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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기린을 보러 갔어
이옥수 지음 / 특별한서재 / 2024년 9월
평점 :
어른된 입장에서, 아직 감정이 덜 자란 청소년들에게 공연한 감정적 혼란을 끼치기보다는 더 성숙하고 점잖은 모습을 보이는 게 바람직합니다. 특히 엄마라면, 설령 아직도 여성으로서의 솔직한 삶을 살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지고 싶은 선택을 할 수도 있죠. 그러나 아이가 불편해할까봐 그러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이 작품은 저런 엄마의 인간적인, 여성으로서의 고뇌와 감정을 좀 이해해 주자며, 시선을 조금만 달리해서 볼 수 없겠냐고 어린 독자들에게 제안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어른인 독자인 저는) 이해했습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전적으로 (어린) 독자들의 몫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호적메이트라는 말(p27)은 아마도 어느 지상파 방송에서 방영된 예능프로그램을 조금은 시청했었어야 그 맥락을 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 예능에서는 주로 친남매, 자매, 형제들 이야기였는데, 이 소설에서는 지금은 엄마와 이혼하고 다른 배우자, 아이가 생긴 친아빠인 한성수씨를 주인공 한송이가 그리 부릅니다. 이 말이 좀 독자에게 자연스레 다가오려면 바로 앞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알아야 하는데, 한송이꽃집(엄마가 운영합니다) 옆에 있는 김광석헤어 원장 광석씨를 송이는 "광석"이라고 무람없이 부릅니다. 엄마가 주의를 줬는데도 그렇습니다. 이건 한송이가 버르장머리가 없어서라기보다, 이 아이한테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수평적 관계를 이룹니다. 어른들이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저는 좋았습니다. 그러니 친아빠도 호적메이트가 되는 건데, 어쩌면 저 예능보다 이게 더 정확한 뜻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형제나 자매라면 상당기간 같은 집에서 살고 그저 호적만 공유하는 관계가 아니지만 송이는 아빠하고 제법 일찍부터 떨어져 살았으니 말입니다.
부자재를 점검하라며 엄마(김혜경씨)가 송이한테 지시하는 걸 보면 송이는 그냥 어리기만 한 청소년이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걸 조금은 이해하는 편입니다(p99를 보면 엄마도 의젓하게 간호합니다). 만약 아니라면, 제가 위에 요약한 (독자들에게 부여된) 과제라는 게, 사실은 어린 독자들을 대표하여, 아니 선행하여 송이가 먼저 풀어야만 하는 문제인데, 애한테 너무 어렵지 않겠습니까. p41에 송이하고 같이 물건을 도매로 떼오러 가면서 부겐빌리아라는 종이 언급되는데, 탐험가 드 부갱빌의 이름을 따 그 이름이 지어진 꽃이죠. 사르트르의 <구토>도 부겡빌에 비가 내린다는 유명한 문장으로 마무리된다...고 하려 했으나 다시 생각해 보니 그곳은 Bougainville이 아니라 Bouville이었습니다.
별명이 북극곰인 대호 씨는 아직 총각인데도 김혜경씨와 미묘한 관계로 발전하기 직전입니다. 송이는 예의 그 수평적 관계 지향성을 발동하여 이분한테도 그냥 대호라고 부르면 안되냐고 합니다(p48). 송이도 별로 이 관계의 발전을 달가워하지 않지만(p89, p123) 대호씨 쪽의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p93을 보면 송이 엄마 김혜경씨가 저리 강하게 살아가는 기질을 그 어머니, 즉 송이의 할머니한테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김광석(가수)를 좋아하시는 걸 보면 취향도 참 젊으신 듯합니다.
소설의 제목에는 "기린"이 나오는데 이 뜻에 대해서는 p110 이하에 잘 설명됩니다. 과연 기린의 눈에는 우수가 깃들었으면서도 참 맑은 기운이 느껴지죠. 송이가 엄마의 "신파극"을 창피해하는 장면도 재미있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까지 창피해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길을 지나다가도산책하는 개의 oo가 두드러져 보이면 민망할 때가 있는데, p115를 보면 대호씨, 김혜경씨, 송이 등이 구경하는 기린이 교접을 시도하여 송이 눈을 가려 주는 장면이 나오네요. p141 이하에는, 혜경씨가 자신의 어머니(송이의 할머니)한테 가서, 왜 자신은 감정대로 마음이 끌리는대로 살면 안 되냐고 마구 감정을 쏟아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어떨까요. 누군가의 부모가 되고 나면 이런 나 자신을 부인하고 어떤 역할에만 충실하는 게 맞겠습니까.
송이는 가출 아닌 가출을 하는데 엄마한테 기다린다는 문자를 받습니다. p162에는 송이가 호리병 속의 거인 이야기(<아라비안 나이트>)를 떠올리며 너무 늦게 구해 준 사람에게 은혜를 갚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잡아먹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엄포가 생각나 귀가를 마음먹는 대목이 있어 독자를 웃게 합니다. 그건 경우가 크게 다른데도 말입니다. 인간은 현대에 들어설 성장기에 너무 오래 보호를 받다 보니 성숙이 아니라 반대로 퇴화하는 경향(p171)이 있다며, 엄마를 엄마가 아니라 인간으로 봐 주고, 일찍 놔 주며 자녀는 빨리 자녀로서 살아야 한다는 김원장 말씀은 참 타당합니다. 이걸 그는 "엄마를 죽여야 한다"는 말로 표현합니다. 엄마를 "죽이고" 나면, 엄마도 여자로서 새 삶을 살고, 자녀도 자녀로서 독립된 자기 삶을 살 수 있다는 겁니다. 달마대사가 "도를 깨치기 위해서 부처가 방해되면 부처를 죽여야 한다"고도 했죠.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으나 의외로 인간의 성숙과 자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