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좀 그만 버려라
강철수 지음 / 행복에너지 / 202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가 강철수 선생님은 1990년대에 <발바리의 추억>으로 많은 팬을 모았던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올해 여든의 연세이십니다)는 인기 만화만 창작하셨던 게 아니라 영화나 TV 시나리오도 집필하신 다재다능한 문예인입니다. 저는 아주 예전에 MBC의 한 단막극을 케이블 채널을 통해 재방송으로 본 적 있는데, 강철수 선생님이 각본을 쓴 에피소드가 몇 개 보여서 처음에는 동명이인인 줄 알았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은 만화건 드라마건 특유의 명랑한 분위기, 삶에 대한 긍정적이고 힘찬 마음가짐, 생명에 대한 따뜻한 시선 등이 주제로 표현되었기에, 독자나 시청자의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요즘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 가구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개를 키우는 건 좋지만 키우다가 싫증이 나든가 하면 무정하게도 개를 도중에 버리는 게 문제입니다. 여태 돌봄을 받다가 갑자기 버림을 받으면 개 혼자서 살아나갈 방법도 막막할 뿐 아니라, 들개로 습성이 변하거나 새끼를 낳든지 하면 사람들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저도 일 마치고 귀가하다가 늦은 밤에 들개를 만나서 진땀을 흘린 적이 몇 달 전에 있었는데, 당국에서 대책도 물론 마련해야 하겠으나 근본적으로는 시민들의 인식부터가 하나하나 개선되어야 합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p50)" 저는 이 시(詩)를 박인환(1926~56)의 작품 <세월이 가면> 중 한 구절로만 알지만, 나이 드신 세대에게는 인기 유행가의 가사 일부이기도 한가 봅니다. 노래로는 과연 어떤 느낌인지 언젠가 인터넷을 검색해서 한번 들어 봐야겠습니다. 이 시가 책 중에 왜 나왔냐 하면, 1인칭 주인공인 유기견이 서울 곳곳을 떠돌다 만난 사람들, 온갖 군상 중에 "시인"이 한 분 있어서, 그가 즐겨 암송하는 구절이 바로 저곳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창작하는 건 잘 못 하면서 다른 시인의 작품 읽기는 즐겨한다"며 주인공은 비웃습니다만 뭐 어떻습니까. 아름다움을 즐겨찾는 건 우아한 품성의 증명입니다. 

p72에서 유기견 주인공은, 예전에 자신을 돌봐줬던 가정에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이 댁 사모님(세월이 흘러 이제는 오십대가 된)은 자신을 러키라고 자주 불렀는데, 용케도 간만에 둘아온 개를 알아보고 또 그 이름으로 부릅니다. 정작 주인공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도 말입니다. 이 댁 아들은 3수까지 하며 대학을 가려 애썼으나 끝내 실패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도피성 유학을 외국으로 떠났는데, 그만 현지의 흑인 여성과 정분이 나서 부모의 뜻과 결정적으로 어긋나게 됩니다. 이 재미있는 소설에는 참 다채로운 인생들이 등장하는데, 한국이란 나라가 은근 인구가 많다 보니 사람들 사는 모습들도 천태만상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인공은 좀 독특한 누군가를 만나게 됩니다. 에아이인지 뭔지 하는 경비견인데, 분명 개처럼 생기기는 했으나 냄새도 나지 않고 뭔가 낌새가 이상합니다. 알고보니 피와 살로 된 생명체가 아니라 기계, 로봇이며 그 머리에는 AI인지 하는 게 들어 있어서 사람 마음도 읽고 시키는대로 척척 수행한다고도 합니다. 주인공은 가뜩이나 사는 게 힘들었는데, 이제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런 정체불명의 괴물과 경쟁까지 해야 한다니 화도 나고 겁도 들며 슬퍼지기까지 합니다. 원 그런 처량한 신세가 어디 개뿐이겠습니까. 직장에서 파리 목숨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개를 버리고 잠이 옵니까? 개를 버려놓고 밥이 넘어갑니까?(p180)" 우리 주인공은 신세가 이렇게 처량하면서도 자신감을 결코 잃지 않습니다. 로봇개가 아무리 세상에서 설쳐대도, 개만큼 매력있고 귀엽고 의리 있는 생명체한테 비기겠냐는 겁니다. 저 절절한 외침에, 우리 독자들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공감이 되죠. 갈수록 사회에서 인간다움이 사라지고 자본의 삭막한 논리만 팽배해지는 가운데, 실수도 많고 병에도 걸리고 언젠가 수명을 다하기 마련인 생명체의 가치는 점점 퇴색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처음부터 우리들 생명체가 주인공이었으며, 전선과 금속 덩이가 절대 우릴 대체할 수 없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기계와 돈에 주인 자리를 내주고 뒷전으로 밀리는 우리 인간들을, 이 유기견이 열렬히 대변하고 옹호하는 듯하여 왠지 우스우면서도 슬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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