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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아 우라 - 청년 안중근의 꿈
박삼중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12월
평점 :
TV 셀럽으로도 예전부터 유명하셨던 박삼중 스님이 쓰신 책입니다. 마침 몇 주 전 안중근 의사를 소재로 삼은 영화 <하얼빈>이 개봉되기도 했기에 우리 독자들이 더욱 뜻깊게 읽을 수 있습니다. 제목인 "코레아 우라"는 안 의사께서 일본, 러시아 현지 군경에 체포되기 직전 외쳤다는 러시아어(p146)로서 "한국 만세" 정도의 뜻입니다(러시아군 특유의 교의[?] "우라 돌격"이란 말도 있으니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단어입니다). 책은 10년 전에 초판이 나왔기에 이미 읽으신 분들도 있겠고, 지금 이 책은 개정판입니다. 삼중 스님은 작년(2024) 9월에 입적하셨습니다. 단 "카레야 우라"가 더 정확한 말이며, 안 의사께서는 에스페란토를 구사한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책좋사 카페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책 1부는 박삼중 스님 본인의 이야기입니다. 1인칭으로 어린 시절 많이 어려웠던 환경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그시절 어르신들의 삶이 이처럼이나 힘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이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왜경(倭警)들의 무지막지하고 잔인한 행태가 특히 p38 이하에 그대로 나오는데, "대일본제국에 대항하는 자들에게 자금을 대어주는 집안에 시집을 왔다는 건, 당신 역시도 똑같은 생각을 갖고 산다는 뜻 아닌가?" 이런 억지를 쓰며 힘 없는 여인을 잡아다놓고 사흘 밤낮을 두고 고문했다고 합니다.
남편을 잃고 의지할 데 없는 여인에게 정신적 강박을 가했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이기를 포기한 악질임을 자인하는 것이며, 그 심지가 굳던 분도 이 일을 겪은 후 뭔가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사람마냥 변했다는 게 아들 삼중 스님의 회고입니다. 사기꾼 범죄자들도 이와 같아서, 믿던 이에게 사기를 당하고 나면 사람이 넋이 나가게 됩니다. 이렇게 혼이 나간 사람한테, 좋은 먹잇감이었다 싶어 같은 수법으로 또다시 접근하는 악종도 있습니다. 부처님도 돌아앉을 만큼 구제불능입니다.
p54 이하를 보면 소년 박삼중은 어려운 형편을 감당못하고 대처(大處)인 대구로 향합니다. 이 과정에서 생계에 도움을 받으려고 피를 팔 생각까지 하는데 너무나도 비참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도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저기 들꽃이 나를 부르네. 이제는 가야겠어.(p64)." 삼중 스님이 p68에서 하시는 말씀을 보면 당신의 이름 앞에 항상 "사형수들의 대부"라는 칭호가 따라다녔다고 하십니다. 1967년 대구 보현사에서 포교 담당을 하실 때, 교도소에서 스님은 "머리가 빡빡이고, 옷이 칙칙하며, 죄 짓고 사는 인간이란 점에서 여러분과 나는 같습니다."라고 죄수들 앞에서 말했다고 나옵니다.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책 서문에서 삼중 스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안중근 의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우리들은 해방된 조국에서 편안히 잘 사는데 이게 다 독립 투사들이 애 쓰신 덕분입니다. 그렇다면 독립 운동가들의 행적과 그 정신에 대해 마땅히 배우고 익히며 마음에 새길 의무가 있습니다. 삼중 스님께서 많은 노력을 들여 안 의사에 대한 자료를 찾아 나서고 정리하신 것도, 안 의사가 이토를 격살하고 일제에 의해 수감되어 짧지 않은 시간을 옥에서 보내며 남긴 기록물들 때문이었습니다. 일제는 의사, 지사들을 무수히 투옥하고 형장의 이슬로 보냈는데, 해방 후 한국의 사법당국이 그와 같다고야 할 수 없지만, 억울하게 잡혀와 남의 누명을 쓴 수인(囚人)들이 많았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아니겠습니까.
p91 이하에는 삼중 스님이 정리하신 다양한 흑백사진들이 나옵니다. 탄두, 브라우닝 권총, 안 의사가 갇혔던 여순 감옥 등이 보입니다. 글로만 이토 사살 의거를 접하다가, 이렇게 살벌한 형태의 총기, 탄환 등을 보니 의사의 결기와 집념이 얼마나 농도 짙은 것이었는지 조금이라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p148을 보면 러시아 검사(당시 만주에서 러시아가 부분적으로 형사 관할권이 있었습니다. 책에 헌병 분파소라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가 안 의사에게 공초하길 가담자는 누구이며 얼마나 되는가라고 합니다. 안 의사의 대답은 "대한 동포 이천만"이었습니다. 인격적으로도 훌륭하고 학식도 높았던 안 의사는 이처럼 말씀 한 마디에도 천근만근의 무게와 열정, 통찰이 담겼습니다. 2부는 안의사가 1인칭으로 말하는 소설 형식입니다.
p184 이하에 안 의사가 법정에서 설파한 그 유명한 최후 진술이 나옵니다. 이 연설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변호사와 청중이 모두 감복했으며 그가 남긴 책 <동양 평화론>은 아직까지도 인구에 회자됩니다. 삼중 스님이 새로 발굴한 여러 자료가 포함되어 더욱 가치있는 책이며 소설처럼 재미있게도 읽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