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시선
이재성 지음 / 성안당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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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시인은 2005년생이니 이 시집을 출간한 작년에 열아홉살이었습니다. 그는 고3때까지 야구 선수로 활약하다가 재작년부터 소셜미디어를 통해 시를 발표하며 사람들(=독자들)과 소통했다고 하니 우리가 SNS를 마냥 나쁘게 볼 것도 아닙니다. 소셜미디어가 아니었으면 우리가 이런 유망한 시인을 미처 만나지 못하지 않았겠습니까. 물론 성안당(보통 자격증 교재 만드는 곳으로 알았는데) 같은 출판사에서 만든 책이 시인과 독자를 이어주는 다리 구실을 했지만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물이란 분자는 사물의 색을 더 진하게 만들어 줍니다. 시인은 p34의 <비>에서 자연은, 혹은 모든 물체들은 비를 피하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이들도 비 때문에 몸 혹은 마음이 아플 수 있지만, 내 타고난 빛깔이비로 인해 더 선명해진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여기서 제가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비를 맞았을 때 그 맞는 입장에서 "아플" 수 있다는 그 상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밖에서 비가 후두둑 떨어지면 피하기 바쁩니다. 당연히 옷이라든가 머리, 혹은 휴대한 물건이 젖을까봐인데, 시인은 그것도 다 비 맞는 게 아파서라고 해석하는 거죠. 그러나 자연도 사물도 의연히 맞으며 상처를 낫우려 들듯, 사람도 비를 구태여 피하지 말고 그냥 맞으면서 내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고 시인은 (나이도 어리면서) 우리에게 충고합니다. 

해외 대도시에 놀러가면 우리는 미술관에 꼭 들러서 사진도 찍고 인스타에 올리려고 아주 발버둥을 칩니다. 그런데 p40의 <미술관>이란 작품에서, 시인은 바로 우리 근처에 미술관이 있다고 합니다. 입장료도 없고 전시품도 더 그럴싸한데 우리는 근처에 그게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칩니다. 그건 바로 하늘입니다. 이 미술관은 전시품도 매일매일 바뀝니다(눈이 어두워서 그게 바뀌는 줄 모를 뿐). 미술관은 휴무일이라는 게 있으나 하늘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하늘을 미술관으로 바로 볼 줄 아는 그 맑은 눈이 어린 나이에만 있을 수 있다는 게 부럽습니다. 

수평선이 하나의 프레임이라고 생각해 본 적 있습니까? p50의 <수평선>을 보면 푸른 하늘 아래 푸른 바다, 하얀 구름 아래 하얀 갈매기, 노란 태양 아래 노란 등불처럼, 수평선을 대칭축 삼아 양편에 비슷한 빛깔이 전개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는 이치를, 시인은 "화가가 그림을 너무 크게 그려 수평선으로 나누어 놓았다"고 설명합니다. 너무 큰 그림은 좁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지 않습니까. 바로 맞은편 페이지에는 출퇴근도 일정한, 피곤해서 흐느적거리는 노을에 대해 안쓰러움을 표현합니다. 이처럼 시인의 가장 큰 재주는 바로 그 보는 시선의 독창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구라는 공간은 진공이 아니고 중간에 매질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래서 열(熱)의 전도 현상이라는 게 벌어지는데 시인은 p60의 <늦가을의 너>에서 날씨가 추워짐에 따라 덩달아 자신에게 차가워진 "너"에 대해 아쉬운 마음을 표현합니다. 공기가 차가워진 건 알겠는데 왜 너까지 차가워지냐는 겁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않냐고 하는데, 본래 차가워진 공기는 사람한테서도 열기를 뺏어가게 마련이니 당연하게 여기...라는 건 아주 무책임한 조언이겠죠. 사람은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따스해질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시인도 알고 우리도 다 압니다. p61의 <시의 계절>에서 시인은 솔로(그래서 헤어졌나 보죠?)인 신세를 가볍게 탄식하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의 건강한 남자는 누구나 병역 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p86의 <신체검사>에서 시인은 신검 결과가 1급이라면서(야구 선수 출신인데 오죽할까요?) 마치 투쁠 등급을 받은 한우가 이렇지 않겠냐는 말에 빵터졌습니다. 그 솔직한 느낌 표현에 대한민국 모든 남성들이 공감할 수 있겠는데, 이처럼 이 시집은 나이 어린 시인의 꾸밈없고 기교없는 작품들 때문에 독자의 마음까지 뿌듯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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