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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로 보고 그림으로 듣는 음악인류학 - 불교와 세계종교
윤소희 지음 / 민족사 / 2024년 8월
평점 :
중세 비잔티움 제국도 인근의 야만 슬라브 족을 다룰 때 우아하고 그윽하며 사람의 정서를 근원에서부터 진정시키는 교회 음악과 미술의 탁월함을 충분히 활용했습니다. 이처럼 종교 의식의 진행에는 진중하고 아름다운 음악의 역할이 필수적이며, 이런 이치는 아시아에서 훨씬 이른 시기부터 발견되고 구체화했습니다. 이 책의 부제에는 "불교"라는 단어가 들어갔지만, 책의 내용은 그에 한정되지 않아서, 불교 음악을 중심으로 장대하고 정치한 논의가 이뤄지되, 가장 먼저 탄생한 종교음악인 불교 음악 이후에 등장한 유교, 도교 음악까지 분석합니다. 또 책 후반부에는 이미 중세때 접점이 있었던 이슬람에 불교 음악이 남긴 흔적(예컨대 황홀경 체험을 중시하는 수피즘)이라든가, 알고 보면 본질이 상통하는 기독교 음악과의 관계까지 논급되니 실로 엄청난 스펙트럼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세종은 우리 국어 교과서에도 나왔던 <월인천강지곡>을 지었고, 그 아들 수양대군 이유는 이에 화답하여 <석보상절>을 썼는데 모두 불교 사상이 가득 밴 문학작품이자 음악 가사입니다. 책 p143에도 나오듯 원래는 궁중악과 범패(=불교음악)이 함께 연주되었으나, 국행수륙제가 이후 폐지되면서 범패는 민속에서만 연주되었으며 이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범패의 속성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p146에 나오듯 불교 음악의 원류는 힌디 경전인 <베다>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으며, 세종과 그 아들 이유가 만든 정간보 역시 불교 음악의 큰 틀에 기대었습니다(p149).
세종 연간에 시작하여 성종 때 완성된 게 조선이라는 국가 시스템입니다. 성종은 세종의 증손자입니다. 세종부터가 불교에 대한 그윽한 신앙심을 지닌 인물이었는데, 나라가 성리학을 신봉하는 신진 사대부를 주축으로 세워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했습니다. 아마도 총명하고 조화로운 그의 정신이, 불교의 지극한진리에 깊이 감화된 바 있었던 덕이겠습니다. 성종은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해 정치의 중심부에 재야 사림을 끌어들인 최초의 군주였으나, 조정에는 여전히 전통의 불교 진영에 한 발을 걸친 인사들이 포진했었습니다. p82에는 성종 대(代)에 완간된 <악학궤범>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조선의 아악이라고 하면 궁상각치우의 5음계만 생각하지만, p85에 자세히 나오는 대로 격팔상생의 원리에 따라 12음이 탄생합니다. 이는 또한 적절한 대응 과정을 거쳐 24절기에 연결되는데 동양 철학 고유의 심오한 경지까지 음악을 통해 엿보는 게 가능하죠.
유계(劉季)가 세운 한나라는 후대의 몇몇 통일 왕조처럼 마냥 국수적이거나 쇄국적이지 않았고 서역과 두루 교류했습니다. 이연년이라는 인물은 책 p105에도 니오듯이 사마천의 <사기> 중 열전의 한 부분에서 주제로 다뤄지는 인물입니다. 이 사람은 "영행열전"에서 다뤄지는데, 영행이라 함은 권력자의 측근에서 듣기 좋은 말을 하며 총애를 입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사실 <사기>나 <한서>나 이연년이 독립적으로 서술되지는 않았고 <한서>에도 열전 파트 중 "영행전" 속에서 평론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윗사람의 사랑을 받으려면 노래를 잘하는 게 하나의 방법인가 본데, 이연년이 확실히 음악 전반에 조예가 깊었는지 한실 조정의 악부(樂府)를 그가 만들었다가, 이후 실각한 후에는 대거 축소되었다는 말이 p107에 나옵니다.
진나라가 북쪽 여러 오랑캐에 의해, 그 전에 황족 내분에 의해 멸망한 후에는 5호 16국 시대가 열렸고 이후 남북조 시대가 전개되었는데 이때부터는 중원이 멀리 서역의 문화에 대해서도 관대해집니다. 또 이때 불교가 구마라집(p132) 등 승려들의 노력으로 본격 교세를 화하(華夏)에서 넓히게 됩니다. 저자는 이때의 대대적인 문화 교류와 발전에 대해 p112 이하에서, 퓨전(남), 크로스오버(북)이란 말로 그 격동상을 요약합니다. 또 이후 등장한 당나라의 영향은 실로 동아시아 일대에 큰 흔적을 남겼는데, 일본도 이무렵부터 중국 문화를 본격 수입하였고 그 대표적 유물이 p113에 나오는 쇼쇼인[正倉院] 소장의 당비파입니다.
건달이라는 말은 현대에 이르러 어떤 경우에도 좋은 뜻으로는 쓰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원 간다르바는 불교의 호법신(護法神)이며 결코 나쁜 의미가 아니었으니(p185), 이것이 조선 중기 이후 전개된 억불숭유의 잔재라고 저자는 말씀하십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불교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바미얀 석굴 파괴라든가, 12세기 말 델리 술탄국 아이바크의 날란다 승원 절멸조치와 같은 여러 박해를 외부 세력으로부터 받았는데, 모두가 그 평화지향적 성격 탓이었습니다. 책 p187 이하에서는 산대극이 어떻게 탄생했으며 내용상 변천을 겪었는지가 컬러 사진들과 함께 자세히 서술됩니다.
어느 종교든 율법과 경전을 중시하는 게 정통파이며 명상, 황홀경, 신비체험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분파는 이단시됩니다. 그렇다고 수피즘이 언제나 이슬람 주류에서 벗어났던 건 아니고 오히려 술탄이나 샤의 정책 기조에 따라 더 환영받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책 p242를 보면 20세기 초 튀르키예 이슬람이 수피즘을 이단으로 규정했다고 나오는데 이때는 이미 터키에서 세속주의에 밀려 이슬람이 크게 위축되었을 때입니다. 책에서는 시인, 음악가, 신학자, 수피 수도사였던 메블레비 루미에 대해 자세히 설명됩니다. 저자는 문화상품과 종교적 순수성의 양립 가능성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고 제안합니다. 17세기 투르크의 빈 포위는 기독교 세계의 존속 여부에 큰 고비가 되었는데, 이 영향으로 심벌즈라는 튀르키예 악기가 들어왔고 모차르트의 터키행진곡이 탄생했다는 저자의 분석은 흥미롭습니다.
불교 음악에서 시작하여 전세계 음악사, 문화사를 아우르는 저자의 필치에서 실로 통섭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