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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위로가 당신의 위로가 되길 - 치유예술작가협회 12인의 이야기
금선미 외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5년 5월
평점 :
미술작품은 세상을 향해 어떤 종류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의의가 있지만, 자신 혹은 타인의 마음에 난 상처를 어루만지고 낫게 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저는 4년 전에 은옥주 작가님의 <마음이 자라는 심리 육아>라는 책을 읽고 리뷰를 썼는데, 그 책을 보면 아직 어린 영혼이 작품을 보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마음의 어떤 부분이 자라는지 섬세하게 기록되었습니다. 아직 덜 자란 영혼은 그림을 보고 어디로 자랄지를 정하고, 혹시 특정 부위가 엇자라거나 주저앉은 영혼은 다시 바른 자리로 자랄 걸 다짐합니다. 책 p4에 나오듯이, 예술 창작은 사람 마음을 낫게 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치유 기능을 갖습니다.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박건우 작가님의 이야기(p71)는 이 책에 세 편이 실렸습니다. 그 중 <답장은...>을 보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특정 연령대의 의사라고 하면 무조건 존경하는 편인데, 그 나이 또래 분들은 공부도 많이 하고, 의사로서의 윤리관, 직업의식도 대단히 투철한 경우가 많아서입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H란 분은 저자의 친구이며 의사의 아들인데, 그 당시에는 의사가 드물어서 개업의의 소득이 매우 높았고 H 등도 부잣집 아들로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책에 나오지만 박 작가님 말씀에 따르자면 이 H, 또 그 아들들(의사분 손자)은 아주 이상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연을 떠나, 사람은 제 출신 성분이 무엇이건 간에 사회에 나오면 1인분을 해야 하고, 그걸 못하면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주제를 모르고 눈높이만 터무니없이 높은 자는 언젠가 반드시 사기를 치든 뭘 하든 사고를 치게끔 되어 있습니다.
송아미 작가님 이야기 주제 중 하나는 "호구"입니다. 그러고보니 저 박건우 작가님도 그 H란 사람한테 자신이 호구를 잡혔다고 결국 말씀하시는 건데, 어떻게 보면 한국 사람들이 가장 울화통 터져 하는 게 남한테 호구 잡혀서 손해를 본 것입니다. 서양처럼 줄 건 주더라도 평등한 관계를 추구해야지, 괜히 호구를 잡혔다간 나중에 크게 후회할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본인이 그때 일을 생각하면 화가 나서 못견딥니다. 그런데 송아미 작가님은 약간 다른 이야기도 합니다. 나는 혹시 뜻하지 않게 누구를 만만하게 보고 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았던가? 그래서 송작가님 결론은 이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에게 호구가 되자!" 아주 맞는 말입니다.
이소희 작가님은 실제 교육생들을 두고 프로그램을 진행한 이야기를 합니다. p194를 보면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별로 거창한 이야기랄 게 없이 술술 대화가 그냥 풀립니다. "우리 집 앞에 큰 감나무 하나가 있었지." "어 맞아 맞아." 모든 대화라는 게 다 이렇지 않습니까? 한 가지의 공통된 추억만 있어도, 그 사소한 추억과 기억만으로도 아는 사람들끼리는 도대체 말이 끊이질 않습니다. 이게 행복이고 또 이 과정에서 마음이 꽁했던 것도 슬슬 풀리고 개운해지는 것입니다. 치유와 힐링이 별것이겠습니까?
딸을 키운다는 건 특히 그런 이유에서 어머니에게 위안이 되는 듯합니다. p234를 보면 정주영 작가님은 조카 이야길 하시는데 얘도 한때 애였는데 언제 이렇게 커서 애 키우는 걱정을 내게 털어놓는지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성의 마음은 다 비슷한 데가 있지 않습니까. 모성(母性)은 과연 타고나는 것인가 아니면 길러지는 것인가. 어려운 질문이지만 사실 둘 중의 하나로 꼭 결론을 내야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자는 전혀 뜻밖의 이야기로 화제를 트는데, 여성교도소에 갇힌 이들 중 애를 낳아 키우는 경우에 대해 본인이 직접 겪은 바를 말씀하네요. 아무래도 작가님 분야가 분야다 보니 이런 일도 하시게 되나 봅니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삶이 있고 그 나름의 고충이 있습니다. 나만 특별히 고생한다는 피해의식만 떨쳐도 삶이 훨씬 편해진다는 느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