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니블렛의 신냉전 - 힘의 대이동, 미국이 전부는 아니다
로빈 니블렛 지음, 조민호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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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 내내 이어졌던 냉전에서, 소련과 미국은 경제적으로 상호 의존하는 부분이 적었습니다. 물론 소련도 자국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국제 시장에다 내다팔아 적지않은 이익을 거두었지만, 소련이 글로벌 경제 체제에 깊숙이 참여했다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21세기인 지금 양대 강국이라 할 미국과 중국은 서로 긴밀히 엮여 있습니다. 당장 중국으로부터의 모든 수입을 중단하거나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시민들이 물가 상승으로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보듯 무역 장벽으로 인한 타격은 미국보다 중국이 더 심하게 입는 중입니다만 고립주의가 심화되면 모두가 피해를 봅니다. 올해 63세인 저자 로빈 니블렛 경(卿)도 p44에서, 미국이 중국과 이처럼 밀접히 기댄다는 상황 자체가 무척 역설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은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중국과의 크고작은 연결지점들을 잘라내려 하는 중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소련은 (구) 냉전 기간 당시 총GDP 기준 세계 3위 정도(1990년 기준. 이 책 p80)의 위상이었습니다. 글로벌 무역 체제에 참여하지 않고도 저 정도의 생산력을 유지했었으니 세계를 반분하여 지배했다는 대국 답습니다. 현재 러시아는 중앙아시아가 다 떨어져 나갔다고는 하나 여전히 광대한 자원과 영토를 보유했는데도 이탈리아, 캐나다보다도 못한 10위 정도의 능력입니다. 이미 정권을 잡은 지 26년이 흘렀는데도, 저렇게 국위가 쪼그라든 채 회복이 안 되는 책임을 구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 고르바초프에게 돌릴 만큼 집권자 푸틴은 무책임하다고 저자는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저자는 러시아 인접국들로 하여금 마음을 열게 하고 구태여 서유럽, 미국의 세력권 안에 들 필요를 못 느끼게 하는 쪽으로 외교 정책을 전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난세기보다 더 두터워진 철의 장막(p86)"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임기 2연임 후 물러나는 관례를 벗어나겠다고 진즉부터 밝힌 시진핑은 스스로의 "사상"을 국부 마오쩌둥의 그것과 같은 반열에 둠으로써 "중국의 법치란 곧 시진핑의 통치를 의미(p103)"하게 되었다고 저자는 진단합니다. 중국과 구 소련은 대외적으로 알려진 바와는 달리 1960년부터 내내 심각한 분쟁 상태였었음이 외교기밀문서 공개 등을 통해 밝혀졌는데, 그런 과거와는 달리 두 나라는 시진핑 - 푸틴 두 권력자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토대로 밀착 협력 중인 게 작금의 현실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서유럽은 종래의 안이한 태도를 버리고 러시아에 대한 경계심을 바짝 곤두세우는데(특히, 친러 정책으로 당장은 편했으나 장기적으로 독일 경제를 망쳤다며 메르켈에 대한 독일 내의 비판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그 분위기를 요약하면 "20세기에 그토록 어렵게 얻은 민주주의를 21세기에 빼앗길 수는 없다(p114)"입니다. 

호주 북부에는 노던 테리터리라고, 광대한 면적의 미개발 행정구역이 있는데 주 자치정부가 다윈 시(호주 최북단이라고 해도 됩니다)의 어느 항구를 중국에다 99년 임대하는 계약까지 2015년에 체결했었다고 합니다(p143). 마치 19세기 서세동점기에 홍콩, 칭타오 등 중국 곳곳을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에 조차해 줬던 청나라의 망신을 설욕이라도 하려는 듯한 움직임이었습니다(사실, 영토 중의 상당 면적이라기보다 항구 하나의 임대차이므로 제 생각에는 호주 실정에서 이게 아주 큰 의미까지를 둘 것까진 아닙니다). 그러던 게 중국 간첩 적발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워졌고, 2023년 신 정부가 들어서서 국방 정책 전면 쇄신을 직접 밝힘으로써 친미 선회가 더 뚜렷해진 게 호주 정가의 현재 상태입니다. 책에서는 "하나가 된 두 반구(半球)"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때의 두 반구란 태평양을 사이에 둔 동반구, 서반구를 가리킨다고 생각되네요. 

저자의 견해에 따르면 2015년까지만 해도 청정에너지 전환 움직임이 전지구적 스케일에서 비교적 원활하게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이때는 세계가 신 냉전으로 세력이 재편되는 긴장보다는 테러의 위협에 공동대처하는 기조가 훨씬 강했고 따라서 국제 협력도 지금보다 훨씬 잘 이뤄지는 분위기였다는 게 저자의 회고입니다(p176 이하). 이러던 방향성이 깨어진 건 탄소 감축 목표가 불균등하게 이행되어서라는데, 중국은 그간 배출량이 크게 늘어난 반면, 미국은 소폭이나마 감소했고, 같은 개발도상국인 인도마저도 그리 큰 폭으로 증가하지는 않았다고 이 책에서 인용한 통계에 나옵니다. 중국은 저렇게 대놓고 어기는데 왜 우리만 지켜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높아진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또 아프리카 등 후진국에다 그린 에너지 전환 동참을 요구하기가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다는 점도 드는데 이들 나라로부터의 에너지 자원 수입을 서구 세계가 중단하면 당장 누가 피해를 보겠냐고 묻습니다. 

저자는 지금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에 가하는 경제 제재를, 마치 1930년대부터 일본에 적용했던 이른바 ABCD 포위망에 비견할 만하다고 지적합니다. 결국 일본은 이런 옥죄임을 참지 못하고 1941년 12월에진주만을 기습함으로써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지금 러-중 연대와 미국 사이에 일어나는 긴장은 사태의 전부가 아니라 앞으로 벌어질 거대한 파국의 서막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불길한 예견입니다. 그럼 충돌은 피할 수 없는가? 전 호주 총리 케빈 러드는 "관리되는 전략적 경쟁(p240)"이 중요하다고 말했으며, 저자는 설령 2024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어 미국이 더욱 자국 중심으로 치닫더라도(12월 현재 이는 기정사실이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글로벌 자유주의, 민주주의 가치 동맹을 더욱 강화하는 게 시대적 사명이지, 결코 파국으로 내닫는 선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힘주어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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