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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지만 서울대는 가고 싶어
박일섭 지음 / 작가의집 / 2025년 3월
평점 :
이 책의 표지를 보고 제가 예전 읽었던 책 중에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란 제목을 단 게 생각났습니다. 떡볶이는 저도 좋아하는 음식이지만, 아무리 떡볶이가 맛있다고 해도 그 메뉴가 주는 효용이라는 게, 고3 수험생이 평소에 원하던 대학에 진학하는 기쁨 만큼 크지는 않을 듯합니다. 이 책을 쓰신 저자께서는 (표지에는 겸손하게 자신을 "의지박약사"라고 소개했지만) 23살의 나이에 서울대 약대에 합격하신, 아주 훌륭한 분입니다. 고3 때에는 지역 명문대인 경북대 공대 전기전자공학부(p104)에 합격하셨었는데, 이 책를 읽어 본 독자들은 알겠지만 아주 어려운 환경에서 거둔 성과이므로 그 역시도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현재 고3인데 공부가 마음처럼 잘 안 되는 학생들, 또는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고민이 많은 이들은 이 책을 읽어 보면 아마 많은 동기 부여가 될 듯합니다. 이 책은 대입 합격 수기를 겸하기도 하므로 수험생들에게 두루 도움이 될 정보도 많이 실려 있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나라에서는 우수한 학생들이 공과대학에 많이 진학할 것을 권하지만, 현실적으로 공대생들에 대한 공동체적 지원이 결코 충분하지 않기에, 자신의 이후 인생이 송두리째 달리다시피한 학부 전공을 그저 사회적 당위성만으로 결정한다는 건 젊은이들에게 쉬운 선택이 아닙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도, 영특한 성품에 강인한 의지를 지닌 어느 젊은 영혼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얼마나 큰 갈등을 겪었는지가 잘 기록되었습니다. 오래 전에 입시를 치른 입장에서, 요즘 세대는 어떤 과정을 겪고 대학에 들어오게 되는지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었던 독서이기도 했습니다. 또,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 해도, 사람의 인성이 근본적으로 훌륭하고 마음에 모난 데가 없으면 이처럼 주변에 사람이 많이 모여든다는 점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친구가 많고, 인생의 고비에서 도와 줄 은인들이 있다는 게 알고보면 다 그 사람 본인의 덕성이 있어서입니다. 반면, 어쩌다 요행으로 제 분에 넘치는 소속을 얻었다 해도, 근본이 어리석고 불성실하며 상급자에게 간사한 충성심만을 보이며 부도덕하게 처세하는 자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는 게 세상사 불변의 이치입니다.
수학 과목은 많은 이들에게 넘지 못할 어떤 벽으로 남습니다. 과거에는 출제 범위가 매우 넓었고, 기교적인 풀이와 복잡한 계산을 거쳐야만 하는 문제가 많이 출제되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께서 졸업한 서울대의 경우, 풀이 과정까지 모두 정확해야 점수가 주어지는 본고사를 따로 실시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100% 오지선다형이나 단답형만 출제되니 (수리논술 전형도 일부 시행되지만) 그보다는 쉬울 듯해도, 대신 킬러 문항이라는 게 또 있다고 하니 요즘이 마냥 쉽다고만도 할 수 없을 듯합니다. 이 책의 p168 이하 같은 곳을 보면, 수학에 약간 약했던 저자께서 처음으로, 제약된 조건들을 모두 만족하며 문제집의 문항들을 모두 풀어내었던 순간이 자랑스럽게 회고됩니다. 사람은 이처럼, 종전의 자신이 넘지 못했던 어떤 허들을 넘어내는 승리의 체험을 통해 더 큰 존재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요즘의 젊은이들이 대체로 다들 그렇습니다만, 저자의 경우도 10대 시절 만화를 좋아하고 게임에 깊이 빠졌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공부에 최적화한 체질이라면 저런 만화, 게임 같은 게 눈에 안 들어올 수도 있지만, 사람인 이상 어떻게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자도 그런 극기(克己)의 과정을 다 겪고 나서 원했던 목표를 이루었고, 종전과는 다른 존재로 거듭나고 성큼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전혀 모르는 어리석고 교활한 천성의 벼락출세자는, 이 저자 같은 훌륭한 분들의 행보를 두고 "뭐 그냥 공부를 좋아하는가 보지"라며 값싼 자기합리화를 시도합니다. 남의 성취를 가볍게 여기는 인간은, 본인이 요행히 속하게 된 조직 안에서도 결코 높은 직위까지 올라갈 수 없습니다. 강한 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잔인하게 구는 그 나쁜 천성이 결국 조직 내 모든 이들에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합니다. 책 곳곳에는 이런저런 시련이 닥쳤을 때, 성경의 영감 가득한 여러 좋은 구절들을 인용하며 자신을 다잡는 계기로 삼는 저자의 지혜로움이 드러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40일 동안 극기하며, 마침내 사탄의 치명적인 유혹을 물리치고 절대자와 합일했던 기사를 읽으며, 저자도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 목표를 이뤄냈던 것입니다. 저자는 간발의 차이로 약학대학을 차석졸업한 쾌거로 이 책을 마무리짓는데, 아마도 자서전 속편을 준비하는 듯합니다. 그 책도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