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수호지
시내암 지음, 이상인 엮음, 최정주 그림 / 평단(평단문화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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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4대 기서 중 하나로 꼽히는 수호지의 한 권짜리 에디션입니다. 저도 그렇고 제 또래들은 시내암 원저 <수호전(水滸傳)>을 한국의 난다긴다 하는 문필가들이 옮긴, 길디긴 장편을 밤새워 읽고 성장한 세대입니다. 그런데 어려서는 재미있게 읽었으나, 지금 보면 잔혹한 서술이나 묘사가 간혹 있어, 아무래도 이걸 어린 세대에게 읽히려면 다소의 윤색이나 설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 요즘 청소년들은 공부해야 할 내용이 많은데, 그 긴 장편을 읽어낼 시간이 없으니 이렇게라도 읽고 고전의 압축된 향기, 가치를 맛볼 수 있다면 좋겠지요.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복마전이라든가 108호걸 등 수호지를 전혀 안 읽어 본 사람들도 익숙한 말들이 많은데 이게 다 수호전이라는 고전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하면 놀라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것인데, p18을 보면드디어 구문룡 사진(史進)이 왕진(王進)과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왕진을 보면 노모에게 지극히 효도하는 모습이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데, 이처럼 호걸들은 전통적인 미덕에도 매우 충실합니다.

p176을 보면 급시우송공명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한자관용어구 같은 건 아니고, 송강(宋江)의 별명이고 자(字)입니다. 꼭 필요할 때를 만나서 마침 오는 비가 급시우(及時雨)입니다. 이 기나긴 수호전에서 사실상 주인공이나 마찬가지인 인물이 송강인데,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송강은 키도 작고 모습이 보잘것없습니다(모 연예인 이미지와는 정반대). 그런데도 불구하고 동료들 사이에서 신망, 존경 받는 걸로는 최고입니다. 남자들에게 절로, 저 형님을 위해 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인물이며 우리 독자들도 절로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듭니다. 자가 공명인데 9백 년 전 제갈량과 한자까지 같고, 자로 흔히 쓰이는 이름이므로 딱히 어떤 의미는 없습니다.

대종(戴宗)은 그 별명이 신행태보(神行太保)인데, 편지를 들고 먼 거리를 떠납니다. 주점에서 지쳐 잠든 통에 하필이면 양산박의 주귀가 그를 보게 됩니다(p264). 자칫하면 오해를 사서 큰일날 뻔했으나 다행히도 양산박에서 자초지종을 알고 대종과 함께 좋은 계책을 논의합니다. 어느 조직에건 머리 좋은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며 오용이 내어놓은 작전이 가장 낫긴 했습니다. 그러나 황문병도 보통이 넘는 인물이라서 조작된 문서를 보고 대뜸 수상한 기색을 느끼고 정황을 참작하여 기어이 양산박 쪽의 책략을 꿰뚫어봅니다. 이제 송강과 대종 모두 죽게 생겼습니다.

이 <수호전>에는 개성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하여 남탕이나 마탄가지인 <삼국연의>와는 또다른 재미를 줍니다. p368을 보면 호가장 쪽에서 호성(扈成)이 송강을 찾아와 누이 일장청(一丈靑) 호삼랑의 무례함에 대해 사과합니다. 용모도 예쁜데다 무술도 출중하여 더 관심이 생기는데 마치 KBS 드라마 <태조왕건>에 나오는 견훤의 이복여동생 대주도금 캐릭터와 비슷합니다. 대주도금은 정사 삼국사기에도 나오는 실존인물이지만 드라마에서처럼 그렇게 말을 타고 전장을 누볐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영국영화 <엑스칼리버(1981)>을 보면 기사 어리엔스가 농민 출신 사생아 아서(Arthur)한테 그 권위를 인정 못 하겠다며 끝까지 반항하다가, 아서가 믿을 수 없을 만큼 관대한 태도를 보이자 감격하여 바로 충성을 맹세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p404를 보면 항충(項充), 이곤(李袞)이 송강 앞에 잡혀오는데 꼼짝없이 죽은 줄로 알았던 양인은 뜻밖에 송강이 너그럽게 대하자 엎드려 절을 하며 방탕산의 번서 무리를 모두 귀순시키기까지 합니다. 수호지는 본래 이런 맛에 읽는 것입니다. 물론 송강도 아무한테나 잘해주는 건 아니며 항충 무리가 피치못할 사정으로 도둑떼가 되었음을 꿰뚫어보고 이렇게 한 것입니다. 인간 못된 것한테 잘해줘봐야 나중에 뒤통수맞기나 좋죠.

그림도 많고 평이한 문장으로 쓰였기 때문에 그러잖아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술술 잘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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