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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풍경 컬러링북 - 수채화로 그리는, 2024 한국어린이교육문화연구원 으뜸책 선정
이향우 지음 / 인문산책 / 2024년 11월
평점 :
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문양여행 시리즈를 꾸준히 저술하시고 애독자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해 오신 이향우 선생님의 새 책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긴 그윽한 향취의 문화재가 아무리 주변에 가까이 있어도, 이를 정확히 감상하고 마음으로 오롯이 수용하거나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건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름답고, 고상하고, 품격 있는 대상을 자연스럽게 좋아하며, 그로부터 위안을 얻고 또 닮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궁궐은 옛 사람들이 지닌 최고의 미의식을 건축물 하나에 담고 빚은 유형물이며, 다만 우리들의 눈과 마음이 현대 대중 문화의 말초적 자극에만 길들여져 그 우수함을 제대로 못 알아볼 뿐입니다. 이향우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 그 깨끗한 구도로 찍힌 사진들과 일러스트를 따라가며 절로 안목이 트이는 듯하며, 세상 근심을 잊고 피안의 무릉에 혼자서 쉬는 듯 심신이 정화되는 느낌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번에는 컬러링북입니다. 저도 작년쯤부터 컬러링북 여러 권을 읽고 부족한 솜씨로나마 리뷰를 블로그에 올려 왔는데, 이향우 선생님께서 컬러링북을 내신 걸 보고 "아니?"하는 놀라움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전공이 원래 미술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 신간은 오히려 진즉에 나왔어야 했을 책인 셈입니다. 표지를 보면 어떤 귀여운 캐릭터가 팔레트를 왼손에 들고 열심히 붓질 중인데 아마 이향우 선생님 본인이 모델 아니었을까 생각도 해 봅니다. 7부 바지 아래 양말을 한껏 발목 높이 끌어올린 모습을 보면, 화가의 작업 하는 모범적인 자세가 원래는 이래야 하는가보다 싶습니다(선생님의 실제 모습에 가까울 성싶은 그림은 p5에 있습니다).
여태 선생님의 책들을 읽어 온 독자들이라면 옛 궁궐에 대한 지식이 많이 (자연스럽게) 늘어 있겠지만 그래도 선생님은 혹시 잊을 수 있는 이들을 위해 "궁궐 잡학 지식"을 정성스럽게 책 서두에 써 놓으셨습니다. 잡학이라기보다, 잘 익혀 두면 요긴히 쓸 수 있는 좋은 교양들이며 무엇보다 나 자신의 건강한 정신 소양을 위해 필요한 내용들입니다. 금천교, 석수, 단청 등 우리 눈에 익숙하면서도 막상 아는 바는 별로 없는, 전통 문화의 중요 요소들이며 예술 감상으로 깊이 진입할 수 있게 돕는 주요 단서들입니다. p9에는 전형적인 조선 왕비의 성장(盛裝)한 자태가 나오며 나라를 어머니처럼 돌보았던 중근세 중전의 역할이라는 게 마치 저자의 독자에 대한 살뜰한 배려와도 그 마음씀이 닮았겠습니다.
p16에는 경복궁 집옥재(集玉齋)에 대한 밑그림이 나옵니다. 일반적인 컬러링에서처럼 완전한 백지에 선만 배치된 형식은 아니며, 배색은 옅게나마 이미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제 생각에는 (다소 번거롭더라도) 트레이싱지를 이 책 해당 페이지에다가 대어 한번 모사한 후, 도화지에 대어 윤곽을 다시 옮기고 나서 나만의 그림을 완성하는 식으로 진행해야 할 듯합니다(독자인 제 생각이며, 출판사나 저자의 방침은 다를 수 있습니다. p38에 책의 공식적인 활용 방법이 나옵니다). 어차피 과제가 수채화이기 때문에 책에다가 직접 그린다든가 하는 시도는 불가능합니다. 구태여 책에다 작업하려면 크레용 등의 대안을 써야겠으나 그러면 수채화의 맛이 잘 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p28을 보면 경희궁 숭정문(崇政門)을 주제로 삼은 그림이 나옵니다.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은 역사적으로 정조 임금의 즉위식이 열리기도 했다네요. 명신 다산의 보필을 받으며 애민 정신으로 나라를 다스린 호학 군주의 자질과 마음가짐을 현대의 정치인들이 천만분의 일이라도 본받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p14에는 경복궁 자경전이 주제인데, 이 문양은 그나마 그 반듯반듯한 기하학적 형태를 일반 독자들이 따라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100년도 넘은 수령(樹齡)의 마로니에가 덕수궁 서문에 있는데 p32에 그 예쁜 자태가 그려져 있습니다. 모든 그림 과제에는 왼쪽 하단에 "색칠 포인트"가 명시되었고 선생님의 지시시항에 특히 유념하여 우리 독자들은 채색해야 하겠습니다. 오른쪽 페이지에, 이상적으로 완성된 그림이라면 어떤 모습일지 일종의 답안이 게시되었습니다.
이향우 선생님의 정확하고도 담백하고, 청아한 느낌의 작품들이 p41 이하에 연속으로 나옵니다. 그림이란, 대상을 보고 예술가가 느끼고 해석한 바를 가장 개성적으로 표출하여 독자와 소통하는 공간입니다. 이 책 속의 고요하고 신성한 그림들을 보노라면 몸과 마음이 절로 궁궐을 산책이라도 하는, 아늑하고 평안한 느낌이 깃듭니다. 그냥 눈으로 보기보다, 도화지와 물감을 마련하여 나도 따라해 봐야 독서의 완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