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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1 ㅣ 조선 천재 3부작 3
한승원 지음 / 열림원 / 2024년 11월
평점 :
실학자 정약용의 삶과 철학을 다룬 소설은 많이 나왔었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한승원 선생의 이 <다산>이 결정판이라고 생각합니다. 2008년작이니 그리 오래된 소설도 아니거니와, 선생님이 예전 분이니 문장도 읽기 어렵고 쓰인 단어도 고풍이겠거니 선입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문장 길이도 짧고 술술 읽힙니다 .저는 사실 선생의 1980년대식 스타일 문장이 훨씬 좋았기에 이 대작을 읽고 약간은 실망도 했으나 그래도 최고입니다. 깊이도 가독성도 재미도 모두 달성한 걸작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고인이 된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에서, 실전(失傳)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이 사실은 어느 수도원에 비밀리에 전한다는 가정 하에 흥미진진한 미스테리를 풀어 냅니다. 이 소설에서도 어떤 가상의 현대 화자(혹은, 한승원 선생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가 서두의 액자 밖에서 <다산비결>(토정비결도 아니고)이라는 책이 사실은 있었다는 회고를 꺼냅니다. 그 책이 알고보니 기존의 <경세유표>였다느니, 이제는 태반이 부식된 낡은 언문서라느니 하는 논쟁은 중요치 않습니다. 후손들이 다산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얼마나 바른 정신으로 하루를 살아내는지가 더 본질인 것임을 작품은 내내 19세기 사건들의 재구(再構)를 통해 역설합니다.
p80에는 서울 서부 교외에서 열렸던 향사례(鄕謝禮)를 행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여기서 비용을 대었다고 설정된 김범우는 조선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로 꼽히기도 하는 인물이죠. 다만 조정에 의해 사형을 당한 게 아닌 등 몇 가지 이슈 때문에 아직 성인도 복자도 아닙니다(가경자로 심사 중). 악사들, 기생들도 동원되어 행사를 거들게 하는 게 흥미롭습니다. 물론 여기서 기생은 술 시중이 아니라 기예를 행하는 예술단 역할이지만 말입니다. 이벽 등은 뛰어난 활솜씨로 관중(貫中)을 해 보여 군중(群衆)을 놀라게 하지만, 청년 정약용은 담백하고 솔직한 연설을 통해 사람들을 감탄케 합니다. 그의 말은 개혁을 갈구하는 열정, 민중에의 사랑 등으로 가득하여 청중의 마음을 열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천지는 저절로 된 게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다(p111)." 청년 다산은 이벽의 이 힘있는 설득을 듣고 감명받지만 실은 동아시아의 오랜 理氣論의 원칙에 의해서도 비슷한 설명이 가능하며 다만 천지의 이치에다 天主(혹은 釋尊. p212)라는 이름을 붙이냐 마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조선 과거의 최종 전시(殿試)는 임금이 직접 채점을 보는데 다산의 답안을 보고 정조는 백 년 만에 처음 재상감을 보았다며 감탄합니다. 원래 과거는 미사여구의 나열이 아니라 정치 현안의 해결을 논하는 경세방략을 겨루므로 그 식견이 이미 답안에서도 드러난 것 아니겠습니까. p34에서 소설은 다산의 서거 장면으로 도약하는데(이후 청년기로 다시 돌아옵니다) 죽어서 이미 어둠과 합일한 다산(더 이상 다산도 아니지만)의 독백 대목을 보면 역시 한승원 선생의 소설적 기교가 참 뛰어납니다.
정조 임금 이산(혹은 이성)이나 다산이나 당대의 천재들이므로 대면하여 지혜를 겨루는 대결이 실제로 있었음직하고 상상만으로도 정말 흥미롭습니다. p208 이하에 그 장면이 나오는데 임금은 天, 仁, 无 등을 문제에 꼬았으나 다산은 오래 걸리지 않아 알아냅니다. "저절로"라는 뜻의 그러할 然을 염두에 두고 다산은 문제를 내는데 정조가 맞히긴 했으나 시간을 초과했습니다. 이 글자에 개고기 굽는 사연이 깃들었음을 새삼 (그 글자를 보고) 독자도 수긍하게 됩니다.
유학은 예나 지금이나 체계 내 여성의 취약한 위치 때문에 힘들어하는 면이 있습니다. 18세기 남인 명문가들에서 천주학을 처음 접했을 때 그토록 열광했던 게, 물론 정치적으로 소외된 그들 정파의 딱한 사정도 있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남녀의 평등, 혼인에의 신성한 의의 부여(따라서 아내도 중요 위치 차지) 등이 우리 동아시아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던 청신한 교의였기에 특히 여성들에게 큰 각성과 지지를 이끌어내서였습니다. 이벽이 정약용에게 아담과 하와의 피조를 논할 때 반짝이던 눈빛은, 사람의 깊은 본심에 호소하는 보편 진리만의 강한 설득력에 기대어서였겠습니다. 우리는 경상도라고 하면 몰락 남인의 향토적 기반으로만 아는데, 그래서 p55에 나오듯 노론 수령이 향신을 핍박하는 저런 쟁의가 심심치 않게 발생했던 것입니다. 무슨 안동 김씨 세도라고 하니까 경상도가 선말에 큰 힘이나 쓴 줄 알아도 장동(서울 사대문 안 소재) 김씨들에게 안동은 그저 먼 조상의 발원지일 뿐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p251 이하에는 다산(아명은 귀농이었다고 하네요)의 형 약전이 물고기들과 함께 노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그래서 <자산어보> 같은 명저("현산"이라 읽어야 한다는 입장도 있습니다)를 저술할 큰 깜냥이 벌써 이때부터 엿보였다는 거죠. p266을 보면 맏형 약현은 아주 보수적인 인물로서, 윤지충 사건 등에 대해 크게 분노하는 기색인데 개혁가 다산의 험난한 여정이 벌써 가내에서부터 이렇게 도전을 맞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