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이후 현대미술
데이비드 홉킨스 지음, 강선아 옮김 / 미진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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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근세 르네상스부터 예술인에게 창작의 자유가 본격 장려된 후 미술의 사조도 여러 번 큰 흐름을 바꾸었으나 최근의 흐름은 너무도 난해하여 일반인이 (창작은 고사하고) 그 감상, 향유에 과연 참여가 가능한지에조차 회의가 느껴지고 있습니다. 이미 20세기 들어 미술은 극도의 추상화 내지 팝아트화의 길을 걸었고, 어떤 분은 "미술이 어려워진 게 아니라 대중이 엘리트화한 결과"라고도 하지만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혼란스러움은 여전합니다. 그럴 때는 정확하고 친절한 안내자의 가르침, 도움이 필요합니다.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데이비드 홉킨스 교수의 이 책은 원래 <옥스포드 미술사 1945-2000>이라는 제목으로 2002년에 초판이 나왔었으며, 그 초판은 매튜 바니의 크리매스터 연작 중 한 이미지를 표지 디자인에 채용했었습니다. 지금 이 2판은 책 본문 p307에 설명이 나오는 것처럼, 헤더 캐실스라는 우리 시대 예술가가 린다 벵글리스라는 페미니스트 조각가에게 바치는 오마주가 표지를 장식합니다.

사실 p307의 설명이 아주 자세하지는 않아서 무슨 뜻인지 모를 독자들도 있을 텐데, 원래 (이 책에 나오는 대로) 1974년 린다 벵글리스가 본인을 모델로 하여 <아트 포럼>誌에 충격적인 작품을 게재한 적 있었습니다. 그걸, 남성 보디빌더이기도 한 헤더 캐실스가 이제는 자신을 직접 모델로 내세워 이렇게 패러디한 것압니다. 저 이미지를 보고 남성이 립스틱을 칠한 모습에 충격 받는 이들도 있겠지만, 2011년의 저 이미지는 오리지널 벵글리스의 50년 전 도발에 비하면 어린이 장난 수준입니다. 린다 벵글리스라고 구글 등에 검색해 보면 그 작품이 나올 것입니다. 이 책 앞표지의 저 다소 기괴한 작품은 그런 맥락을 알아야 감상이 제대로 이뤄집니다.

p11에 홉킨스 교수의 서문이 나옵니다. 왜 1945인가(초판부터 이 책은 주제의 초기점을 1945년으로 잡았습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의 원폭 투하,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 만행 이후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유명한 탄식 등을 거론하며 저자는 1945년 이후 우리는 인간성의 근원에 대한 재고, 문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심각한 불안감을 갖게 되었음을 지적하죠. 예술가들도 야만에의 가담, 자진 공범화의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으려면 창작이고 뭐고 일절 활동을 중단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각자는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직분을 다하는 게 또한 타고난 본성이며 공동체에의 기여요 자아 실현이기도 하겠습니다.

이탈리아는 1943년 바돌리오 장군이 정권을 잡기 전까지 전범국 노릇을 했고, 프랑스는 1940년 단 6주만에 나치에 무릎을 꿇어 세계를 위기로 몰아넣는 앞잡이 구실을 본의 아니게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예술가들은 마르크스 혁명 사상으로 무장하여 기존의 무기력한 시스템을 전복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는데 그 이야기가 p23 이하에 레나토 구투소의 행적과 작품을 분석하며 나옵니다. 책에 보면 "프랑스에서는 원래 공적 의미가 있는 대형 회화 전통이 강한 나라"라는 구절이 있는데, 한국도 오윤, 신학철, 임옥상 같은 작가들이 이 맥락에서 함께 떠오르기도 하죠.

책은 모두 9개의 챕터로 이뤄집니다. 철물점에서 파는 흔한 변기를 갖다놓고 <분수>라며 전시한 마르셀 뒤샹의 혁명 후 현대미술은 완전히 새로운 방향을 틀었는데 다만 그 유명한 오브제는 1917년에 관객들을 만났습니다. 이 책의 제2장에서 뒤샹이 남긴 유산을 집중 분석합니다. p91 이하에서 이른바 누보레알리즘 조류가 설명되는데, 이브 클랭, 다니엘 스포에리 등에게 뒤샹이 끼친 영향을 설명하는 대목이 참 잘 쓰였다는 게 개인적인 제 생각입니다. p180에서 이제는 "오브제의 죽음"을 선언하는 제6장은 독자의 시선을 추상미술 깊숙한 곳으로 조준하게 돕습니다. 추상을 넘어 아예 "개념"으로 이동하라는 건데, 여기서 인용된 다니엘 뷔랑의 사진 작품 <샌드위치>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는 느낌입니다.

제7장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챕터를 보면 특히 p254 패러다임으로서의 설치 파트에 유익한 설명이 많습니다. 설치는 현대 미술에 있어 예술가들이 관객과 소통하는 핵심 수단으로 부각되었는데, 리처드 윌슨, 데이미언 허스트 등의 이름과 사치(Saatchi) 갤러리 등이 중요 주제입니다. p255에 나오는 윌슨의 작품은 사치 갤러리 천장을 찍은 사진에 불과하지만 마치 피아노 건반처럼도 보여 유명합니다. 제9장에서는 뉴 밀레니엄의 새로운 경향을 소개하는데 2판에서 새로 추가된 내용입니다. 젠트리피케이션 관련한 예술 활동으로 주목받은 어셈블이라는 영국의 단체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습니다.

권말에는 연표, 색인 등도 깔끔하게 첨가되어 독자의 편의를 더하는 최고의 안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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