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현실적이고 다분히 이상적인 저널리즘/리얼리즘 - 진짜 세상을 마주하는 저널리즘의 첫발, 20여 년 기자 경력의 현직 사회부장이 들려주는 저널리즘의 생생한 속사정
김정훈 지음 / 광문각출판미디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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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권위 있는 일간지, 주간 매체 등에 소속된 언론인들의 글은 일단 신뢰하고 읽으며 수용했던 것 같습니다. 황색 저널리즘이라 비판받던 스포츠신문이라고 해도 일단 그 지면에 실린 스포츠 선수들의 동향, 연예인들에 대한 가십은 뭔가 근거가 있어서 저런 기사가 실렸겠거니 일단은 믿었던 듯합니다. 지금은 신문 한두 곳에서 내는 뉴스로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고, 설령 여러 곳에서 같은 보도를 해도 평소에 내가 즐겨 보던 곳에서 뉴스를 내 주지 않으면 일단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독자, 대중도 문제가 있지만 언론인들의 권위, 자질, 책임감도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입니다.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CBS 기독교방송은 1980년대에도 보도기능 일부를 유지하며 그 서슬퍼렇던 시대에 과감하게 정권을 비판하던, 월간 잡지 <말>을 제외하면 가장 진보성향의 매체였습니다. <김현정의 뉴스쇼>의 아주 먼 전신은 <시사자키>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방송은 저러다가 진행자까지 모두 잡혀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던 비판적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저자 김정훈 부장은 현재 이 기독교방송 보도국에 계신 분으로서,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저널리즘 자체의 위기가 운위되는 현실을 진단합니다.

과거에는 캐서린 그레이엄(1917~2001) WP 사주 같은 사람이 방한하면 큰 뉴스가 될 만큼, 언론 기관이나 그 종사자, 오너들의 영향력이 막강했습니다. 지금은 대신문, 지상파 방송국이 소셜미디어나 대형 포털에 쩔쩔 매는 상황이며, 광고주들과의 관계 또한 예전 같지 않습니다. 저자는 권력과 자본 앞에 당당한 언론인이기 위해 기독교방송 입사를 택했다고 하며(p29), CBS가 단순한 종교방송이 아니라 연혁상으로 그런 전통이 있었음은 이 서평 앞부분에서 이미 말했습니다. 한겨레신문이 처음 창간될 때에는 영국의 인디펜던트紙를 참조한 면이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 지금 그 신문을 보면 독립언론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알 수 있습니다.

뉴스의 현저성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p62에 저자의 도식화가 나옵니다. 제아무리 뉴스 가치가 높고 충격적인 아이템이라고 해도 플랫폼이 없다면 대중의 주목을 애초에 못 받습니다. 여기에 시의성이라는 층(layer)가 하나 추가되고, 맨 위에 임팩트라는 단계가 놓임으로써 뉴스란 비로소 대중의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아무런 알맹이 없는 짜깁기 뉴스가 왜 만들어지는가? 플랫폼을 갖지 못했고 취재력이 떨어져 임팩트 있는 뉴스를 못 만들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저 뒤 p228에 양심없는 짜깁기 뉴스에 대한 비판이 또 나옵니다.

"기상천외한 경우의 수를 다 생각해야 한다(p96)." 이번 계엄 사태를 두고 저자가 하는 말입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에는 검은 까마귀 셋을 봤다고 모든 까마귀의 색을 단정할 수 없다고 하고, 그전에 더 유명한 예로 귀납법의 한계를 밝히는 "검은 백조의 발견"이 있기도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내게 모이를 줬던 고마운 손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그 손이 닭의 목을 비튼다는 유명한 비유도 있습니다. 아무리 현장에서 취재를 오래했다고 해도 여태 경험으로 익힌 그 모든 지식, 지혜가 언제나 타당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저널리즘도 산업인 만큼 내 매체를 구독해 주는(구독이라는 단어의 가장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의미입니다) 독자들에게 고마운 줄을 알아야 합니다. 내 독자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태가 터졌을 때 언론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나. 저자는 p134에서 오히려 "위안-동조 저널리즘의 위험한 유혹"에 대해 경계합니다. 언론이란, 본연의 사명과 기능에 충실해야지 독자에게 감정적이고 값싼 영합을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이겠는데, 실제로는 대단히 판단이 어려운 문제이겠습니다.

방송국이다 보니 기자가 따로 있고 또 PD라는 직분이 따로 있습니다. p151을 보면 기자는 새로운 무언가(something new)를 추구하고, PD는 흥미로운 무언가(something Interesting)를 추구한다고도 합니다. 다음 페이지에는 "PD는 기자를 향해 그들만의 이야기에만 빠져있다고, 기자는 PD를 향해 세상을 너무 각색하려 든다도 비판할 수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게 비단 언론사, 방송국만의 사정이 아니라, 세상의 어느 조직, 회사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이치입니다. 각자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때, 나처럼 저 사람도 자신의 일에 진심인지 아닌지가 비로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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