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로 가는 마지막 기차 책고래마을 58
정임조 지음, 박성은 그림 / 책고래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의 오래된 집들은 기와 지붕을 얹은 형태가 많았습니다. 가난한 농민들이 주로 살던 초가집은 내구성이 약하기에 지금껏 남은 게 많을 수 없습니다. 신라의 고도(古都) 경주도 이런 기와집이 아직 상당수가 전해 오죠. 경주의 으뜸가는 문화재인 다보탑의 돌사자, 석가탑의 돌방석, 황금돼지, 구름종이 날이 밝아오자 서로 말을 나누려 자리에서 일어나 까만 기와지붕 위에 모입니다. 마치 미국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오래된 문화재들이 만나 서로 무슨 말을 나눌지, 또 뭘 하러 갈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책좋사 카페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내일이면 다시 오지 않을 기차." 말만 들어도 뭔가 슬퍼지는 것 같습니다. 백 살 넘은 참나무가 넷에게 표를 팝니다. 현대 한국을 지방 소멸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보통 말합니다. 과거 비교적 인구가 고르게 분포했을 때에는 인프라스트럭처 역시 지방 구석구석에 설치되어 제 기능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수도권에 인구가 편중되다 보니 이용도가 낮은 시설은 운영을 멈춰야 한정된 세수가 효율적으로 쓰인다는 말을 듣습니다. 사람이 자주 안 찾는 지방의 역사(驛舍)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 기차는 가상의 존재는 아니고 실제로 사람들을 실었습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이미 백 년이라는 시간 동안 운행을 했다고까지 합니다. 돌사자는 아이 맞은편에 앉고, 황금돼지는 아기 손을 만집니다. 아마 사람들은 이들이 눈에 안 보이나 봅니다. 열차에 탑승한 분들은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지, 다들 힘이 빠지거나 좌절한 모습들입니다(물론 잘 차려입은 노파 한 사람도 있네요). 구름종 등은 열차에서 내려, 백 년 동안 사람을 실었다 내렸다 한 열차를 그윽한 눈으로 쳐다봅니다. 백 년이라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있었겠냐면서 말입니다. 

톨스토이의 단편집을 보면 사람 가운데 가장 미미한 모습을 하고 우리 곁에 왔던 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나 대천사들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돌사자 등 넷은 아까 탔던 기차에서 "발을 잘 안 씻어 까맣던" 아기가 바로 부처님이었다는 말을 듣고 놀랍니다. 아기의 정체를 뒤늦게 알고도 이 넷은 그저 소리 높여 웃을 뿐입니다. 부처님도 알고보니 장난꾸러기였다면서 말입니다. 사실 우리 같으면 무서워서 벌벌 떨었을 텐데요. 죄 안 짓고 사는 이들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그림을 보면 아이 얼굴 뒤에 후광이 붙었는데 그림을 유심히 봤다면 벌써 눈치를 챘을 것입니다. 

밤이 다시 경주 고토 일대에 내리기 전 돌사자, 돌방석, 황금돼지, 구름종 들은 다시 제자리로 갑니다. 보통은 이런 존재들이 낮에는 제자리를 지키고 밤에는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설정인데 이 동화책에서는 반대로 되었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마당 귀퉁이 천장에 매달려야 하는 구름종이, 원위치로 돌아가기가 가장 까다로울 것 같습니다. 

다만 이 넷이 아직 해결 못한 문제가 있습니다. 부처님이 저 백년 기차의 마지막 달리던 날 마련하신 선물이 있겠는데 그게 뭐겠냐는 겁니다. 선물은 과연 이런 경우에 마땅히 주어져야 하는 걸까요? 넷은 부처님이 선물을 줄 것이라는 데 의심을 갖지 않습니다. 마치 어린이들 같습니다. 하긴 예수 그리스도도 너희 마음이 어린이들 같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과연 선물이 주어지는데 대지를 하얗게 수놓은 첫눈이었습니다. 열차의 마지막을 첫눈이 기념하게 한 게 과연 부처님답습니다. 1980년대 한국 락그룹 중 들국화가 있었다고 하는데, 고 조덕환씨가 만들고 부른 "세계로 가는 기차"를 들어 보면 "그러나 이젠~ 떠나가야 하는 길 위에 서서"에서 경상도 사투리가 섞여 "그르나"처럼 들리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동화책의 부처님도 뭔가 촌사람처럼 구수한 데가 있어 좋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