (당연히) 엄마라고 부를 텐데, 이런 관계의 반전에서 겪는 정서의 교란 같은 게 선생의 작품에는재미있게, 그리고 솔직하게 표현된 것 같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공간이 설령 농촌이라고 해도 "서리"는 엄연히 범죄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낭만으로 당시를 회상하고, "피해자" 측에서도 딱히 문제 삼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공동체에서 이를 어느 정도 용인한 건 그럴 만한 실용적 이유가 있어서인데, 젊은 수필가 박병률은 이를 많은 작품 속에서 따스하게 구현합니다. 박상률은 그의 작품 세계를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에도 비견합니다. "당숙네 도망가는 깨벗은 닭"의 이미지만 떠올려도 훈훈한 이웃의 정(情)이 느껴집니다.

p155에는 "시(詩)는 시시해서 시다."라는 재미있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일종의 반어, 역설이며, 파블로 네루다나 서정홍은 시(詩)를 그들이 값있게 생을 살아가는 의의, 지향점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우리 독자들이 책을 읽고 문학을 탐독하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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