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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도 좋아하는 비건 한식 대백과 - 시카고에서 차려 낸 엄마의 집밥
조앤 리 몰리나로 지음, 김지연 옮김 / 현익출판 / 2025년 2월
평점 :
한때 그런 말이 있었습니다. "한식(韓食)은 세계화하기 힘들다." 정식에 들어가는 반찬 가짓수가 많고 표준화도 쉽지 않으며 특징적인 맛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라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요 몇 년 들어 세계적으러 뻗어나가는 케이푸드 열풍을 보면 저 말이 얼마나 섣불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기생충>의 성공 후 봉 감독은 청와대 만찬에서 짜파구리 이야기를 꺼내며 대통령 부부와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었는데, 패스트푸드 류야 또 그렇다 치더라도, 전통적인 우리네 음식 역시도 세계 사람들에 어필할 요소가 매우 많았습니다. 심지어, 이 책의 저자인 이선영 변호사(미국)께서는 이렇게 순수 비건식만으로 한식 대백과를 펴내어 NYT 베스트셀러로 바로 선정될 만큼 현지에서 큰 호응을 얻었으니 말입니다.
(*문충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80을 보면 저자인 이 변호사께서도 역시 반찬 가짓수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그 이유에 대해 변호사답게 대단히 논리적으로 서술하시는데, 우선 한식에서는 밥이 식사의 중심이라는 점을 듭니다. 밥은 농경 노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대단히 고열량일 수밖에 없으며, 이 때문에 자잘한 반찬을 다양하게 제공하는 게 기본입니다. 이 책에는 저자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자주 등장하는데, 어머니께서는 본디 북쪽 거주자이셨으나 한국전 발발 후 전라남도 (고흥군) 석봉리로 피난을 오셔서 겨우 1살 때 정착하셨다고 나옵니다. 함평이나 이곳 고흥에서는 조선 후기 이래 구황작물로 고구마가 널리 재배되었고 한국전이라는 난리통 중에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비건 한식이라고 하나 막상 책을 보면 우리한테 너무도 익숙한 메뉴들이 많습니다. p85의 빈대떡, p91의 호박전 등이 그렇습니다. 특히 호박전에 대해 저자께서는 "비빔밥, 샐러드, 또는 그 자체로도 즐겨먹을 수 있는 간단한 건강식이다."라고 말합니다. 하긴 동네 마트에서 언제나 재료를 골라 휘휘 기름을 둘러 부쳐먹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비건식 백과 아니겠습니까. 역시 디테일을 보면 비건 레시피라서 우리가 평소에 해 먹던 방식과는 상당히 차이가 납니다. 일단 물기를 먼저 제거해야 하는데 키친타월로 두드리는 방법을 코칭합니다. 형광색에 가까운 한국산 호박의 색깔부터가 대단히 독특하다고 저자는 평가합니다. 재료로써 비건 버터밀크가 포인트입니다.
조앤 리 몰리나로(Joanne Lee Molinaro)가 저자의 미국식 이름입니다. p163을 보면 어떻게 해서 조앤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 사연이 나옵니다. 부모님 두 분 다 북한 출신이고, 몰리나로는 현재 부군의 성씨를 미국식으로 따른 것입니다. 성씨만 봐도 알 수 있지만 남편은 이탈리아계 인물이며, 이탈리아 음식이 또 얼마나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그쪽 사람들이 식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합니까. 이 책은 음식벡과이기도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저자의 애틋한 사랑을 페이지마다 표현한 수상록 구실도 합니다. 그런 구체적인 사연이 없다면 이 책에 실린 메뉴들이 고유의 풍미를 다소나마 잃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길 만큼 말입니다(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바비큐는 중국어로 燒烤(소고. 샤오카오)라고 하는데, 어느 나라 어느 문명권에서도 이런 타입이 있을 만큼 보편적입니다. 그런데 이 바비큐가 비건과 어울릴까요? 더군다나 버거(burger)인데 이게 한식에서 구현된다고? p217에 이 놀라운(?) 메뉴가 소개되는데 그 비법은 "검은콩"에 있습니다. 저자는 변호사 초년생 시절 버거로 간단히 끼니를 때우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런 비건인이 되고부터는 "육즙 가득한 버거"를 더이상 즐길 수 없게 되었고, 그래서 이 메뉴를 개발했습니다. 호두, 밥, 콩 등이 섞여 반죽화한 후 이걸 패디로 만듭니다. 사진을 보니 정말 먹음직합니다.
p257 이하에는 김치볶음밥이 나옵니다. 저 비주얼만 봐도 사랑스럽습니다. "하루 지난 밥으로 만들면 최상의 맛"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콩 불고기가 들어가긴 하는데 이게 어떤 성격인지는 앞에서 충분히 나왔습니다. 역시 머리가 좋은 분이라서인지 분석적이고 구체적인 인스트럭션이 인상적인 쿠이진(cuisine)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