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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 송정 김복태 자서전
김복태 지음 / 어깨위망원경 / 2025년 3월
평점 :
구두미화, 택시운전 등 어려서부터 안 해 본 일이 없던 김복태 동일운수 회장은 고향이 남원입니다. 큰 돈을 벌어 노년에 고향에다 뜻있는 프로젝트를 벌이며 환원하는 이 흐뭇한 모습을 보면, 사람은 역시 돈을 어떻게 버냐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복태 회장의 사업 연혁을 보면 본인이 운수업을 영위했으면서도 동종 업체를 계속 인수하여 사업의 덩치를 키우는 과정의 연속입니다. 중간에 외환위기도 있었는데, 여튼 사업체의 성장이라는 대세가 끊어진 적은 없습니다. 운수는 현재 버스건 택시건 매우 어려운 상황인데, 긴 세월 동안 이렇게 유지를 해 왔다는 자체가 대단하다는 생각입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77을 보면 나이 어린 청년이 서울이라는 대처(大處), 눈 감고 코베인다는 이 번잡한 도시에 올라와 얼마나 고생했는지에 대한 실감나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나는 그때 택시라는 걸 처음 타 봤다." 이랬던 소년이 지금은 수많은 택시를 차도에 굴리는 회장이 되었으니... 책 곳곳에도 그런 말이 나오지만 김복태 회장이 사업을 한창 키워 나갈 때 한국은 초고도 성장기였습니다. 사업 담판 때문에, 납기 연기 때문에 등등 해서 누군가라도 급하게 어딜 택시 타고 가야 할 때가 많았고, 부지런하고 성실한 청년에게 이는 다시없는, 사업체를 키울 기회가 아니었겠습니까.
p102를 보면 버스에 무임승차를 하다 차장에게 걸려 호되게 뺨을 맞은 이야기를 하십니다. 여기서 차장이라 함은 아마도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안내양이라고 부르던 그 여성 직원들을 가리킴이겠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그 차장이라는 분(대개는 2,30대였겠죠)이 어떤 악의로 그렇게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는 남자와 달리, 특히 젊은 여성의 경우에는 그렇게 가학적이라거나 해서 남을 괴롭히는 자체를 목적으로 뭘 하진 않습니다. 규칙은 규칙이고, 버스 회사에서는 이런 경우 이렇게 하라고 매뉴얼이 아마 정해져 있었을 겁니다(뭐 회장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 ㅋ). 모르긴 해도 그 차장 역시 이제는 고령의 할머니이거나 아마 이 세상 분이 아닐 수 있습니다. 자신이 싸대기를 올려붙인 그 소년이 나중에 택시 회사 회장이 되었다는 걸 알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아무튼 이렇게 해서 소년은 신설동에 내려 이른바 아이스케키라는 것의 장사를 하게 됩니다. 참 신설동이라는 곳은 그때나 지금이나... 화폐 개혁 이전이라 아직 "전"이라는 단위가 쓰일 때인데, 화장실 이용료가 20전이었다고 하시니 무려 그 시절에도 서울은 자본주의 정신으로 철두철미 무장되었던 시절이라고 생각되네요. 그리고 이건 독자로서 개인적인 추측인데, 앞에서도 김 회장께서 양복점 재단사가 비위생적으로 음식을 다뤄 그것 때문에 배탈이 났었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사실 이때는 한국에서 파는 음식은 불량식품 아닌 게 드물었을 겁니다. 그러니 시도때도없이 사람들이 배탈이 나고 화장실 장사가 성업할 밖에요. 아무튼 서울에서 이른바 x표를 팔았다는 말은 저 개인적으로는 처음 들어 봅니다.
p185에는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불법으로 운행증을 위조해 정해진 시간 외에 영업을 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적발되자 누군가는 총대를 메고 동종업자 전부가 잡혀들어가지 않게 희생양이 되어야 했는데 김 회장님이 그 역할을 자처했다는 거죠. 형사들의 주먹이 날아오는 중에도 다른 업자들의 말을 불지 않고 끝까지 버티며 나중에는 "제가 이걸 길에서 샀는데 일단 풀어 주시면 그놈을 잡아오겠습니다"라고 거짓으로 둘러대어 풀려났다는 겁니다. 물론 김회장 자신도 밝히듯이 법을 어긴 게 자랑이라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의 신의를 지키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겁니다. 저는 이 대목이 이 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보였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사람의 도리를 다하며 약속을 지켜나가는 미덕의 가치를 배울 수 있었고, 고도 성장기 한국이라는 나라의 활력과 희망에 대해 엿볼 수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