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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비밀 - 전능자의 말씀이 삶 가운데 그대로
Paster Joshua Kim 지음 / 경외 / 2024년 12월
평점 :
현대인은 그저 좋은 음식을 먹고 스트레스만 피하면 무병장수할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호조건에도 불구하고 나쁜 병을 얻는 이들이 많으며, 아마도 뭔가 그 영혼에 본질적인 무엇이 결핍된 소이일 수 있습니다. 그 결핍의 가장 밑바닥에 돈(에 대한 욕심)이 자리할지 모른다고 저자는 말씀합니다. 돈에 대한 집착을 놓지 않는 이상 사람은 불안과 욕망에서 헤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Joshua Kim 목사는, 돈은 무슨 사랑을 보낼 대상이 아니라, 이를 다스리고 지배해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합니다.
(*북유럽 카페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믿음의 시조로 히브리와 아랍 모두로부터 존숭받는 아브람(아브라함의 전 이름) 역시도 처음부터 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건 아니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아내 사래를 빼앗길 뻔한 것도 결국은 믿음이 부족해서였으며, 이런 잘못된 사건의 진행에 신이 직접 개입하여 일을 바로잡은 것도, 물론 감사한 일이긴 하나 아브람 입장에서는 스스로 부끄러워했어야 마땅할 수 있습니다. 직접 간섭(p86)했다는 게 섭리에 여간 폐를 끼치는 게 아니기 때문이며, 동물이나 물건이 아닌 이상 사람은 스스로의 착한 마음으로 얼마든지 바른 길을 갈 수 있다는 게 창조주의 위대한 예정이니 말입니다.
흔히 성도(聖徒)라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많은 경우 매우 경솔하게 나오거나, 기복(祈福)의 불순한 동기에서 마치 싸구려 부적이나 붙이듯 발설되는 것은 아닐까요? 말을 함부로 하거나 미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이라면 성도라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자는 p102에서 대체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고까지 말씀합니다. 다만 고린도전서를 보면 남에게 유익을 주면서 그들도 구원의 길로 이끄는 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나의 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p155를 보면, "내가 먼저 진리에 순종을 해야 영혼이 깨끗해지고 거짓 없이 형제를 사랑하게 된다"고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한 의미를 새겨 봐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을 보면 빛의 자녀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p174에서 저자는 현재 한국 교회가 맞은 위기가, 결국은 스스로 빛의 자녀 되기를 일부 게을리한 잘못이 없다고 어찌 강변할 수 있겠냐며 성도들의 맹성을 촉구합니다. 빛의 자녀란 무엇입니까? 신앙 생활만 열심히 행한다고 빛의 자녀를 칭할 수 있을까요? Joshua Kim 목사께서는 그렇지 않다고 하시며, 착함, 의로움, 진실함을 그 열매로 가져야 감히 빛의 자녀를 논할 수 있다는 결론입니다. 이 모두는 성도가 스스로 주님 안에 머무르려 들어야 하며, 주 밖에서는 어떤 길도 찾을 수 없고 또 존재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성탄절은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날로 알려졌고 한국의 많은 교회들도 그리 기념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성경을 잘 읽어 보면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인 주"라고 정확히 나오는데도 많은 교회들이 이 의미를정확히 모른다고 지적합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 주가 필요하고 나아가 성삼위 주가 나를 돕는 분이 되어야 하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p237)" Joshua Kim 목사님의 말씀입니다. Apostle Paul의 말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린도전서)"는 기실 날마다 새로워짐을 강조하는 의도이니 얼마나 역설적입니까?
빛이 된 하나님 자녀로 사는 길은 결코 녹록지 않습니다. 인스탄트 식품처럼 간편하게(p130) 주님의 말씀을 섭취하고 편할대로 왜곡하여 해석하는 길은 일견 넓어 보이지만 지옥으로 통하는 죽음의 행로일 수 있습니다. 로마서에 따르면 만물은 주로부터 나올 뿐입니다(p234). 내가 광야에 있더라도 언제든 주님의 품 안에 든다는 확신이 있다면(p149) 그 사람은 이미 천국에 한 발을 들인 것이나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은 두 마음을 한 마음으로 바꾸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p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