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니까 불안해!
채은 지음 / 책고래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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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처럼 사교육이 극성스러운 나라도 없을 것입니다. 저자 채은 작가님은 그 대강의 경력만 봐도 동연령대 어느 여성과 비교해도 빠지지 않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의 한 예라 할 만합니다. 마케팅과 홍보 분야의 전문가이며 한때 빅히트엔터테인먼트(현 하이브)에도 몸담아 (당시 아무도 예상 못했던) 방탄소년단의 성공에 일조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분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다른 전선에 나서면 그 분야에서 더 잘나가는 다른 엄마를 만나 위축감 비슷한 걸 느끼기도 하신다니 한국의 사교육 현장이란 산업의 최전선보다도 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곳입니다. p25 이하에는 이른바 "돼지엄마"라는, 이런저런 사교육 정보에도 밝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이 성공적인 교육 업종 프리랜서이기도 하고 심지어 자신의 아이도 영재로 잘 키우는(안 그러면, 동료 엄마들이 선망하거나 추종하지도 않죠, 애초에요) K라는 분의 이야기가 잠시 나옵니다. 사회에서 성공하고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도 힘든데 이렇게 엄마 노릇에서까지 극심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니 과연 한국은 예사 나라가 아니며 이런 물질적 풍요가 괜히 얻어진 게 아닙니다. 긍정적인 뜻에서건 시니컬하게건 모든 뜻에서 그러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52 이하를 보면 순전히 아이를 위해 제주도로 이주하시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물론 현지에 소재한 그 국제학교 때문입니다. 채은 작가님만 커리어우먼이 아니라 그 남편분도 성공한 개업의로서 한국에서 전문직 최고 티어로 치는 선택받은 인생입니다. 이런 분들도 아이 교육 때문에 서울을 떠나 낯선 땅에서 새롭게 생을 시작해야 한다니(사실 제주 국제학교라는 곳이 좀 과장하면 본래부터 이런 분들을 유치하려고 설립된 시설이라고 해도 됩니다), 한국에서 애 하나 제대로 키우는 게 이처럼이나 힘들다는 점 새삼 확인하고 한숨이 나왔습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사정이 이런 판에 한국은행 총재께서 대치동 사교육 이상(異常) 열풍을 지적하며 특정 조치를 거론했으니 엄마들이 화가 나지 않았겠습니까. 본인은 학비가 수십억 한다는 외국 학교에 자녀를 보냈니 어쨌니 하며 말입니다. 아무튼 본론으로 다시 돌아와서, 제주도 국제학교에 애를 보내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책의 이 부분에 정리가 잘 되어 있으므로 관심 있는 분들은 참조할 만합니다. 

애를 조기 유학 보내고, 엄마가 양육, 보호, 학습 지도를 위해 따라가는 패턴은 이미 십수년 전부터 있었고 TV 드라마 소재로까지 자주 쓰입니다(상당수가, 공교롭게도 그 부친이 의사라는 설정이기도 하죠). 이 경우 애가 외국행을 간절히 원하면(특히 p117 참조) 부모님들로서는 들어 주는 것말고는 방법이 따로 없는 듯하며 이해도 충분히 됩니다. 제가 올해 6월에 <캐나다 캘거리에서...>라는 책을 읽고 서평을 썼었는데 한국에서 예나 지금이나 유학지로 인기 높은 곳이 캐나다이며 책에 나온 설명을 보면 과연 그럴 만한 환경입니다. 미국처럼 치안이 위태롭거나(물론 미국도 미국 나름이지만) 물가가 살인적으로 비싸거나 풍속이 난잡하지도 않고(요즘은 한국이 더합니다만) 차분한 사회적 분위기에 깨끗한 환경, 게다가 저자님 경력상 영주권 취득에 유리한 부분도 있어(이게 결정적이었겠죠) 책을 읽다 보면 처음에 고개가 갸웃했던 부분도 서서히 수긍이 갔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저자는 아들을 캐나다 보딩스쿨에 진학시키게 됩니다. 맹모삼천(三遷)지교, 아니 아예 다른 하늘 아래로 이주했다는 점에서 맹모삼천(三天)지교라 할 만합니다. 

"쉽지 않지만 아이보다 엄마가 더 노력해야 한다(p169)." 이 말만 보면 뭐 그러려니 하며 예사로 넘길 분들이 많겠으나, 이 책을 읽어나가다 여기에서 일단 숨 한 번 돌리는 독자로서는, 과장 좀 보태서 정신이 아찔해지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정성껏 부모 노릇 한번 한다는 게 이렇게도 힘들단 말인지! 물론 금전적인 뒷받침도 따라줘야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온갖 정보 채널을 다 가동하고 이를 취사선택하여 전략을 짜고 칼 같은 실행력으로 아이를 밀착 마크하며 바른 성장을 돕는 엄마의 매일매일의 고된 여정과 도전입니다. 흡사 기업 하나를 설립, 운영하는 노고와 열의, 재능에 견줄 만합니다. 잠시 과거를 회고하시는 p179에 보면 (저는 처음 들어보는) 전자간증(前子癇症. pre-eclampsia) 증상까지 생기셨다고 하는데 그러실 만도 하지 않겠습니까. 고대 그리스어 동사 ἐκλάμπω가 그 어원이며 등잔(lamp)하고도 먼 어원으로 관걔가 있는 단어이고, 쉽게 말해 (책에도 설명이 나오지만) 고혈압성 임신중독증입니다. 이렇게 힘들게 가지시고 출생한 자녀분인 만큼 더군다나 각별한 열의로 양육하시려던 그 마음에 공감이 되고도 남으며, 아울러 대한민국의 모든 어머니들께 경의를 표하게도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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