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노동자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6
클레르 갈루아 지음, 오명숙 옮김 / 열림원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에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신 클레르 갈루아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이 책은 1989년에 프랑스어로 처음 출간되었으며 한국에도 열림원에서 1999년에 번역되었었습니다. 생전에 저희 모친도 꽤 좋아하셨던 작가라서 이렇게 리커버판으로 보니 마음이 새롭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넌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로 위장한 범죄자야." 빅토르가 크리스틴에게 하는 말(p74)입니다. 크리스틴이 관리하는 어장(ㅋ) 속의 물고기 중 하나가 아쉴인데 빅토르는 아쉴이 크리스탄이 펴 놓은 사랑, 아주 이기적이고 파괴적이며 침투적인 사랑의 덫에 걸려들어 죽기 직전이라며, 비올라 다 감바의 현이 아쉴의 목을 조르기 직전이라고 합니다. 목에 줄이 걸려 이제 매듭만 당기면 사람 목숨이 끝날 판인데도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걸 모릅니다. 중세에는 지금처럼 팔에 받혀 놓고 연주하는 비올라는 다 브라치오, 다리로 받치는 건 다 감바라고 해서 구별했는데, 다 감바 연주를 보면 마치 뒤에서 악기(여자)를 끌어안는 듯한 자세라서 저런 비유가 나온 듯합니다.

p109를 보면 목줄을 한 개를 끌고 다니는 노인 이야가가 나옵니다. "지팡이를 들었으니, 모든 계산은 끝났다!" 호탕한 선언입니다. 우리는 물건의 거래나 사람 사이의 소통에 있어서 뭔가 내가 손해를 본 듯한 찜찜한 마음이 가시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자신의 입장만 고집하기보다,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따져 보면 상대에게도 일정 배려를 해야 하기에 그 선에서 물러나기도 합니다. 살다보면 이런 이치가 전혀 통하지를 않고 빽빽 소리만 질러대는 미성숙하고 어리석은 인간이 있어서 거의 공포감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빅토르는 원래도 그런 타입이었는지 아니면 몸이 아프고부터 어떤 특별한 통찰이 생겼는지, 냉소적이면서도 상대방의 폐부를 찌르는 말을 곧잘 내뱉곤 합니다. 아직도 아첨꾼, 사면발니, 위선자와 동침하고 있냐는 질문, 크리스틴을 비롯해서 저 비방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지는 아무도 못하나 봅니다. 이 질문이 가능한 건 빅토르의 성적 성향이 헤테로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한데, "상대방의 반목을 조장하는 건 모욕과 혜택"이라는 크리스틴의 상황 요약도 그럴싸하게 들립니다

한평생을 속고만 살아온 여자(p143). 세상이라는 게 원래 남자한테만 유리하게 판이 짜인 곳이라서 이 할머니뿐 아니라 누구라도 저런 규정에서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크리스틴은 저 사람한테서 패배주의나 비굴함이 아니라 일종의 오만함을 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세상에 사기 친 게 없기 때문에, 누굴 향해서도 눈 똑바로 쳐들고 나 이런 사람이었다고 일갈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할머니가 바라보는 빅토르는 품행방정(p167)의 대명사이지만 과연 그럴지. 빅토르의 본업은 문학 평론인데 할머니는 그에게 호된 평이 나온 신간은 특히 구입하지 않습니다. 평을 곧이곧대로 믿어서가 아니라(그럴 지적 능력이 없습니다), 빅토르에게 당한(?) 책들과 저자한테 미안해서입니다.

빅토르는 현재 병 때문에 물리적으로도 몸이 아프고, 세상과 화해를 못하는 사람이라서 정신적으로도 피곤한 사람입니다. 그래도 그게 숙명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하겠는데, 저는 이 책의 원제 L'homme de peine가 바로 빅토르의 그런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해석했습니다. 크리스틴은 장례차 운전수(p199)가 그럴싸하게 생겼다고 여겼는지(본래 남자를 좀 많이 좋아하는 스타일입니다. 제 생각에는)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 구태여 말을 건네고 이 과정에서 빅토르를 소재로 삼습니다. 난감한 게, 막상 얘기를 하려고 보니 빅토르에 대해 너무 모릅니다. 살을 붙이고 붙여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이게 소설가의 숙명입니다. 언젠가 그녀가 되어야 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